목록보기| 전체(11)
 
 
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Dear Signorina the Prone  | 기본 2012.11.15 08:48:05

트위터  주소복사


[ 도서 ] Mindful Couple: How Acceptance and Mindfulness Can Lead You to the Love You Want (Paperback)
New Harbinger Pubns Inc | 2009/02/14
평점
상세내용보기 | 리뷰보기(1) | 관련 테마보기(0)

* 적립 : 이 글을 통해 도서를 구매하시면 글을 작성한 분에게 도서 구매액의 3%를 I-포인트로 적립해드립니다.

등록된 글자수 : 8138 글자

A KISS is a lovely trick designed by nature

to stop speech when words become superfluous. - Ingrid Bergman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배우가 BrainyQuote에 있는 Love Quotations 중 가장 맘에 드는 말을 남겼다.

 

Immature love says: 'I love you because I need you.'

Mature love says 'I need you because I love you.' - Erich Fromm

이건 절대적으로 옳은 말이지만 요즘 시대에는 그닥 감동적이지 못한 것 같고,

 

Absence diminishes mediocre passions and increases great ones,

as the wind extinguishes candles and fans fires. - Francois de La Rochefoucauld

이건 깊이 생각해 봐야할 어려운(?) 문제같다.

 

엉뚱한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왼쪽에 <북피니언지수>라고 있다. 현대인이 중독된 소위 <포인트>라는 것인데, 리뷰를 하나 쓸 때마다 기본적으로 150점이 적립된다. 그런데 1,000점 단위로 1,000원의 도서상품권으로 교환할 수 있다니까 결국 1점=1원인 셈이다. 내가 Thomas C. Schelling의 <The Strategy of Conflict>에 대한 어제같은 리뷰를 써도 150점이 적립된다. 즉, 150원이다! 언젠가는 돈으로 써먹게 될테니 고마워야 마땅할텐데, 마음은 웬지...

반면에 내가 요즘에 입수하려고 애(?)를 쓰고 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Springer나 Elsevier 등등의 <굉장히 전문적인 컨텐츠>를 출판하는 출판사의 e-book은 평균적으로 500페이지, 몇 개의 볼륨으로 된 백과사전 같은 경우는 수 천 페이지에 달한다. 이걸 정상적으로 구입하려면 얼마인가를 알아봤더니 5만원 이하는 드물고 보통이 10만원 안팎이다. 백과사전은 수 십 만원이라는 얘기다. Elsevier에서 출판한 <Encyclopedia of Language and Linguistics>(2nd ed.)는 놀랍게도 1만 2천 14페이지에 달한다! 단일 파일로 된 전자책으로 내가 경험한 기네스 기록이다! 왜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오늘 리뷰의 대상인 <Mindful Couple: How Acceptance and Mindfulness Can Lead You to the Love You Want>(Robyn D. Walser, Ph.D)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의 리뷰들은 적어도 main book은 전부 <구입해서> 읽었는데, 오늘은 main book조차도 읽지 못했음을 알리기 위해서 좀 특별한 이야기를 했다.

 

Springer나 Elsevier는 <대학교>와 계약을 맺고 <학내의 구성원(교수 또는 재학생)>에게는 별도의 비용없이 몇 만 권의 책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도 마찬가지 시스템이다. 전세계 대학의 숫자를 고려하면 이런 방식은 매우 합당하다--예를들어 2만권에 대한 비용으로 한 대학에 1억원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전세계의 대학의 숫자가 2만개일때는 권당 1억원을 받는 셈이다. 연간 1천만원을 받는다고 하면 역시 권당 평균은 1천만원이다. 인기있는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의 형평성 문제가 남아있지만 어쨌든 평균 저작권료로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PDF가 유출되는 것은 그런 경로를 통해서일테고, 나는 그런 시스템을 최소한 2차적으로 <악용(maluse)>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나는 현재의 저작권 시스템에 완전히는 아니어도 <일부분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구글북스 또는 Amazon에서 일부를 미리보기 형태로 볼 수 있었다. 이 두 가지를 조합하고 약간의 수고를 더하면 상당한 분량을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일부 본문을 확인했다는 점도 아울러 밝혀둔다.

 

 

 

Mindfulness!

요즘 상당히 각광받는 단어다. 심리학에서, 정신의학, 그리고 보다 일반적으로 카운셀링, 게다가 경영학까지도!

이 단어를 Encarta 사전에서는 aware: actively attentive, or deliberately keeping something in mind(의식하는: 능동적으로 주목하는, 또는 일부러 무엇을 마음에 담아두는)이라고 풀이한다. 반대말인 mindless가 boring, purposeless 또는 unconcerned의 뜻이라는 점을 아울러 생각해두자.

 


<Mindfulness and Mental Health: Therapy, Theory and Science>(2008, Routledge)에서 저자인 Chris Mace 교수는 <What is it to be mindful? It is to pay attention in a particular way.>(Chapter 1 Understanding mindfulness: Origins, p.4) 그리고 <Mindfulness is a way of being aware. Mindful awareness is receptive and not exclusive.>(Introduction, p.1)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 문장의 뜻을 이해하려면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Defining mindfulness

 

1. Mindfulness means paying attention in a particular way: on purpose, in the present moment, and nonjudgmentally. (Kabat-Zinn 1994: 4)


2. (a) Mindfulness reminds us of what we are supposed to be doing; (b) it sees things as they really are; and (c) it sees the true nature of all phenomena. (Gunaratana 1992: 156)


3. In mindfulness, the meditator methodically faces the bare facts of his experience, seeing each event as though occurring for the first time. (Goleman 1988: 20)


