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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슬픔이 묘하게 어우러진 산문집..'남편이 천사의 말을 한다'  | 수필 2019.03.10 16:4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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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 남편이 천사의 말을 한다
경진출판 | 2018/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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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천사의 말을 한다. 수필문학, 시문학으로 등단한 허금행님의 수필집이다. 저자는 현재 뉴욕에 거주한다. 표제작은 수필집 가장 마지막에 수록되었다. 고교 2학년 때 만난 의과대학 본과 1학년의 남편 이야기이다. 그러나 저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남편은 미국 산부인과 자격시험으로 전문의가 된 후 곧바로 뉴욕신학대학에 입학해 목회학 박사가 되었다. 남편이 끝없이 공부만 할 동안 집안 건사는 아내인 저자의 몫이었다. 남편은 네 번째 수술을 받고 마취에서 깨어나 저자에게 나한테 시집와서 고생만 많이 했다는 말을 했다. 이것을 천사의 말이라 표현한 것이다.

 

저자는 일 때문에 힘들어 한 남편을 위해 운영하던 화랑도 닫았다. 저자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인 고린도전서 13장을 말한다. 자신을 지치지 않고 견디게 한 것이 사랑 장이었구나 란 말을 한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투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사랑은 모든 것을 믿으며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고 견디느니라..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란 구절들로 이루어진 장이 사랑 장이다.

 

이 사랑은 종교적 사랑이다. 계산하지 않는 사랑, 숭고한 사랑이다. 저자는 중학교 2학년에 덜 익은 정포도라는 글을 써내 문예반에 들어간 후 글쓰는 일을 줄곧 해왔다. ‘남편이 천사의 말을 한다란 글에 저자가 사랑은 흐르고 미움은 고인다는 시를 썼다는 대목이 있다. 플라톤은 말은 흐르고 글은 남는다고 하며 그렇게 흐르는 말이야말로 신성하고 빠른 것이라 했다. 이 말을 저자의 말에 대입하면 사랑은 빠르고 신성한 것이라는 말이 되는가?

 

저자는 희망의 속삭임이란 장에서 청각 장애로 평생 장애자 수혜금을 받고 있다는 말을 한다. 지금은 청각이식수술을 받고 최신형 보청기로 말 뿐 아니라 음악까지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일상을 글로 옮긴다. 시를 쓰는 것이다. 미국의 지하철에서 경험한 풍경도 적어놓았다.

 

나무 이야기, 꽃 이야기, 여행 이야기 등등 저자의 글에는 수필을 통해 만날 수 있는 많은 소재들이 있다. 인상적인 것은 이런 말들이다. ”지나온 우리의 삶이 행복한 것이었다고 나를 다독거린다.“, ”나는 이 돌층계를 끝까지 오르면 거기에 행복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스스로 만든 덫에 걸린 나를 탈출시켜야 한다.“, ”꿈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어떤가!“..

 

.‘탈출을 꿈꾸며란 시가 눈에 띈다. ”거울 면에서 멀어질수록/ 멀어져 가는 또 하나의 나는/ 오늘을 탈출하고 싶은 진정한 나이다/ 겨울비가/ 숲속에서 떠도는 어제/ 숨어버린 벌판의 바람과 그림자를 위하여/ 차갑게 흔들릴 때 나는 없어지고 싶어한다/ 시간에서 멀리 잡을 수 없는 공간으로/ 내부에서 밖으로 나와 무너지고 부서져 아무것도 아닐 때까지/ 스스로 부딪쳐 산산조각 흩어지는 나는/ 그대로 갇혀 있는 저 안의 흔적을/ 탈출시킨다/ 밤 깊은 저 너머로“(외우고 싶다.)

