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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출신의 건축 거장 알바 알토가 설계한 건물들을 찾아 나선 여행  | 인문 2019.04.26 2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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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 여행의 기록, 알바 알토(Aalto, Architecture & my travels)
시공문화사 | 201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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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찬은 영국왕립건축사협회 정회원인 건축사이다. 그가 쓴 여행의 기록, 알바 알토는 핀란드의 건축사 알바 알토(Alvar Aalto: 1898 - 1976)가 설계한 건축물들에 대한 저자의 단상(斷想)을 담은 책이다. 특징적인 점은 저자가 그린 여러 컷의 건축물 그림이 글과 함께 실렸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라트비아 출신의 미국 수필가/ 문예 비평가인 스벤 버커츠(Sven Birkerts: 1951 - )가 말한 구텐베르크의 비극(Gutenberg Elegies)을 이야기한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으로 시작된 종이책이 주는 독서와 관련된 감수성들이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큰 고민 없이 사라져 가는 현실을 말한다.

 

알바 알토는 건축 디자인 뿐 아니라 조명, 가구, 인테리어, 패브릭, 냅킨 디자인 등까지 디자인했던 건축가다. 알토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미스 반 데 로에, 르 코르뷔지에 등과 함께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이면서 기능과 합리주의에 매몰되어 지역 환경의 차이를 소홀히 한 모더니즘 건축의 한계를 벗어나 유기적 모더니즘 건축가로 평가받는다.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듯 '여행의 기록, 알바 알토'는 저자가 한 핀란드 여행에 바탕을 둔 책이다. 저자는 첫 행선지로 아카데믹 서점을 택했다.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주인공 사치에와 미도리가 처음 만난 장소다. 알토가 설계한 이 건물은 블랙박스 같은 외양과 달리 하얀색 대리석으로 마감된 아트리움이 자연광으로 충만한 곳이다. 천창(roof light)이 인상적인 곳이다.

 

저자는 알토 하우스를 방문하기도 한다. 발터 그로피우스가 설계한 바우하우스 학교 마스터스들이 거주하는 빌딩인 데사우 매스터스 하우스를 모델로 설계한 알토의 집이다. 알토는 일본 건축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저자는 알랭 드 보통이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사보아 주택(Villa Savoye)을 예로 들어 삶과 동떨어진 건축이 그 안에 사는 가족의 삶을 황폐하게 하는지 지적했음을 전하며 알토 하우스는 그와 격이 다름을 강조한다.

 

본문에는 알토가 설계한 대표 건물인 KELA가 나온다. 핀란드 국민연금센터다. 이 건물 내에 도서관이 있다. 알토는 도서관 건축을 많이 남겼다. 알토 대학 도서관, seinajoki 도서관 등.. 알토 대학 도서관은 메인 빌딩의 한 날개로 자리하고 있다.

 

알토가 설계한 거의 모든 도서관은 KELA 도서관처럼 둥근 천장을 가지고 있다. 이 도서관은 1935년 알토가 설계한 비푸리(Viipuri) 도서관을 닮았다.(비푸리 지역은 현재 소련에 이양되었다. 소련에서는 비보르크vyborg’라 부른다)

 

KELA도서관 내부에는 밖을 볼 수 있는 창이 없고 중앙에 둥근 천창들이 있을 뿐이다. 이 창을 통해 빛을 받아들인다. 2층 열람실로 향하는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1층에 창이 없는 것처럼. 오직 책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건축 역사에 길이 남을 알바 알토라는 이름을 유산으로 상속받은 건축학교가 있다. 알토 대학 건축과이다. 알토가 설계한 건물 중 핀란디아 홀도 있다. 시벨리우스가 작곡한 교향시 핀란디아에서 이름을 가져온 건물이다.

 

저자는 알바 알토의 건축을 여행하는 동안 계속 머릿속에서 포르투갈 출신의 알바루 시자(Alvaro Siza)라는 또 다른 세계적 거장의 이름이 떠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2006년 안양(安養)의 안양파빌리온을 설계한 건축가이다. 알바루 시자가 알바 알토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여행의 기록, 알바 알토는 얇지만 꽤 알찬 책이다. 저자가 선배 건축사들로부터 받은 영향과 거장 건축가 알바 알토의 업적, 그리고 그에게 영감을 얻은 후배들의 면면을 알 수 있는 책인 한편 알토의 도서관에 대해 흥미를 갖게 하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천창(天窓)에 대한 단서를 얻은 책이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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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사상을 쉽고 재미 있게 설명한 책...  | 인문 2019.03.31 23:3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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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 마르틴 루터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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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젠 요시카즈(德善義和: 1932 - )마르틴 루터는 이와나미 문고로 나온 책이다. 저자는 신학박사이자 목사이다. 루터는 말에 생애를 바친 인물이다.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열되고 서로마 제국이 라틴어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하자 그리스도교 교회는 스스로를 로마 카톨릭이라 칭했다.