4. [Mindfulness is] keeping one's consciousness alive to the present reality. (Hanh 1991: 11)


5. [Mindfulness is] awareness of present experience with acceptance. (Germer 2005b: 7)


(Chapter 1 Understanding mindfulness: Origins, p.4)

 

이것이 앞서 들었던 심리학 또는 정신의학, 카운셀링에서 정의하는 Mindfulness다. 표현은 다르지만 전부 같은 특성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 <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 둘째 자신의 가치관이나 성향, 지식과 판단을 <정지시킨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라는 점, 셋째 과거도 미래도 아니고 <현재적>이라는 점이다. 넷째는 당연한 것이지만 무엇인가에 <주목하는> 행위라는 점이다. 특별히 덧붙이고 싶은 것은 Goleman의 설명(3)에서 as though occurring for the first time(마치 처음 일어난 일인 것처럼)이라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 설명의 두번째와 세번째를 아우르는 것으로 보인다.

 

Chris Mace 교수는 1장을 다음의 인용으로 시작하고 있다.

 

There is no mental process concerned with knowing and understanding, that is without mindfulness.
Commentary on the Satipatthana Sutta, cited by Thera (1965: 194)

(무엇인가에 대해 알게 되고 이해하는 정신의 작용에서 mindfulness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심리학이나 카운셀링에서 이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경영학에서는 도대체 이 개념을 어디에 쓰는 것일까?

요즘 경영학계에 Design 열풍이 불고 있다. 열풍(Hot Winds)이 아니라 허리케인급 폭풍이 불고 있다. Design은 80년대의 Strategy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Mindfulness는 Design Logic에서도 중요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Customer Satisfaction Management에서다. 우리는 좋은 대고객 서비스를 받으면 누구나 기분이 유쾌해진다. 그러면 "굉장히 열정있는 직원을 만났다"라며 만족한다. 사실 그 열정의 구체적인 내용이 바로 Mindfulness다.

이 Jargon이 심리학이나 정신의학, 상담학이라는 일종의 근거리의 계통에서 발생했으니 거기에서 이해력을 높이고 다른 분야에 Application 해야겠지만, 이 경우에는 반대로 하는게 훨씬 유익할 것이다. 즉, 내가 예로 설명한 <경영학>에서의 쓰임새를 잘 분석해보면 Mindfulness가 도대체 무엇인가를 보통 사람들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경영학의 사례보다 더 쉬운 것이 있으니, 바로 Love(또는 에리히 프롬식으로 말하면 Loving)에서 볼 수 있는 Mindfulness다. 연애 중에 연인에게 가장 기대하는 바, 결혼생활에서 배우자에게 가장 요구하는 바가 바로 이 어휘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굳이 에리히 프롬을 상기시키면서 Love를 Loving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말하는 것도 굉장한 의미가 담긴 것이다. 사랑 또는 결혼생활은 <지속적인 서비스>다. 애정을 끊임없이 공급하는 서비스다. 고객만족관리든, 공급망관리(Supply Chain Management)든, 경영학의 개념들이 사랑과 관계된 행위들에도 유익하게 적용될 수 있다. 그 바탕이 지속적인 서비스와 Mindfulness에 있다. 이 두 가지 개념 모두 에리히 프롬의 견해에 다 녹아있다--물론 경영학의 용어를 쓰지는 않았다.

 

글의 시작에서 프랑소아 드 라 로슈코프를 인용한 이유를 알아차리겠는가? Absence(부재)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꼭 그래야할 이유가 있을까?--어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면! 나는 로슈코프의 견해를 반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특수한 경우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만약 로슈코프의 지혜가 일반론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우리는 <사랑>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테마>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소설도, 그림도, 조각도, 음악도, 드라마나 영화도 다른 밥벌이 소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대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문제가 단순하지 않다는 관점을 수용해서 현실적인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려고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사랑과 애정과 관심을 기대하고, 그것이 올바른 방식으로 충족되기를 또한 기대한다. 그런 기대가 무참히 깨어지면 우리는 상처를 받고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만약 우리에게 기회가 남아있다면 우리는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해야하는 일을 함으로써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구원되도록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얘기한 Mindfulness가 될 것이다.

우리는 잉그리드 버그만의 한마디를 <그저 낭만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달콤한 키스에 관한 것으로<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을 하는 동물이고 사고의 확장을 통해서 지식을 구축하고 역사를 만들어 온 동물이라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 어떤 <문제적 상황>을 꽤 <간단하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이론(!)으로 전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위대함은 바로 이러한 <전환(Transformation)>에 있다! 인간의 상상력은 오비디우스의 <Metamorphoses>(변신 이야기)에서 그 원형(Prototype)을 발견할 수 있다. 잉그리드 버그만의 한마디는 위대한 이론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적 상황에서 키스를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거기에 Mindfulness의 원리가 스며들어 있다고 보는 것이 내 견해다. Chris Mace 교수의 책 <Mindfulness and Mental Health: Therapy, Theory and Science>를 인용해서 소개한 정의들(definitions)에 대한 내 설명을 다시 돌이켜보자.

 

1. <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2. 자신의 가치관이나 성향, 지식과 판단을 <정지시킨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3. 과거도 미래도 아니고 <현재적>이다

4. 무엇인가에 <주목하는> 행위이다

 

어떤가? <잉그리드 버그만의 키스>는 Mindfulness를 설명하기에 더 없이 좋은 사례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임상학적으로 Mindfulness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분명히 (2)일 것이다.