 

저자는 전주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전주에서 여중 1학년 때 서울로 전학 온 동기 생각이 난다. 저자는 고교를 이화여고에서 다녔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서예가이신 아버지 앞에서 먹을 갈고 붓글씨 연습을 했다. 시나리오를 써보라는 주위의 권유를 시 아니면 안 쓴다는 대책 없는 고집으로 물리쳤다. 저자는 이를 후회되는 일이라 말한다.

 

글씨가 활자보다 더 아름답다는 말을 들었다는(물론 지금도 그러리라.) 저자를 보며 나도 늦었지만 붓글씨를 연습할까, 하는 생각을 한다.(이렇게 늦은 나이에 붓글씨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을까?)

 

저자는 여성운동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여자가 이 세상에 아이를 태어나게 하는 일은 어떠한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특권이며 아무리 남자들이 무슨 말을 해도 뒤집어질 수 없는 가장 값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어떤 모임에 나가든지 좋아하는 시를 복사해 나가서 함께 읽곤 한다.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도 그 시들 중 하나다. 저자는 아직도 시를 많이 읽는 사람에게서는 향내가 난다는 생각을 깊이 새긴다. 누군가가 저자의 글에 잡글이나 쓰면서...“란 토를 달았다.(너무 무례하다.) 저자는 단정하고 네모나고 메마른 글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라 자신을 표현한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나다운 잡글을 쓸 것이라 말한다. 이어 아주 인상적인 말을 한다. ”잘라내야 할 것을 적당한 시기에 제대로 잘라내야 글도 사람도 이 세상도 풍성해지는 것이거늘, ...“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자탄으로 읽힌다. 저자에게 시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저자는 자신이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날은 많이 힘들 때라고 한다. 시를 생각하는 순간부터 두려움과 함께 심한 두통이 엄습한다. 대학 때, 시를 꺼내기 위해서는 아주 깊은 우물 속 같은 험하고 외로운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체험을 했다. 시로부터 도망쳤지만 끝내야 할 때가 있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글들을 읽었다. 기쁨과 슬픔이 묘하게 어우러진 글이고 생각이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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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다윈, 사실과 허구, 내적 삶과 이론, 그리고 투쟁...  | 소설 2019.02.24 01: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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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 두 사람: 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 식사
갈라파고스 | 2018/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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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 식사라는 부제의 일로나 예르거(Ilona Jerger)의 책 두 사람을 읽었다. 동기(動機)가 된 것은 정조(正租)와 정약용의 관계를, 소설은 아니지만 소설적 상상을 더해 논픽션 형식으로 쓰려는 생각이다. 사실 두 사람이 소설(형식의 글)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소설 형식이어서 잘못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저녁 식사라는 말을 접하고 10년 전 읽은 장대익 교수의 다윈의 식탁을 떠올렸다. ‘다윈의 식탁은 진화론의 후예들이 펼치는 논쟁 형식의 책이다. 나는 다윈에 대해서는 물론 마르크스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최근 흐름으로 보건대 나에게 익숙한 것은 마르크스(의 생애). 대영박물관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자본을 쓴 그를 역시 같은 도서관을 자주 찾아 자기만의 방을 쓴 버지니아 울프와 비교하는 글로 연결지었기 때문이다.

 

독일인 마르크스가 영국인 다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았던 것은 망명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다윈의 존재를 알았다. 다윈을 매우 높이 평가하는 헌사를 적어 다윈에게 보냈을 정도인데 두 사람이 만났다는 기록은 없다.

 

마르크스와 다윈의 관계를 매개한 것은 허구의 인물인 베케트 박사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다윈의 지인이자 마르크스의 사위인 에이블링이 다윈에게 장인을 모시고 집을 방문해 대화를 나누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청함으로써 성사되었다.

 

베케트 역시 두 사람에게 차례로 상대를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했다. 허구의 인물인 베케트 박사는 다윈과 마르크스의 집을 번갈아 방문하며 각기 이런 저런 병에 시달린 두 사람을 치료해주는 주치의로 설정되었고 에이블링은 실제 마르크스의 사위였지만 그가 마르크스의 사위가 된 것은 마르크스가 사망한 후이다. 따라서 이 설정 역시 소설적 즉 (부분적으로) 허구다.