 

중세 말 내내 교회는 라틴어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고해성사는 민중을 위하는 그리스도교의 대표적 의식 중 하나였다. 이때 언어는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였다. 민중의 마음과 성서의 가르침을 이어준 가장 친밀하며 유일한 접점이었다.

 

고해성사만으로는 불안을 해소할 수 없었다. 성직자가 대신 참회를 해주었다. 여기서 진화한 제도가 면벌부 제도였다. 교회는 이익을 추구하며 돈을 받고 면벌부를 팔았다. 루터가 배운 아이제나흐의 성게오르크 학교는 200년 후 바흐가 배운 곳이기도 하다. 루터는 에르푸르트 법대 학생이 되었다.

 

루터는 고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판 한가운데서 벼락을 맞고 쓰러졌다. 루터는 공포 속에서 성 안나(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수호 성인), 살려주시면 수도사가 되겠습니다.”라고 소리쳤다. 살아난 루터는 서원대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수도사가 되었다.

 

이 수도회는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의 계보를 잇는 프란치스코회 계열이었다. 은둔 수도회가 아닌 도시에서 지내는 탁발 수도회였다. 탁발은 스스로 부족한 존재임을 마음에 새기는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이후 전통으로 자리잡은 행위였다.

 

저자는 루터가 종교 개혁을 추진한 이유 중 하나로 수도원의 타락을 꼽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수도원의 가장 좋은 부분에 잠재한 뿌리 깊은 문제 즉 자기만족과 거만을 깨달은 결과라는 것이다.

 

루터는 개체야말로 실재이며(유명론) 실재는 의지와 능력에 의해 확인된다는 오컴의 논의에 익숙했다. 유명론(唯名論)은 인간 총체(보편)란 이름 뿐이며, 존재하는 것은 개개의 개체라고 보는 입장이다.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들을 읽음으로써 인간이란 죄 있는 존재이며 무()인 존재라서 은혜로운 구원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이는 중세 철학과 신학을 지탱해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1511년 루터는 수도회의 명을 받고 학적을 비텐베르크대학으로 옮긴다. 루터는 이곳에서 신학 연구를 계속했고 이듬해는 신학 박사가 되어 성서 교수로 임명되었다.

 

성서 강의를 하던 루터는 당신의 의로움으로 저를 해방시켜주십시오.”라는 구절(시편 312)에 걸렸다. 신의 의로움을 분노, 심판, 벌이란 맥락에서 파악해온 루터는 신의 의로움과 인간의 구원이란 결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루터는 그리스도가 신의 의로움과 인간의 구원을 매개한다고 이해했다. 신의 의로움이란 신에게서 인간에게로 의로움이 선물로 주어진다는 의미다. 독일에는 네 개의 루터의 도시가 있다. 탄생지 아이슬레벤, 라틴어학교를 다닌 아이제나흐, 수도사의 길에 들어선 에르푸르트, 수도원의 명으로 간 비텐베르크(여기서 그 유명한 95개 반박문이 내걸린다.) 등이다.

 

비텐베르크는 당시 인구 2000명의 소도시였다. 나치 시대에 유대인 학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루터는 인간의 죄에 대해서, 그 죄에서 구원해주는 은혜로운 의로움에 대해서,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구원을 받는다는 점에 대해서 가르쳤다.

 

루터에게 성서 강의는 성서에 관한 자신의 이해를 학생들과 나누는 활동이었다. 종교개혁이란 기본적으로 성서를 읽은 운동이다. 이는 성서를 혼자 읽는 것에서 나아가 모두와 함께 읽고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나누는 운동임을 의미한다. 그 모두에 해당하는 첫 사람들이 비텐베르크 대학 학생들이었다.

 

루터는 민중 속으로 들어가 성서 읽기 나눔 활동을 펼쳤다. 성서가 라틴어로 쓰인 시대에 독일어로 말해주자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루터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설교했다는 점에서 차별적이었다. 죄를 강조하는 다른 설교자들은 필연적으로 면벌부 판매로 나아갔다.