 

John M. Gottman(Ph.D)의 이론을 요약한 <What Am I Feeling?>(John M. Gottman and Talaris Research Institute, Parenting Press Inc.)라는 작은 책(전체 41쪽)이 있다. 일일이 타이핑하기 어려워서 제목만 소개한다. (이 책은 Gottman 박사의 <Raising an Emotionally Intelligent Child: The Heart of Parenting>를 요약한 것이다)

 

4 Parenting Style

(1) The Dismissing Style
Ignoring "bad" emtions -- "Just get over it"

(2) The Disapproving Style
"Bad" emotions are punished -- "You shouldn't feel that way"

(3) The Laissez-Faire Style
Emotions without guidance -- "Anything goes"

(4) The Emotion Coaching Style
Empathy and guidance -- "I know how you feel"

 


5 Steps of Emotion Coaching

(1) Emotional Awareness -- Be aware of the child's emotions.

(2) Connecting -- Recognize emotions are an opportunity to connect.

(3) Listening -- Listen with empathy.

(4) Naming Emotions -- Help the child name emotions.

(5) Finding Good Solutions -- Set limits and find good solutions.

 

 

Helpful Tips

* Be patient
* Be honest with a child
* Avoid criticism, humiliating comments, or mocking a child
* Use small successes to boost a child's confidence
* Be aware of a child's needs, both physical and emotional
* Identify what the child enjoys-and what he or she doesn't enjoy
* Avoid agreeing or siding with the "enemy" when a child feels mistreated
* Empower a child by giving choices and respecting his or her wishes
And, remember, emotion coaching builds trust and leads to closer relationships between children and those who care for them ... a benefit that is priceless.

 

여기에 소개된 Gottman 박사의 이론은 이를테면 오은영 박사님의 TV 강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Why Marriages Succeed or Fail: And How You Can Make Yours Last>도 Gottman 박사의 책인데, Texas Cooperative Extension (The Texas A&M University System)에서 요약한 <Four Steps to Healthy Communication in Marriage>의 소제목을 간추리면,

 

How to Calm Yourself
How to Speak and Listen without Becoming Defensive
How to Validate Each Other
How to "Overlearn" These Communication Skills So They Become Second Nature

 

구체적인 내용은 오은영 박사님의 강의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소개를 생략하기로 한다. Gottman 박사의 책을 여럿 소개한 이유는, 결국 Mindfulness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알리기 위해서다. 특히 내가 수집한 자료 가운데는 <Mindfulness And Acceptance>라는 표현이 고정적으로 들어간 책들이 많다--물론 이런 제목의 책들은 훨씬 전문적인 <의학> 서적이다. Mindfulness라는 표현에서 오해하기 쉬운 것은, 자기의 마음이라는 자원을 <소비(Use)>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먼저 Acceptance가 잘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하고자 한다.

 

이제 Mindfulness의 의미에 대해서는 대강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Mindful Couple: How Acceptance and Mindfulness Can Lead You to the Love You Want>에 대한 리뷰를 시작해보자. Robyn D. Walser 박사와 Darrah Westrup 박사의 공저이다.

 

(휴식 후에 계속...)

 

저자들은 Introduction에 이런 짧은 문장을 인용했다...

 

Attention is love. - Karen Maezen Miller
"관심이 사랑이다" 라는 말...

 

Love takes up where knowledge leaves off. 
"지식이 멈춘 곳에서 사랑은 시작된다" Thomas Aquinas가 남긴 말이다. (BrainyQuote)

 

You never lose by loving. You always lose by holding back.
"사랑해서 잃는 게 아니라, 사랑을 억제함으로써 잃는다"는 Barbara de Angelis의 말이다. (BrainyQuote)

 

I have decided to stick with love. Hate is too great a burden to bear.
"나는 사랑을 버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누구를 미워하는 것은 내가 짊어지기엔 너무나 큰 짐이기 때문에." Martin Luther King, Jr.가 발견한 진리다. (BrainyQuote)

 

<Mindful Couple: How...>에 대한 리뷰는 여기에서 그치기로 하자. (Robyn D. Walser 박사와 Darrah Westrup 박사의 이 책이 더 이상 읽어볼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목차를 살펴보라!) 그러나 빈 공간을 여러분에게 맡긴다. 그 질문은 이런 것이다.

이 리뷰의 제목은 Dear Signorina the Prone이다. Signorina는 이탈리아어로 영어의 Miss에 해당한다. 포르투갈어로는 Senhorita라고 한다는데, prone (to do)는 <~하곤 하는>이라는 뜻이므로 제목은 <~하곤 하는 아가씨에게 드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여러분은 무엇을 종종 하는 아가씨가 되고 싶으신지? To Love? To Be Loved? To Accept? To Forgive? 설마 To Hate는 아니......

 

아래는 책의 표지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손을 잡고 있다. 그림자까지 생각하면 M과 W로 보인다. M과 W를 무엇의 줄임이라고 생각하시는지? Man과 Woman은 제외하자! Magenta & White? Magic & World? Mood & Waiting? 여러분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리뷰 끝)

 

**A kiss is a rosy dot over the 'i' of loving.

이런 실없는 소리도 있다! (Cyrano de Bergerac, BrainyQuote)

 

 

 

 

 






댓글(0) | 엮인글쓰기(0) | 스크랩 신고 | 인쇄
 
 
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Welcome to the World of Strategic Games  | 기본 2012.11.14 08:08:47

트위터  주소복사


펼쳐보기
[ 도서 ] [구간]갈등의 전략
(주)나남 | 1992/10/30
평점
상세내용보기 | 리뷰보기(1) | 관련 테마보기(0)

* 적립 : 이 글을 통해 도서를 구매하시면 글을 작성한 분에게 도서 구매액의 3%를 I-포인트로 적립해드립니다.

