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로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외교관이자 정치이론가, 저술가이다. 1469년에서 1527년까지 살았다. 마키아벨리 사후 출간된‘군주론’은 “군주는 어떻게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할 수 있을까” 란 내용이 핵심을 이루하는 정치사상서이다. 이 저서는 1559년 교황 파울루스 4세에 의해 선량한 기독교도에게는 적당치 않은 악마의 사상으로 지정되어 금서 조치 당했다. 그것은 마키아벨리가 당대의 무자비한 군주였던 체사레 보르자를 모범 군주로 설정해 권력을 빼앗기지 않고 존속시키는 냉혹한 정치이론을 이상(理想)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지금 마흔이라면 군주론‘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적절한 연령에 이르러야 특정 작품을 수용할 수 있다는 말을 한다. 저자가 설정한 나이는 마흔이다. 저자는 이상(理想)과 명분(名分)에서는 공자의 덕치(德治)가 강조된 동양에서 실제로는 마키아벨리의 관점이 넓게 통용되었다는 말을 했다. 나는 저자의 이 말에 반가움과 함께 숙제를 풀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다. 예컨대 나는 동양은 자연친화적이고 서양은 자연을 정복과 이용의 대상으로 삼아왔다는 말과 같은 일종의 이분법을 접하고 과연 그럴까, 란 생각을 했다.

 

저자는 20세기 전반 중국의 혼란기에 리쭝우李宗吾가 도덕에 매몰된 공자를 통렬히 비판했다는 말을 했다. 물론 저자가 리쭝우를 언급한 것은 단지 그런 예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동의(同意) 차원의 거론인데 문제(?)는 그런 저자도 공자의 연령주의에 근거해 오십을 지천명으로 설정한 담론에 의거해 자신의 입지를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공자의 연령주의는 서구 근대성의 핵심 논리인 생애주기와 닮아 있다는 말이 있다. 특정한 나이에 맞는 사회적 역할과 규범을 정의하는 생애주기는 젊은 비장애인 남성 즉 가장 생산력 있는 인간을 노동자 모델로 확보하기 위한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동물학자 최재천박사는 통섭(統攝)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며 침팬지의 경우를 예로 든 바 있다. 침팬지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과 정치를 공부하는 사람이 학술적으로 자리를 함께 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동물학자도 침팬지의 마키아벨리적 행태를 주제로 얼마든지 정치학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강의를 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마키아벨리는 인민의 지지를 받는 정치를 강조했다. 사실 이 점은 냉혹, 치밀한 전략 등의 마키아벨리의 이미지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군주론’의 핵심은 권력은 자신의 힘으로 얻었을 때 확고하다, 용병을 믿으면 나라가 망한다, 군대를 모르는 군주는 경멸당한다, 오로지 선만으로는 권력을 지킬 수 없다, 가해는 단번에 선행은 조금씩 점차적으로 베풀어라, 혼란보다 가혹한 조치로 질서를 세우는 것이 더 낫다, 여우의 지혜와 사자의 힘을 갖춰라, 자신이 한번 내린 명령과 결정은 절대로 취소하지 마라, 덕성이 없어도 갖춘 것처럼 위장하라, 자비로 인한 혼란보다 잔혹함으로 인한 질서가 낫다, 잔혹하다는 평판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군주에게 가장 튼튼한 요새는 국민들의 지지와 사랑이다 등이다.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은 현실적이고 현명하고 실리적이다.

 

이런 가르침은“약한 사람은 겸손해질 수 없다. 자신을 낮출 수 없기 때문”(63 페이지)이라는 저자의 말로 뒷받침된다. ‘지금 마흔이라면 군주론’은 저자가 읽은 ‘군주론’ 감상기이다. 그런데 관건은 무력이 중요하더라도 적절히 사용되어야 하며 질서 추구가 중요하더라도 적절히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니 힘을 우선하되 바탕에는 사랑의 정신이 자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최근 안철수씨가 한 보수 일간지의 논설위원으로부터 용산참사에 대해 견해를 표명한 뒤 국정을 책임질 인사가 아닌 운동권 인사 같은 처방이자 현실인식이라는 지적을 받은 것을 보았다.

