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오바크의‘몸에 갇힌 사람들’의 도입부에는 외부(外部)라는 단어가 두 차례 나온다. 저자의 논지는 우리가 몸과 맺는 관계가 바람직스럽지 않은 것은“외부의 압박”이 교묘하게 작용하는 탓이지만 자신의 고유한 욕망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으로 요약 가능하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가 몸과 바람직스럽지 못한 관계를 맺는 것은 몸을 고치고 바꾸고 증강해야 할 캔버스처럼 대하는 것을 말한다. 몸이 최고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아름다운 여자를 여신(女神)으로 부르는 우리의 세속(世俗)이 증명하는 바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 여신이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얼굴과 뇌쇄적인 몸을 가진 젊은 여성에 대해 붙여지고 있다.

 

이 명명이 비정상적인 것은 진 시노다 볼린의‘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볼린이 긍정한 여신들은 지혜, 사랑, 창조성, 정의 등을 속성으로 지닌 여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바크는 자기 고유의 의지와 외래적 욕망을 명쾌하게 나눌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문제는 사람들이 몸에 집착하는 또는 갇혀있는 이유이다. 내부성의 사유가 주류를 이루었던 서양 철학의 전통을 벗어나지 않았던 데카르트는 확실한 것에 대한 강박증적 집착으로 자신을 속이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악마가 있다는 가정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완전한 관념의 기원을 신(神)에게서 찾은 그는 자신 안에 존재하는 완전성을 어떤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도 흔들리거나 변하지 않는 실체적 본성이라 보았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말을 했는데 그것은 형이상학적 또는 불변적 가치의 붕괴로 읽힌다. 그런데 그렇게 신이 죽은 시대가 사람들이 몸에 집착하는 현상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것은 외부적 요인에 흔들리는 시대가 왔음을 의미한다. 신의 죽음과 관련해 참고로 삼을 만한 것은 르네 지라르의 욕망이론이다. 지라르의 이론은 대상을 자발적으로 원하는 것으로 보이는 주체의 행위도 실은 매개자의 욕망을 모방한 결과라는 내용을 종지(宗旨)로 한다.

 

지라르가 말하는 바는 자신의 고유한 욕망에 충실할 때만이 희생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이는 저자 오바크가 내리는 결론이기도 하다. 저자 역시 데카르트를 인용했지만 차이가 있다. 저자가 데카르트를 인용한 것은 마음이 몸을 장악한다는 이론이 한계에 직면했음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이다.(“기존의 데카르트나 프로이트의 신체관념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저자의 이 말은 몸을 고치고 바꾸고 증강해야 할 캔버스로 보는 관점이 종말을 고했음을 말하는 것으로 들린다.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처에서 뚱뚱한 것을 나쁘게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주장한‘팻(Fat)’,남자들은 여성 특유의 둥근 곡선이 살아있는 통통한 몸매에서 성적 매력을 더 많이 느낀다는 주장을 담은‘남자는 통통한 여자를 좋아한다’같은 최근 책들은 오바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통통한 여자들이 남자들의 욕망 또는 선호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새로운 형태로 작용하는“외부의 압박“이라 할 수 있겠지만 건강에 바람직스런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정체성이, 다른 성(性)의 시선이나 관심을 배제한 채 형성되는 것이 아님을 주목할 필요도 있다. 놓쳐서는 안되는 것은 어떤 시대든 사회문화적 지시에 의해 몸을 형성하는 데 예외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다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신체가 불안정한 시대라는 차이가 있다. 이는 수지 오바크의 주장이다.‘몸에 갇힌 사람들’은 단순한 책이 아니다. 정신분석을 하는 페미니스트로서 내담자에 대한 역전이(逆轉移)를 바탕으로 정교하고 신비하기까지 한 몸의 진실을 말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자기 고유의 몸을 만들어가는 것을 내부의 몸을 키우는 것으로 표현(99 페이지)한 저자는 몸이 다루어지는 수많은 변수들이 양육의 물리적 환경으로서 우리 몸을 형성한다는 말을 들려준다. 네 아이를 둔, 38세의 유능하고 야무지고 영적으로도 충만한 콜레트라는 여성은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숨막힐 듯한 관계로 인해 20여년 간 폭식증을 통해 나날의 위기상황을 만들어내고 극복하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자신의 육체적 존재를 확인하려 했던 내담자이다. 반면 전쟁터가 되어 버린 몸들에서 다루어진 사례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몸을 만들기 위해 치르는 개인의 고투(苦鬪)에 대한 보고(報告)이다.

 

사실‘일주일에 족히 2천번에서 5천번쯤 디지털 기술로 조작된 신체이미지들을 보는’현실은 소외(疎外)의 극을 이룬다. 지나치게 까다로운 색안경을 낀 채 자신의 외모를 평가하고 자신의 몸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외부적 시선을 내면화해 까다롭게 자신의 몸을 본다고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런 점은 섹스에도 적용된다. 저자는 정신분석학이 말하는 취약성에 대한 방어기제를 말한다. 이는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왜 그렇게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마초적인 섹스를 하는 것을 말한다. 섹슈얼리티는 몸들이 만나는 통로로 기능하지만 감정적, 신체적 연약함을 수용하지 못하는 한 연기(演技)를 넘어서지 못하고 몸들은 서로 가닿지 못한다.