등록된 글자수 : 7795 글자

갈등의 전략! 원서의 제목도 그대로 The Strategy of Conflict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러나 절대로 취미의 수준은 아니지만, 정치와 경영/경제를 공부했기에 <갈등>이나 <전략>이라는 어휘는 보통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익숙하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30년 가까운 세월의 힘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보통 사람들과 Approaching Attitude(접근 태도)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반적인 그리고 전형적인 태도는 갈등이나 전략 같은 단어를, 또는 그러한 사고나 행위를 불편해하고 기피하는 것이다. 마음 속으로도 그리고 현실 문제를 다루는 구체적 필요성의 측면에서도 <진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표면적인 태도는 분명히 기피하는 게 맞다.

이러한 대조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내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2학년일 때 발자타르 그라시안의 <세상을 보는 지혜>라는 책이 나왔다. 이 책은 어떤 면에서는 제목이 풍기는 것과는 정반대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마키아벨리즘이라고 부르는 <피도 눈물도 없고, 인정사정도 없는> 어떤 것보다 더욱 원초적이고 염세적인 가치관을 반영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책을 학교 갈 때에도, 학교 안에서도 들고다니면서 보았는데--당연한 얘기지만 그 책의 저자와 생각이 같기 때문에 그 책을 읽는건 아니었는데도--어느 한 동기가 내게 살며시 말하기를, "너는 왜 그런 책을 들고다니면서 보냐?"라고... ㅠ.ㅠ

그 녀석의 얘기는 내 기억에 따르면 옮긴이의 언급에도 나왔던 것, 즉 <이런 종류>의 책은 비밀스럽게 읽혀지고 전수되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생각이었다. 나는 이런 관점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보면서도 안 보는 것처럼, 있는데도 없는 것처럼--나로서는 정말 받아들이기 싫은 사고방식이다. 만약 그것이 정말로 유해하다면, 정말로 없애야지 왜 없는 것처럼 단지 생각만 바꾸는가?--이것이 내 방식이다. 내가 말하려는 바는, 처세술 특히 선한 세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방식들에 대해 사람들이 심각한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권모술수>나 <음모> 같은 것까지는 그러려니 또 일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문제가 일반적인 수준까지 전염되어 <갈등>이나 <전략> 같은 말만 들어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 나중에 또 이야기 되겠지만 이것은 사고와 행위의 심대한 <제약요인>이라는 점에서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순환적인 표현이 될지 모르겠으나, 소위 <전략>을 다루는 사람에게는 절대적으로 피해야하는 장애물이다--전략가로 불리우는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겠다"고 즐겨 말한다.

Thomas C. Schelling 교수의 이 기념비적인 역작이 속하는 분야는 <Game Theory>라고 부르는 분야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여기서 말하는 Game은 무엇이고 보다 일반적인 언급으로서 Strategy는 또 무엇인가? 이러한 Frameset은 왜 필요하고 어떤 목적에 기여하는가?

그 어휘들에 대한 설명에 앞서서 왜 그런 어휘들과 Game Theory가 사람들에게 기피대상이 되는지를 살펴보자.

 

전략이라는 개념, 또는 게임이론이라는 개념의 출발점은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믿으면 절대로 안 된다"에 있다. "믿는 자에게 복이 있다"라는 말이 있지만, 우선 이 말부터 의심하고 믿지 않는 것이 게임이론의 출발이다. (38쪽)

 

안타까운 이야기이지만, 사람의 선한 품성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버리는 것이 게임이론과 전략적 사고의 출발점이다. (49쪽)

 

이 인용들은 Schelling 교수의 책이 아니라, 박찬희 한순구 교수가 함께 쓴 <인생을 바꾸는 게임의 법칙>에서 가져온 것이다. 딱 두 군데만 인용했지만, 게임이론이 보는 전략적 시각은 (1)우선 보통의 사람들조차 <악당>으로 묘사하는 것 같고, (2)그런 견해를 인정한다고 해도 너무 <피곤>할 것 같다. (3)또, 그런 이유들로 누군가는 자신이 이러한 게임이론을 깊이 연구하고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할 것이다. 이것이 게임이론이 기피되는 3대 사유이다.

 

그러나 이것은 게임이론과 전략적 사고에 대한 심한 오해다. 게임이론과 전략적 사고는 <냉혹하고 부정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Schelling 교수도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바이지만, 심지어 <갈등의 전략>조차도 <상호 이익>이라는 바탕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전략적 사고이기 때문이다. 박찬희 한순구 교수는 이를 <결국 '착한 마음'과 '서로에 대한 애정'은 '상호 이익'이라는 기초 위에 더해져야 한다. (중략) 게임이론은 인간의 대립적 갈등과 배신만을 다루는가? 그렇지 않다. 뒤에서 소개될 Coordination Game에서도 보듯이, 동기가 이기적이더라도 서로 협조해서 더 많은 이득을 얻으려는 유인이 존재한다.>(23쪽)라고 설명한다. Thomas C. Schelling은 이를 이렇게 멋지게 표현했다.

 

(A)...서로 미워하는 적에게만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불신하거나 의견이 다른 동업자와도 관계가 있다. 이것은 두 당사자 간의 득실의 배분에만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다른 결과보다는 특정한 결과가 두 당사자 모두에게 나쁘다(혹은 좋다)는 가능성과 관계가 있다. 게임이론의 용어로 표현하면 대부분의 국제적 갈등은 "불변합 게임(constant-sum game)"이 아니라 "가변합 게임(variable-sum game)"이다. 즉 참여국들의 이득의 총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아서 일국의 득이 반드시 그만큼 타국의 손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에게 득이 되는 결과에 도달하려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는 것이다.(Schelling/최동철 역, 24쪽)

 

조금 난해한 설명은 이렇다.