 

면벌부는 당시 민중의 요구에 부응한 행동이었다. 문제는 불안해 하는 민중의 요구에 편승해 민중의 영혼을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한 것이었다. 면벌부 시스템에는 자기 자신을 체크하는 기능이 없었다. 루터는 이를 지적했다.(75 페이지)

 

7세기경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고해성사는 초기에는 수도사들이 짊어졌던 민중의 죗값을 배려한 진지한 행위였다. 면벌부로 인해 급기야는 몸으로 직접 벌을 필요도, 대리인을 쓸 필요도 없어졌다. 95개의 논제를 통해 루터가 성직자와 신학자들에게 묻고자 한 것은 단순한 교회비판이 아니라 민중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것이었다.(88 페이지)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은 모두 성서의 말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는가? 루터는 95개조 논제를 통해 그렇게 물었다. 15187월 루터를 60일 이내에 로마로 소환해 이단 심판에 부치겠다는 결정이 내려지자 독일 민중, 제후 등이 맹렬히 반발했다. 루터는 원래 루더였다. 95개 논제를 발표한 시점부터 루터라 이름했다.

 

1518년 아우크스부르크 심문, 1519년 라이프치히 토론, 1521년 보름스 심문이 루터가 맞이한 3대 시련이었다. 보름스 심문은 최고재판소 판결을 의미한다.(106 페이지) 보름스 심문에서 루터는 저의 양심은 신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교황과 공의회를 믿지 않습니다.”란 말을 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칼 5세는 루터에 대해 제국 내에서의 일체의 법적 보호를 박탈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보름스에서 비텐베르크로 가던 중 루터가 자취를 감춘다, 선제후 궁정 고문관들이 벌인 눈속임의 유괴극이었다.

 

루터는 바르트부르크성에 은닉되었다. 루터는 작은 밧모섬에서라고 발신처를 쓴 편지를 보냈다. 밧모섬은 에개해 남동부의 작은 섬으로 요한이 이 섬에 들어갔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곳이다. 루터는 이 섬에서 저술을 했고 신약성서를 번역했다.

 

루터의 관심 대상은 성서의 문자와 어구를 얼마나 세밀하게 다루느냐가 아니라 성서에 담긴 신의 은혜로운 말 즉 복음이었다.(123 페이지) 루터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종교개혁은 철학이 신학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립적인 학문으로 발전하도록 해주었다. 종교개혁은 근본적으로 교회라는 제작 거점이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회화는 점차 교회 밖으로 나와 시민 예술의 한 축을 이루었다. 음악도 조금 늦었지만 마찬가지였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단순히 교회의 추락을 바로잡는 것이었다면 글자 그대로 리폼이었을 뿐 리포메이션이라 불리지는 않았을 것이다.(152, 153 페이지)

 

그것이 개혁을 넘어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은 사람들의 신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찬송가가 그리스도교 예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지만 교회에 모인 사람들이 부르는 찬송가 문화를 만든 것이 루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한다.(175 페이지)

 

민중이 부르는 찬송가를 코랄이라 한다. 루터는 평생 약 50편의 코랄을 작사했고 그중 몇 곡은 작곡도 했다. 성서의 말에 근거한 루터의 개혁은 교회 내부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주목할 것은 학교 교육 개혁이다. 당시 독일 사람들의 문자 해독률은 높지 않았다.

 

초등교육은 교회와 수도원에서 사제와 수도사들이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는 수준이었다. 루터와 에라스무스의 관계도 흥미롭다. 인간 의지에 대해서 에라스무스는 학문의 문제로 받아들였고 루터는 신앙의 문제로 받아들였다.(197, 198 페이지)

 