 

저자는 진화 이론 자체가 아닌 다읜의 내적인 삶에 초점을 맞춘 만큼 마르크스에 대해서도 이론 구조보다 마르크스 개인 성격이나 국가 없는 망명자로서의 삶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말을 했다. 다만 다윈의 경우는 집안이나 산책로 등의 풍경이 상세하게 묘사된 반면 마르크스의 경우는 베케트와의 짧은 대화가 주되게 다루어졌다.(자료 찾기가 어려운 결과다.)

 

내적인 삶이나 개인 성격 등에 초점이 맞추어졌지만 베케트가 다윈과, 그리고 마르크스와 나누는 이론적 대화는 꽤 전문적이다. 마르크스와 다윈이 만난 자리에서 오고간 대화도 그렇다. 사실 이 부분은 다윈의 아내 엠마의 문제가 드러난 자리이기도 하다.(엠마는 무신론자인 남편 다윈이 기독교 신앙을 갖도록 설득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다윈의 저술로부터 영향을 받아 자본저술의 단서를 삼았지만 다윈을 기회주의자로 보았다. 마르크스는 다윈이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관찰한 생존을 위한 투쟁을 동물과 식물의 세계에 그대로 대입했으며(141 페이지) 공산주의는 진보이며 순진하게 꿈결 같은 자연 상태가 진보가 아니라는 말을 했다.(146 페이지)

 

다윈은 자연과학자로서 과학이란 모든 사회적인 분쟁의 외부에서 작동해야 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는 말(162 페이지)과 함께 자연에 협력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종이 계속 생겨나는 것은 경쟁의 결과라는 말, 협동을 기본 원칙으로 격상시키려는 사회가 두렵다는 말(163 페이지)을 했다.

 

다윈은 자연의 수많은 법칙 중 몇 가지를 점점 더 이해함으로써 신앙심 깊었던 예전 마음으로 돌아왔다는 말을 한다.(298 페이지) 다윈은 자신을 불가지론자로 규정했다.

 

두 사람은 내 관심사와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책이다. 마르크스와 스피노자의 유대인 및 랍비와의 연관성이 그것이다. 마르크스와 스피노자 모두 유대인이었고 마르크스는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랍비 아버지의 자식들이었으나 그런 점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았고 누가 가족사를 알려고 하면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스피노자는 유대인 공동체에서 랍비가 되기를 기대받았지만 범신론을 버리지 않아 파문당했다. 오랜만의 소설이라 말해야 하지만 소설 이상의 책이라는 생각에 그런 표현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에도 소설 형식의 책이어서 읽기가 쉽지 않았다는 말은 하고 싶다. 재미를 묻는다면 재미라기보다 진실의 감동이 더 크다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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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서 충칭까지 임시정부 역정(歷程)을 다시 찾은 답사 대장정..'임정로도 4000km'  | 역사 2019.02.22 20:3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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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 임정로드 4000km
필로소픽 |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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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 독립운동 100주년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인 2019년은 뜻 깊은 해다. 많은 관련 책이 나왔고 기념식도 성대하게 거행될 것으로 보인다. '임정로드 4000km'도 관련 책들 가운데 하나다. 임시정부는 상하이에서 항저우, 창사, 광저우, 류저우, 충칭 등지를 떠돌았다. 그 길이 4000km라는 사실은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임정로드 4000km'는 세세한 여행 안내가 돋보이는 책이다. 특징적인 것 중 하나는 김구 선생의 효창원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 부분을 0부로 정했고 마지막 10부를 번외편 일본과 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영웅들의 마지막 걸음으로 정했다.