 

(B)전략이론은 갈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또 "승리"하려고 하는 참여자의 이미지를 다룰 때, 참여자들 사이에 상충하는 이익은 물론 공통의 이익도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 주제의 풍요성은 국제문제에서 대립은 물론 상호의존도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 것이다. 순수한 갈등, 즉 두 경쟁자의 이익이 완전히 상반되는 갈등은 특별한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완전 섬멸전에서나 일어나는 것이며 보통 전쟁에서도 그런 경우는 없다. 이런 이유때문에 [갈등에서 "승리"하는 것은 엄밀하게 경쟁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적에게 상대적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가치체계에 비추어서 상대적으로 이득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Schelling/최동철 역, 23쪽)

 

만약 이 리뷰를 읽는 독자가 (B) 특히 빨간 부분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하면, 게임이론의 전략적 관점을 100% 이해했다고 자신있게 말해도 좋을 것이다. Mini-Max(얻을 수 있는 이익의 최소치를 극대화하는 전략)이나 Max-Mini(뺏길 수 있는 이익의 최대치를 극소화하는 전략)같은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은 자신의 전략적 옵션들 간의 경쟁이다. (Schelling의 인용은 1960년 판을 인하대학교 물리학과 최동철 교수가 번역한 나남출판의 1992년 <갈등의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표현을 약간 고쳐서 인용한 부분이 있으나 일일이 표기하는 것은 생략하기로 한다.)

 

여기서 "전략(Strategy)"이란 용어는 행위자(참가자)들의 <상대의 결정에 대한 상호의존>과 <각각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그들의 기대>에 초점을 맞추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군사용어는 아니다. 전략의 게임이란 각 플레이어의 최선의 행동은 다른 플레이어가 어떤 행동을 하는가에 달려있는 그러한 게임을 말한다.(Schelling, 제1장 지체된 국제전략의 연구, 주1, 22쪽) 

 

박찬희 한순구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이렇게 타인의 행동에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을 경제학에서는 게임상황(Game Situation)이라고 한다.>(73쪽) 즉, 게임이론은 단 한마디로 요약하면 <상호의존성>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를 다루려는 것이다. 상호의존성은 바꾸어 말하면 <제약조건>이다. <어느 참가자든 간에 어떤 이유때문이든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게임이론이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바탕이라는 말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략가들이 특별히 <모든 옵션>을 즐겨 거론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자신들의 옵션에 상당한 그리고 결정적인 제약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이것은 게임이론을 전부 공부하면 누구나(?) 깨닫게 된다.

프랑스의 어떤 유명한 정치가가 "정치라는 것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여러가지 일에 끊임없이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박찬희 한순구, 260쪽) 이 말은 정치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인 게임상황에서의 전략>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아래에서는 게임이론 또는 전략적 사고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몇 가지 중요한 사항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1. 게임이론은 <수학>이 아니다. Schelling은 <나 자신의 견해는, 현재 결여되어 있는 것이 수학에 있지 않다는 것--수학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과 또 전략이론은 그 주제가 마치 수학의 한 분야인 양, 혹은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취급해온 사회학자들--경제학자를 말하는 것으로 보임--의 너무 지나친 의욕 때문에 피해를 보아왔다는 것이다.>(제1장 주4, 30쪽) 수학적 분석은 하나의 편리한 도구일 뿐이다. 이득과 손실의 크기를 계량적으로(비교가능하게) 확정할 수 없는 경우가 훨씬 많다.

 

2. (게임상황에서 특히) <"전략"분야를 파고드는 것의 이점은, 모든 가능한 접근방법 중에서 그것이 확실히 진실에 가장 가까이 가는 접근 방법이기 때문이 [아니라], (의식적인 이해타산에 의해서 유도된 행태를 포함한) 합리적 행태를 가정하는 것이 [생산적인] 접근 방법이기 때문이다.>(23쪽) 합리적--여기서 합리적이라는 단어는 도덕적인 이성에 근거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익과 손해를 따져본다는 뜻임--행태에 대한 가정이나, 수학적 접근으로부터 도출된 이론이 <실제 행태를 따져 보는데 훌륭한 통찰력을 제공하느냐 또는 빈약한 통찰력을 제공하느냐 하는 것은,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이론작업) 뒤에 일어나는] 판단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가 도달하는 어떠한 결과에 대해서도 [판단력]을 사용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23쪽)--합리성에 대한 가정에 의해 현실 적용가능성이 제약받게 되므로 이론의 실제에의 적용은 이론의 개발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다.

 

3. 게임이론 또는 전략적 사고라는 표현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힘의 <사용>을 당연하게 여기게 만드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정치학에서의 전략은 <힘의 실질적인 사용(application of force)가 아니라 잠재적인 힘의 이용(exploitation of potential force)>(24쪽)을 기초로 한다. 따라서 <힘의 사용(application)과 힘의 위협(threat)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군사작전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지적 수완과, [국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잠재적(potential) 군사능력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지적 재능 간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전쟁억지력 이론은 사실상 군사력의 슬기로운 [불사용(nonuse)]의 이론이라 할 수 있으며, 이 목적을 위해서 억지력은 군사기술보다 더 광범위한 무엇을 필요로 한다.>(28쪽)

 