 

저자는 현실을 압도하는 cyber 공간의 정체성은 실제적(물질적) 몸의 불안정성과 위태로움을, 더 나아가 나이, 젠더, 인종에서 탈출하는 것의 지난함(至難)함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고유한 몸을 만들라는 오바크의 메시지는 참된 정체성을 형성하라는 주문(注文)으로 귀결된다. 오바크의 메시지가 생각하게 하는 것은 마음이 몸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은 하나이며 마음은 뇌에 있을 뿐 아니라 몸 안에도 있다는 신경과학자 캔더스 퍼트의 말이다. 오바크와 퍼트의 말이 알게 하는 것은 각기 다른 분야에 대해 말하고 있는 두 학자의 메시지가 형성한 접점이다.

우리나라의 하루 자살자수는 35명이다.(강수돌 교수의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 프롤로그 참조) 강수돌 교수는 지난 2005년 5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조치원 신안 1리의 마을 이장을 하며 주민들과 함께 고층아파트 건설 반대운동을 펼쳐 승리를 이끌어낸 분이다. 이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부터 마을혁명‘이다.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 이런 상상을 하는 심정을 헤아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1일 35명의 자살자 수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현실에서 “대통령이라면”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비정규직 제도 자체를 없앨 것이고 쌍용차 같은 파업 노동 현장을 방문할 것이고 용산참사 현장 같은 곳을 방문할 것이라 말한다. 중장기적으로 자동차 생산을 줄이고 자전거를 생산할 것이라 말한다.

 

또한 날마다 하루 네 시간의 생계노동, 네 시간의 사회운동, 네 시간의 친교활동을 하게 할 것이며 특목고니 자사고니 하는 시도 등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며 개성 있는 고교 평등화, 개성 있는 대학 평등화, 개성 있는 직업 평등화를 실현할 것이라 말한다.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에는 이 외에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상상들이 가득하다. 특히 주거와 교육, 의료 문제의 탈상품화를 적극 추진할 것이란 희망이 그렇고 소득세 누진제를 더욱 철저히 실시하고 온갖 탈세, 누세, 비자금 등을 잡아낼 것이라는 이야기도 그렇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이 상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상상이지만 나는 상상의 힘을 믿는다. 물론 나에게는 상상보다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 같은 책을 통해 세상을 아는 것이 먼저이다. 저자의 희망과 상상을 통해서 세상사의 숨은 비밀과 전후관계를 명확히 알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이다. 저자는 참고로 이장 이상의 권력을 탐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본문을 접하면 알겠지만 저자의 상상은 체계적이고 인간적이다. 상상을 위해 한 현실 분석이 체계적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인간적인 것이다. 본문에는 파노라마 같은 사건의 개요들이 잘 드러나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도 있고 미처 깨닫지 못한 것들도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 열린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다는 예에서 보듯 대안은 근본적이다. 본문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서 GDP 중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20 퍼센트에 이른다고 한다. 저자는 건설업이 망하면 나라 경제가 흔들린다는 신화에 따라 팔리지않을 것이라는 예측에도 불구하고 건설업자들이 (팔리지 않을 건물들을) 나라가 사줄 것이란 믿음에 근거해 배짱을 부린다는 말을 했다.

 

위의 내용이 들어있는 천문학적 개발 이익의 원천이라는 글은 리얼하다. 그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모두가 건설자본과 공범관계를 이룬다는 저자의 지적이다. 이는 본문을 읽으면 알 수 있는 바이지만 아파트를 주거공간이 아니라 시세차익 실현의 수단으로 대하거나 투기의 대상으로 대하는 우리에게 원죄가 있음을 의미하는 지적이다.

 

과연 우리는 기존의 모든 트라우마와 기득권을 초월하여 아무 두려움 없이 서로 소통하고 연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라는 저자의 질문은 가슴을 치게 한다. 자신이 만일 대통령이라면 하루 열두 시간을 네 시간 생계노동, 네 시간 사회 운동, 네 시간 친교활동으로 쓸 수 있게 할 것이란 저자의 구상은 돈벌이를 위해 삶의 질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과 행복을 위해 필요한 만큼만 돈벌이를 하는 사회를 향한 구상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다.(하루 네 시간의 생계노동은 “모두 일하되, 조금씩”의 사례이다.)

 

교육 문제에 대한 장에서 접하게 된 핀란드의 교육 성공, 교육 혁신 사례는 부럽기만 하다. 그들의 성공이 자리를 잡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30년 이상이라 한다. 탐욕을 지양하는 대승적인 마음가짐과 사회적 합의, 적절한 노력들이 필요하지만 우리라고 못할 것이 없다고 본다. 핀란드 교육 개혁은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개혁과 맞물려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핀란드의 국가 경쟁력이 국민간의 경쟁심으로 배양된 것이 아니라 공교육을 통해 국민들이 배운 협동심에서 기인했다는 사실 역시 진지하게 되새겨야 할 것이다.

 

앞서 아파트를 시세 차익 실현 또는 투기의 대상으로 대하는 우리의 원죄를 이야기 했는데 저자는 자본이 탐욕의 사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우리들은 그 아래에서 물질의 풍요를 추구함으로써 지구의 순환체계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말을 했다.

 

저자에 의하면 사람들은 너도 나도 돈을 많이 벌어 많이 벌어 많이 소유함으로써 행복해지자,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자는 돈벌이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문제는 행복”이라는 저자의 말은 근본적인 수준의 언설이 아닐 수 없다.

 

정녕 문제는 우리에게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어떻게 실마리를 잡아야 하는지 막막하고 난감하다.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 같은 책이 널리 읽히기를 바란다. 그래야 사회적 토론, 논의도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