 

도입부라 할 0부에서 만나게 되는 사연은 이승만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다. 그는 김구 선생 묘소인 효창원을 무력화하기 위해 반대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 앞에 거대한 효창운동장을 조성했다. 임정로드 4000km의 시작점은 예전에는 김신부로(金神父路)로 불렸던 서금2(瑞金二路)이다.

 

"임정로드 4000km팀이 카메라와 삼각대, 지도 한 장을 들고 첫 걸음을 뗀 곳이다."(유래가 정확하지 않은 서금이로는 서금 1로와 함께 하는 이웃 길인 2로이고 김신부로의 김신부는 김대건 신부를 말하는 것으로 김신부로는 속칭이다. 서금을 중국어로는 루이진이라 한다.)

 

예관(睨觀) 신규식 선생의 이름을 기억해야 하리라. 흘겨본다는 뜻의 예관이란 호를 가졌던 선생은 중국 혁명 지사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상하이 지역에 독립운동 기반을 닦은 분으로 예관은 을사늑약에 분노해 음독 자살 시도 끝에 살아남았지만 오른쪽 시신경을 잃어 흘겨본다는 의미로 지은 호이다.

 

저자들은 걷고 또 걸어야 길이 생긴다는 말을 한다. 걷지 않는 길은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의미다.(110 페이지) 문재인 대통령이 말했듯 임시정부는 우리의 뿌리이자 정신이다. 더구나 올해는 임정수립 100주년의 해이니 더욱 각별하다. 임시정부가 처했던 여건은 여관(중국 용어로는 '여사: 旅社'.)을 거처로 삼기도 했을 만큼 열악했다.

 

파수꾼을 자처한 세 인물 김철, 송병조, 차리석의 이름도 기억해야 하리라. 특히 평안도 출신으로 신학문을 접한 뒤 안창호 선생이 설립한 대성학교 교사가 되어 후학을 양성한 데 이어 비밀결사인 신민회 요원으로 활약했던 차리석 선생은 임시정부의 내일은 군주제의 청산이며 민주화의 새 출발을 기약함에 있다는 말을 남겼다.

 

저자들은 우리가 치욕스런 역사까지 기억하고 보존하는 중국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172 페이지)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위안부 관련 진열관 하나 없이 소녀상 하나 세우는데도 일본의 눈치를 살폈다.(176, 177 페이지)

 

저자들은 정부가 지켜주지 않자 학생들이 나서서 할머니들을 지키겠다고 나선 것을 가장 안타깝고 아쉬웠던 지점이라 덧붙였다. 금릉대학(현 난징대학)은 여운형, 김약수, 조동호, 김마리아 등이 수학한 곳이고 약산 김원봉 장군이 의열단을 만들기 전 공부한 곳이다.(약산 김원봉 장군은 백범 김구 선생보다 현상금이 컸던 유일한 인물이다.)

 

약산(若山)은 고모부이자 스승인 황상규의 주선으로 짓게 된 호다. 황상규는 김원봉과 김두전과 이명건을 의형제가 되게 했고 각각의 호도 지어주었다. 김원봉은 약산, 김두전은 약수(若水), 이명건은 여성(如星)이다. 산과 같다, 물과 같다, 별과 같다는 뜻이다.

 

정정화 선생이 장강일기(長江日記)’에 썼듯 김원봉은 해방 후 친일 경찰 노덕술에게 모욕을 당하고 결국 자발적으로 북으로 건너갔다. 약산의 금릉대학 동문 중 한 분이 몽양 여운형이다. 좌우합작을 위해 헌신했던 몽양은 혜화동 로터리에서 피살을 당했는데 이는 약산으로 하여금 북으로 가게 한 위협이 되었다.

 

의열단을 창설한 약산은 일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였었다. "애국지사에게 말씀 드리기 송구하지만"이란 말로 운을 뗀 저자들은 임정 멤버들이 정정화 여사의 사진을 보고 보인 첫 반응이 모두 똑같았다는 말을 전한다. 엄청 미인이라는 말이었다.