4. <우리는 전면 보복의 위협은, 적이 그 위협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로 했을 경우에는, 우리에 대해서 전면적인 선제공격을 감행할 온갖 자극을 적에게 주게되며, 그것은 좀 더 적은 악이라는 행위를 배제하고 극단을 택하도록 적에게 강요하는 것임을 깨달았다.>(26쪽) <위협된 형벌이 위협당하는 쪽을 아프게 하는 만큼, 아니 아마도 더 많이 [위협하는 쪽]을 아프게 할 것이라는 중요한 가능성>(31쪽)이 상존한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인해서 <억지력의 개념은 매우 복잡하게 되었으며, 현재의 억지력의 개념이 아직 정교하지 못하다>(26쪽)는 것이다. 이것은 전략의 설계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5.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서도 분명히 <잠재적인 공통의 이익>(주5, 32쪽)이 찾아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불변합 게임(variable-sum game)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6. 그러나 게임의 공간과 형태, 그리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이득(payoff)가 명확하게 정해진 게임은 사실상 없다. 게임과 전략의 모든 요소는 <현실이 인간에게 복잡한 전달과정과 인식과정을 거쳐 [재해석된] 것에 불과하다. 현실의 게임(전략)에서는 ['그런 것으로 여기고'(실제로는 모르고)] 하는 것이다.>(박찬희 한순구, 286쪽) 따라서 <억지되는 쪽의 합리성 및 자제력 정도(level)의 중요성, 위협을 파악하는 능력, 그리고 소음과 잡음(혼란스런 잠재적 메시지) 속에서도 그것을 알아듣는 능력의 중요성, 필요할 경우 위협을 실행하겠다는 쪽의 결의, 그리고 더 중요한 것으로서 그 위협이 집행될 것이라는 위협당하는 쪽의 확신 등>(31쪽)이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게임이론은 하나의 가상(virtual)의, 도상(in simulation)의 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분명히 현실에 근거하지만, 실제의 전략적 행동을 결정하게끔 만드는 <결정력>의 측면에서는 월등하게 <현실이 아닌 인식(Perception)의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게임이론의 전략적 문제에 Commitment가 항상 등장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7. 박찬희 한순구 교수는 <나는 게임이론가는 절대로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쪽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226쪽)고 말한다. 이 대목의 앞부분은 <하지만 북한 정권이 한 나라의 지도자가 게임이론을 현실에 적용한 대표적인 케이스라면>이다. 나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두 분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첫번째는 북한 정권이 게임이론을 현실에 적용한 <대표적인> 케이스라는데 반대한다. 게임이론을 현실에 적용하지 않는 나라는 단 하나도 없으며, 또 대표적인 나라라고 말하려면 차라리 <미국>이 더 적합하다고 본다. 북한 정권의 경우는 그들이 취한 전략이 훨씬 더 <눈에 띌 수 밖에 없는> 것일 뿐이다. 오히려 북한 정권은 게임이론을 <Bargaining>에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실패사례다. 두번째 이유는 상기 6에서 지적했듯이 게임이론의 전략은 <최종 옵션을 끝까지 미루려는(nonuse) 목적으로> <위협>을 중요하게 사용한다. 일반적인 전략과 게임이론의 프레임은 Bargaining에서 각 플레이어의 <힘의 차이(Gap of Force)>를 줄이게 되어 있다. 슈퍼 파워가 아닌 한국의 입장에서는, 적대국에게 사용하든 우방국에게 사용하든, 게임이론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지도자가 등장해야 마땅하다. 전직 대통령들 가운데에서는 단연코 이승만 대통령이 여기에 그나마 근접해 있다. 아마도 <외교>를 많이 해 본 경험 때문일 것이다.

 

8. 결론적으로 게임이론의 전략적 사고는 <전쟁>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전쟁을 효과적으로 [안] 하기 위한> 수단이다. 전쟁을 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라면 피해를 감수하고 당장 시작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또 전략적 사고는 협력이나 공통의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물론 바로 그 이유(전쟁 대신 협력으로 방향을 틀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전략적 목표의 달성이 어려워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존재한다. Thomas C. Schelling 교수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갈등의 전략을 연구하는 것은 대부분의 갈등상황이 [본질적으로 흥정(Bargaining)] 상황이라는 관점을 취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 참여자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은, 다른 참여자의 선택이나 결정에 따라 상당히 크게 좌우된다.>(24쪽)

 

그가 생각하는 걸 나도 생각한다고 그가 생각하리라는 걸 나는 생각한다......

 

내가 대학생일때 어느 리포트에 썼던 표현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때 내가 다다르는 결론은 다소 충격적일 수 있다. 게임이론이 발전하면 할수록 갈등의 해결이라는 기능적인 목표는 더욱 달성이 어려워질 것이다! 오직 한가지 이를 방지하는 방법은, 이 글의 시작을 장식한 문제에서처럼 비밀리에 연구하고 세상에 내놓지 않는 것이다--이게 방법론적으로 어떻게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이것도 정확한 답은 아니다. 왜냐하면 게임이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진짜] 광기(Undisguised Madness)>와 <의도하지 [않은] 계산착오>이기 때문이다. 게임이론은 이 두 가지를 제3차대전의 주요 원인으로 진단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결론: 복수의 인간이 존재하는 한, 해결이 불가능한 영역이리라! (얼마전 끝난 수능시험에서 수리/외국어 영역의 평균이 약 5점 하락했다는데 당신의 아드님 혹은 따님을 더 센 대학(학과)에 지원시키는게 좋을까 안전지원 하는 것이 좋을까? 우리는 일상적으로 [게임-각 플레이어의 최선의 행동은 다른 플레이어가 어떤 행동을 하는가에 달려있는!]을 하고 있다!)