 

궁금한 것은 국정을 책임지는 사람은 무조건 힘을 앞세워야 한다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관심을 적절한 타협에게로도 보낸다. 완벽한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들 속에서 파멸하기 쉽다는 군주론 15장에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은 잔혹함과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적의 처방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푸라기 개Straw Dags’라는 원제를 가진 존 그레이의‘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는 고대 중국인들이 제사를 지낼 때 신에게 바치기 위해 만든 희생물이 제사가 끝날 때까지는 최고의 예우를 받았지만 제사가 끝나면 내팽개쳐진 것에 착안해 붙여진 제목이다.

 

노자는 “하늘은 어질지 않다. 만물을 지푸라기 개로 여길 뿐”이라는 말을 했다.(‘도덕경’ 5장) 그 뿐인가. 인간의 역사는 폭력의 역사이고 살육(전쟁)의 역사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극히 현실적이고 냉철한 ‘군주론’을 읽는 것은 도움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저자의 해설(첨언)은 경제, 경영의 사례들을 다양하게 나열할 만큼 정세적(政勢的)이고 비근(卑近)하다. ‘지금 마흔이라면 군주론’을 읽으면 적어도 마키아벨리를 조롱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니 그래야 할 것이다.

마흔 하나의 나이에 펑크족 패션의 모히칸 헤어 스타일을 한 엄마. 2년 전 글로리아라는 아름다운 여자와 함께 떠나버린 아빠. 열네 살의 소녀 앨릭스는 그런 부모를 두었다. 그녀는 “엄마의 낙하산은 고장이 나서 자유 낙하를 시작했고..아빠가 그렘린(글로리아)한테 질려서 제발 다시 받아달라고 애걸복걸하며 나타날 거라는, 어리석고 유치한 환상 따윈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라진 아빠와 다리가 부러져 실직한 엄마를 대신해 가장이 된 앨릭스는 돈을 위해 신문을 돌린다. 앨릭스의 학교에는 중동의 어느 나라 출신인 것으로 짐작되는 동급생 사미얼이 있다.

 

사미얼은 형 나짐과 숙모와 사는 불쌍한 아이이다. 앨릭스는 시민권 시간에 "난민이란 자국에서 박해나 죽음의 공포에 직면한 사람들을 말“하며 ”전세계 난민의 숫자는 92만 명에 달하“며 영국(앨릭스의 나라)으로 들어오는 난민의 비율이 겨우 2.7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배운다. 앨릭스는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다. 그 소식을 아빠가 듣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앨릭스의 단짝인 킴은 난민들이란 죽음보다 더한 일을 당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곳으로 왔다는 선생님의 말에 죽음이란 모차르트를 다시 들을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왕따, 학교 폭력, 난민 수용 비율 2퍼센트도 많다는 린디라는 여학생(린디는 사미얼을 2퍼센트라 부른다.) 등‘문 뒤에서’의 전경(前景)은 사뭇 혼란스럽다. 이 특성은 뒤로 갈수록 가중된다. 헤일링 섬에 사는 앨릭스는 꽁꽁 얼어붙은 어느 겨울 날 고문을 당해 온 몸이 피와 멍으로 얼룩진 채 파도에 휩쓸려 온 불법 입국자를 구조해준다.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도피해 망명 신청을 했지만 이민국에서 거절을 당한 모하메드라는 이름의 아랍계 남자였다.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는 앨릭스와, 그러면 불법 입국이 경찰에 알려져 추방당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미얼은 결국 모하메드를 바닷가의 한 오두막에 숨긴다.

 

사미얼은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에 의해 부모님이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서 죽임을 당한 뒤 우여곡절 끝에 영국까지 오게 된 아이이다. 사미얼은 인종주의자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아이이다. 앨릭스는 킴에게 모하메드 이야기를 하나도 빼지 않고 털어놓는다. 앨릭스 일행은 린디에게 모하메드와 함께 있는 것을 들키지만 린디는 모하메드의 상처를 능숙하게 치료해준다. 앨릭스는 모하메드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아빠가 있다면 다 털어놓고 물을 수라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빠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살면서 엄마와 연락을 하고 있었다.

 

앨릭스로서는 우승 인터뷰를 위해 마라톤을 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앨릭스는 사미얼의 집에서 사미얼의 숙모가 겪고 있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듣는다. 쿠르드족의 한 일원이었던 셀마 숙모는 사담 훗세인에게 맞서 반란을 일으켜 후세인의 보복 공격을 받고 몰살당한 마을 사람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다. 사미얼, 모하메드, 셀마 숙모 모두 죽음의 고통 가운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라는 점에서는 하나였다. 어쩌면 그들의 고통은 죽음보다 더한 것인지도 모른다. 가족의 죽음이 머리 속에 그대로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적어도 그들에게 기억은 오묘한 덫이다.