 

정정화 선생은 열살에 구한말 고위 관료인 동농 김가진 선생의 아들인 김의한과 결혼을 했다. 9년 뒤 시아버지와 남편이 아무 말 없이 상하이 임시정부로 전격 망명하자 선생은 시아버지와 남편을 찾아 1920년 상하이로 망명했다. 홀로 압록강을 건넌 것이다.

 

장강일기에 의하면 드디어 선생이 시아버지와 상봉하자 시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시아버지는 "네가 어떻게 여길 왔느냐,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온 게야?"라고 말했고 정정화 선생은 저라도 아버님 뒷바라지를 해드려야 할 것 같아 허락도 없이 찾아왔습니다.”라고 말했고 시아버지는 "그래 잘 왔다, 고생했다, 참 잘 왔다, 용기 있다."고 답했다.

 

정정화 선생은 상대적으로 감시가 덜한 여성이라는 점을 이용, 독립 자금을 모으는 일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탐사팀은 심한 고생을 했다. 예정보다 일찍 떠나는 기차도 한 몫을 했다. 저자들은 이제 건국절 논란은 그만 하자고 말한다. 임시정부는 1921년에 외교권을 행사했다.

 

저자들이 말했듯 이승만 정권이 출범한 1948815일을 건국절로 못박는 세력들의 잘못을 알리고 임시정부 탄생일인 1919411일을 대한민국의 시작일로 알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저자들은 그런 점이 임정 프로젝트의 이유이자 목적이라 말한다.

 

9부는 해방의 감동을 느끼다란 부제가 붙은 충칭이다충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거처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역사상 최초로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한 곳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사는 피난의 연속이었다. 상하이에서 12, 충칭에서만 4번 청사를 옮겼다.

 

김구 선생의 강력한 의지로 탄생한 광복군은 1942년 조선의용대와 합쳐진 후에야 대한민국의 정식 군대로서의 모습을 보였다. 김구 선생은 조선의용대의 광복군 편입을 결정하며 조선의용대 총대장인 김원봉 장군을 광복군 부사령 및 1지대 지대장으로 선임했다. 군의 좌우 합작 뿐 아니라 임시정부 의정원에도 좌익진영 인사들이 참여했다.

 

그러나 1945815, 일제의 무조건 항복으로 수년 동안 준비해온 국내 진입은 중단되고 말았다. 김구 선생은 3개월이나 해방 조국에 돌아가지 못했고 그 사이 미소는 한반도에 38선을 그었다. 한 달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마지막 부()에서 윤봉길과 윤동주, 송몽규의 묘한 인연을 보자. 윤동주는 북간도에서 태어나 용정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 도시샤대학 영문과 재학중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송몽규는 만주 은진중학교를 거쳐 서울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한 후 1942년 도쿄 제국대학에 입학했다.

 

윤동주 생가를 관리하며 명동촌 촌장을 지낸 송길연씨란 분에 의하면 안중근 의사가 명동촌의 선바위에서 사격 연습을 했다. 안중근 의사가 가장 존경했던 인물은 이준,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 밀사로 파견(1907)된 이상설이었다. 이상설이 세운 간도의 첫 근대식 학교였던 서전서숙은 후에 명동서숙을 거쳐 명동학교로 발전했다.

 

안중근 의사가 간도로 갔는데 이유 중 하나는 이상설의 문하생이 되기 위해서였다. 충북 진천 출신인 이상설은 25세때 과거에 급제한 뒤 을사오적의 처단을 주장하는 상소를 다섯 차례나 올렸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관직을 내던지고 국권회복운동에 나선 데 이어 이듬해에는 조선을 떠나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간도 용정으로 갔다.

 

저자들은 다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자고 말한다. ‘임정로도 4000km’는 중요 부분을 간추려 설명하는 압축적 편성이 돋보인다. 대장정이라 말하고 싶다. 감사드린다

 

 * 네이버 작가 소영처럼님이 제공한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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