 

 

 

갈등과 의사결정에 관하여

 

인간이 처한 현실적인 곤경의 하나는, 모든 점이 고려되기 전에 먼저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는 점이다 - 토머스 해리스(304쪽)

 

큰 일과 작은 일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쓸모가 없다 - 윈스턴 처칠(306쪽)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실제로 하는 것이다 - 마리 폰 에프너 에셴바흐(330쪽)

 

시계를 앞당겨놓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은 아니다. 사태가 진전되는(advance) 동안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은 현실정치의 한 전제조건이다 - 오토 폰 비스마르크(166쪽)

 

나는 처칠과 자주 심하게 싸웠지만 우리는 언제나 서로 만족스럽게 지내왔다. 루즈벨트와는 전혀 싸운 적이 없지만 그와 만족스럽게 지낸 적은 없다 - 샤를 드 골(294쪽)

 

비정상을 정의하자면, 상이한 결과를 기대하면서 동일한 것을 되풀이해서 반복하는 행위다 - 리타 마에 브라운(277쪽)

 

책상에서 세상을 관찰하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 존 르 카레(205쪽)

 

시세가 반으로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며 살(buy) 수 없다면 결코 주식을 사지 마라 - 워렌 버핏(198쪽)

 

모든 위대한 발명과 위대한 업적은 습관적인 생각과 행동에서 해방된 결과다 - 아르투어 쾨스틀러(114쪽)

 

현대의 기업은 배우는 조직이어야 한다. 알고 있는 조직이어서는 안 된다 - <포츈>(86쪽)

 

모든 실수는 남이 저지르면 굉장히 멍청해 보인다 - 게오르그 크리스토프 리히텐베르크(53쪽)

 

측정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중에서 측정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 마이어 프리드먼(176쪽)

 

<Geistreiches für Manager>(Hermann Simon, 한근태 이군호 역, 경영에 관한 재치있는 말들, 2001)에서 발췌

 

 

 

보충사항

 

본문에서 Mini-Max(얻을 수 있는 이익의 최소치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언급했었다. 이 전략은 <Half a loaf is better than nothing>(아무것도 얻지 못하느니 차라리 반쪽이라도 얻는게 낫다)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소설가이자 Bridge(카드놀이의 하나)의 전문가인 S.J.Simon은 그의 저서 <Why You Lose At Bridge>에서 "The best possible result(가장 가능성이 높은 결과)"보다 "The best result possible(가능한 결과 중에서 가장 나은 결과)"가 더 낫다고 설명했다고 한다.(<Rock, Paper, Scissors: Game Theory in Everyday Life>, Len Fisher (Ph.D), 2008, Basic Books, 36쪽 Box)

http://book.interpark.com/product/BookDisplay.do?_method=detail&sc.shopNo=0000400000&sc.prdNo=201551766&bookblockname=b_sch&booklinkname=bprd_title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결과]와 [가능한 결과 중에서 가장 나은 결과]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Game Theory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힌트: 실제로 실현되는 이익, 그리고 확률)

 






댓글(0) | 엮인글쓰기(0) | 스크랩 신고 | 인쇄
 
 
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말에 대한 착각, 리더에 대한 착각  | 기본 2012.11.13 07:51:19

트위터  주소복사


펼쳐보기
[ 도서 ] 말을 디자인하면 경영이 달라진다
IGM세계경영연구원(IGMbooks) | 2012/10/15
평점
상세내용보기 | 리뷰보기(6) | 관련 테마보기(4)

* 적립 : 이 글을 통해 도서를 구매하시면 글을 작성한 분에게 도서 구매액의 3%를 I-포인트로 적립해드립니다.

등록된 글자수 : 2926 글자

"당신이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스스로를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1차 처방은 이렇다고 쓰여있는 책이다. 말을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말을 잘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착각>이라는 대단히 강한 표현을 쓴 이유가 있다. 그것은 어떤 사람도 말하는 입장과 듣는 입장 양쪽을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는데, 이 자명한 사실을 까맣게 잊은듯이 행동할 때가 너무나 자주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듣는 이로서의 경험은 말을 잘하는데 더 없이 좋은 교육 경험이고 기회인데, 일상적으로 주어지는 이 값진 배움의 기회를 날려버리고 있다는 뜻이다.

훌륭한 영화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해서 모두가 영화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환상적인 피아노 연주를 감상했다고 해서 모두가 일류의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에 관해서라면 우리는 전혀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 만약 여러분이 <진정성>을 말 잘하는 것의 한 요소라고 생각한다고 가정해 보자. 언제 어느 곳에서든 그런 경험, 즉 진정성을 느끼게 하는 <말하기>를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즉 우리는 그것을 <들었다>.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아야 한다. 왜 다른 사람의 말에서는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는 반면 어떤 사람의 말에서는 진정성을 느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스스로 진정성을 잘 전하는 말하기를 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정말로 착각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 책의 한 대목이다.

 

얼마 전, 우연히 한 블로거가 자신의 생애 첫 스피치를 하고 나서 올린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긴장이 되어 완벽하게 외웠던 부분도 잘 생각이 안 날 정도로 떨리던 상황. 그래서 그는 '웃어야 하는 부분'에서도 긴장 때문에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원래 이 부분에선 웃어야 하는데 너무 긴장돼서 웃음도 안 나오네요'라는, 애초에 준비하지 않은 말이 툭 튀어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에 관객들이 웃으며 박수를 보내줬고, 그 다음부턴 신기하게도 긴장이 풀려 말이 술술 나왔다고 합니다. 결국 긴장을 풀어준 건 '나다운 솔직함'이었던 셈이죠. (23쪽, 스피치에 대한 오해와 진실 4-스피치를 잘하기 위해서는 쇼맨십이 있어야 한다)

 