 

철학자 이정우는 한 인간의 정체성 형성에 기억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없다는 말을 한다.(‘기술과 운명’17 페이지) 앨릭스는 사미얼, 모하메드, 셀마의 고통을 보면서 자신이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떠올린다. 앨릭스는 언젠가는 아랍어를 유창하게 하고, 이라크에 외교관으로 가서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보탬이 될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앨릭스는 사미얼과 모하메드와 셀마 숙모의 종교인 이슬람교를 대하며 진작 종교학 수업을 열심히 들어두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물론 나도 앨릭스와 같은 생각을 했다.

 

누군가가 천국으로 가고 그의 가족은 지옥으로 가게 될 경우 과연 가족의 고통을 보며 그 누군가는 행복할 수 있을까? 그때 천국을 과연 지복(至福)의 세계라 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이슬람교가 그에 대해 어떤 답을 마련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앨릭스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은 이 때문이다. 가족과 엇갈린 운명을 가게 된 사람은 인조인간이 받는 것처럼 새 기억을 이식(利殖)받게 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은신처인 오두막이 마치 고문실 같다는 생각에 압도된 모하메드는 바닷가로 뛰쳐 나간 뒤 앨릭스와 킴, 사미얼을 너무 힘들게 한다며 미안해 한다,

 

자신들이 모하메드의 유일한 희망이라 생각하고 신문 보급소 사장이 인종주의자라는 이유로 돈이 궁한데도 일을 그만 두고, 엄마 아빠가 자기들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벌을 왜 자신이 받아야 하느냐 생각하지만 너무 이기적이었다며 사과(謝過)하는 엄마를 흔쾌히 위로할 만큼 쿨한 앨릭스는 사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아이이다. 앨릭스는 불법 입국자를 찾아 돌아다니는 경찰 때문에 불안과 두려움에 빠지지만 자신이 아닌 모하메드를 더 걱정한다. 린디의 오빠 테렌스는 경찰에 모하메드를 신고하고 이 일로 인해 항의하는 사미얼을 칼로 찌른다.

 

발각 직전의 상황에서 린디는 우리 오빠가 사이코인 것을 모르냐며 위기를 넘기게 해주고 경찰은 사미얼을 찌른 테렌스를 체포하러 간다. 난민 입국 비율 2퍼센트도 많다고 빈정대며 사미얼을 2퍼센트라 부르던 린디가 앨릭스의 삶에 선명하게 들어선 순간이다. 앨릭스는 린다를 새 단짝으로 생각하며 (지금껏 단짝으로 지내온) 킴은 린디의 기지와 활약을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 앨릭스는 겉모습만 보고 절대 섣불리 판단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호감이든 반감이든 섣부른 판단은 실수를 낳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마라톤 연습을 재개한 앨릭스는 울컥 화가 치밀어오르자 집까지 전력질주한다.

 

이 순간 앨릭스에게 달리기는 ”전혀 잡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하고 강렬한 열정“(베른트 하인리히 지음‘우리는 왜 달리는가’22 페이지)이었음이 틀림없다. 사미얼의 피습 사건을 계기로 학부모와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앨릭스는 사미얼의 처지를 적극 변호한다. ”우리가 안전하고 포근한 집에 살면서 안전하고 친근한 바닷가를 거니는 동안 다름 아닌 자신들의 고국에서 고통을 당하고 죽어가고 참수를 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과 같은 사람들이 저와 우리 가족, 어린 학생들과 엄마들과 아빠들, 할머니들과 아기들, 그리고, 그리고...“

 

모하메드는 난민 전문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게 되었고 ”혼자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앨릭스는 지금부터 자신의 길을 갈 테니까, 엄마 아빠는 자신과 함께 가기만 하면 되는 거란 생각을 한다.‘문 뒤에서’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청소년 문학이다. 하지만 쉽게 다루기 어려운 첨예한 이슈를 개연성 있는 문체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특정 연령대에 국한한 문학이 결코 아니다. 픽션적 인물이지만 앨릭스가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될지 무척 궁금하다. 열네 살 소녀의 시각을 넘어 활약한 앨릭스를 통해 더 나은 세상, 인권이 보장받는 세상을 생각하게 한 저자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