누구나 관객(청중)의 위치에서 듣는 사람일 때는 당연히 <박수를 쳐준다>. 그런데 완전히 같은 상황을 두고 스피커(화자)의 위치에 서면 전혀 다른 생각을 한다. 말 잘하는 비결은, 너무나 어리석은 이러한 갭(불일치)를 <정상적인 인식>--말하는 위치에서 저런 종류의 긴장과 실수는 누구나 하게 마련이며, 듣는 사람들도 너그럽게 받아들여 준다는 인식--으로 바꾸는 것 뿐이다. 저자인 김자영 교수 18쪽에서 "말문이 막히는 것도 메시지"라고 하면서,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청산유수> 식의 화법<만>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을 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책이 응당 그러하듯이 김자영 교수도 잘못하고 있는 것(오해)와 어떻게 해야 하는가(진실)을 모두 제시하고 있다. 총 5부로 구성된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훨씬 다양하기 때문에 오해와 진실이 항상 일대일로 대응하는 건 아니지만, 몇 가지 오해만 바로잡아도 상당한 정도로 스피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런 오해를 깨닫고 바로잡는 데에는 이런 책을 읽어볼 필요도 없이 스스로 일상의 경험만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이다. 물론 일상에서는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는 엉터리가 압도적으로 많기는 하다. 그러나 직접 대면을 하든 TV 같은 미디어를 통해서 경험하든, 말을 어떻게 하는게 좋은가에 대해 배울 기회는 충분하다. 앞서 지적했듯이 <말>에 관해서는 우리 자신의 느낌과 평가가 가장 좋은 교과서라는 사실도 매우 중요한 핵심이다.

 

이 책에는 <스프링보드의 법칙(비전을 말할때는 시간적으로 멀리서부터)> 같이 실제 경험에서 쉽게 발견해내기 어려운 법칙들도 여럿 정리되어 있다. 그런 수준의 법칙까지도 필요한 사람이 꽤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는 <쉬운 법칙들>에서 가장 큰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고무하는 사실은, 앞서 인용한 대목에 나오는 것처럼 <자신감>을 얻으면 굉장히 쉬워진다는 참으로 특이한 특성이 말하기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 나오는 법칙들을 외우려고 달려들기 보다는 하나씩 적용해서 작은 성취감을 맛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노력이 될 것이다.

 

말 잘하는 것에 대한 동경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아서, 미국의 유명한 TV 진행자인 Larry King이 쓴 <How to Talk to Anyone, Anytime, Anywhere>(1994)이라는 책도 읽어보았다. 이 책의 부제는 "The Secrets of Good Communication"이다. <의사소통을 잘하는 비결>이라거나 <아무에게나,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말할 수 있으려면> 같은 타이틀은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김자영 교수의 책은 스피치(연설 또는 강연)을 전제로 쓰여졌기 때문에 포커스나 범위에서 약간 다르다고 말할 수 있지만, 핵심은 동일하다. 그 핵심이란 대강 이러하다.

 

1. 두려움을 극복하라. 초조함을 벗어나라. 자신감을 가져라.

2. 솔직한 자세로 대화를 하라.

3.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라.

4. 실수는 대개 용납되지만, 그래도 일관성은 중요하다.

5. 커뮤니케이션의 1차 목적은 듣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6. 커뮤니케이션은 결코 <입으로 하는 말>에 국한되지 않는다. (바디 랭귀지, 패션, 대화장소 등)

7. 커뮤니케이션 중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에 대비를 해두는 게 좋다. (결코 완벽이란 있을 수 없겠지만, 게다가 완벽한 준비가 좋은 것도 아니다)

8. 그밖에 TV 토크쇼에 적합한 기술들 (질문하는 법, 답변하는 법 등)

 

요즘의 경향을 이야기 해보자. 최근에는 <진정성>과 <자신의 약점을 스스로 드러내는 방식>이 좋은 대접을 받고 있다. 한마디로 <인간적인> 면에 점수를 후하게 준다는 말이다. <이 연사 ...를 외칩니다>식의 화법은 저물고 <부드러운 대화>가 뜨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정한 방식에 대한 고집은 옳지 않다. TPO라는 용어도 있지만, 상황이 달라지면 같은 방식이라도 매우 이상해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말을 잘한다는 것은 물론 <언어적인 능력>도 중요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섬세한 인지능력, 상황 파악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자영 교수의 책을 보든 안보든, Larry King의 책을 읽었든 안읽었든, 당장 실천해야할 한가지를, 나는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모순되는 메시지를 제거하라!>

통 큰 사람이 째째한 모습,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솔직한 사람이 긴가민가 머리아프게 만들면 안된다.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면서 잔인한 모습을 삐끔 보여주면 안되는 것이다.

그걸 진정성이라고 하든, 일관성이라고 하든, 이것부터 하고 볼 일이다.

 

 

 

재미있는 대목

Larry King이 첫 연설을 한 나이는 Thirteen이었다고 한다!

 

레이건 대통령은 재임시절 한번은 이렇게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지 그 비밀을 밝히겠습니다. 실은 저에게는 9가지의 재능이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가, 한번 들은 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탁월한 기억력, 그리고 두 번째는...... 에, 그러니까 그게 뭐더라......?"

무려 9가지나 되는 재능에 대한 자랑이 연이어 나올 것처럼 말문을 열어놓고서는 갑자기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니 청중들이 폭소를 터뜨렸지요. 뒤이은 연설의 분위기는 말 안 해도 얼마나 화기애애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김자영, 177쪽)

(**이런 문학적 수사법을 <점강법(Bathos)>이라고 한다.)






댓글(0) | 엮인글쓰기(0) | 스크랩 신고 | 인쇄
 
 
  1 2 3 4 [total 3/4]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