루터는 죄에 사로잡힌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는 없으며 신을 따르든 악마를 따르든 의지는 노예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견해를 고수했다. 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을 한층 첨예화한 결과다. 에라스무스는 어느 정도까지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루터의 필생의 작업은 성서 번역이었다. 그는 성서의 말이 가리키는 진리를 평생 추구하고 전파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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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분류하는 체계에 대하여..  | 인문 2019.03.12 13: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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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 평생공부 가이드
유유 | 201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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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박사, 저술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편집장을 지낸 모티머 애들러(Motimet Adlet; 1902 2001). 그의 '평생 공부 가이드'는 독특하다는 평으로는 부족한 책이다. 저자는 찰스 반 도렌과 함께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을 쓴 분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여기까지 읽을 만큼 인내심과 끈기가 있는 일부 독자는 약간 당황했을 것이라 말한다.(161 페이지) 이 책은 어떻게 공부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지식 분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책을 열면 인문학을 전문화라는 야만을 다스릴 치료제로 이해함으로써 아스펜 인문연구소의 설립을 격려한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에게란 말이 있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안내서라 부른다. 종국에는 매력적인 목표이자 노력의 완성인 이해와 지혜에 도달하기를 바라며 모든 사람이 여정을 시작할 때 필요한 지도를 자신의 책이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종합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을 추구하는 책이고 스스로 공부해 이해와 지혜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이다. 저자는 당대의 모든 지식을 알파벳순이 아닌 방법으로 백과사전처럼 포괄했던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알파벳순인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인간의 지식을 조직하는 체계적이고도 원리적인 방법을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37 페이지)

 

물론 백과사전의 항목을 알파벳순으로 하지 않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구성하면 이용자에게 지식의 구조 즉 학식 세계의 지도를 제공할 수 있지만 이용자가 관심 있는 항목을 손쉽게 찾게 해주는 참고 도서로서의 기능을 갖추지 못하게 된다.(41 페이지)

 

저자는 인문학이 학문의 모든 갈래를 열거한 뒤 남는 것을 가리키고 있음을 비판적으로 본다. 저자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이야기를 한다. 기원전 1세기에 이집트를 침략한 로마군의 공격에 잿더미가 된 그 도서관의 파피루스 필사본들이 어떻게 배열되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것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리에 맞게 배열되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59 페이지)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원전 4세기에 리케이온에서 한 강의를 일군의 정연한 논리로 편집하고 편찬한 것도 백과사전으로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저는 물리 현상과 천체의 운동에서 시작해 식물과 동물, 생명의 모든 현상을 거쳐 생물의 영혼에서 끝나며, 신학적 논의의 마지막 부분이자 편찬자가 형이상학이라는 제목을 붙인 논저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러한 저작 다음으로 윤리학, 정치학, 수사학, 시학을 다루는, 이론적이기보다 실천적이라 할 만한 다른 종류의 논저가 이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 전체의 서론을 이루는 것은 논리학과 학문 방법론에 관한 논저로서, 이 논저를 통칭해 오르가논이라 부른다.(33, 34 페이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론적 지식의 영역을 하위의 자연학, 중위의 수학, 상위의 형이상학의 위계질서로 조직했다.(162 페이지)

 

프랜시스 베이컨은 책을 산출하는 인간의 능력을 오름차순으로 기억력, 상상력, 이성으로 분류했다. 전기(傳記)와 역사는 기억력의 영역에 들어가고, 시와 픽션은 상상력의 영역에 들어가고, 철학은 이성의 영역에 들어간다.(60 페이지) 물론 기억력만이 아니라 이성과 상상력도 역사적 지식에, 역사적 연구와 서술에 관여하지만 기억력이 없이는 역사도 없다.

 

마찬가지로 기억력과 상상력은 모든 형식의 철학적 또는 과학적 기획에 관여하지만 이성 없이는 철학이나 과학은 존재할 수 없다. 이성과 기억력 역시 시 창작에서 일정 역할을 하지만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상상문학은 없을 것이다.(91 페이지)

 

저자는 여러 학자들을 이야기한다. 그 중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을 빼놓을 수 없다.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언어의 사용과 정신의 작용을 통제하는 훈련, 문법과 논리를 공부해 습득하는 기술을 배움의 첫 단계로 정했다. 플라톤처럼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도 특정 주제에 대한 공부를 개개인이 많은 경험을 쌓아 원숙해진 시기로 유보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과 정치학 공부는 젊은이의 몫이 아니라 말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론적 진리와 철학적 지혜를 추구하는 탐구의 정점 또는 가장 높은 수준과 관련이 있다. 플라톤은 변증술,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이다.(형이상학은 물리현상을 넘어설 뿐 아니라 변화, 움직임, 생성보다 존재에 관심을 두는 학문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차이점도 많다. 플라톤은 물리적 세계와 자연의 관찰 가능한 현상에 대한 지식을 주는 학문 전부를 뺐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포함시켰다.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론적 지식과 실천적 지식을 엄격하게 구분했다.(79 페이지) 플라톤은 역사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가 역사보다 철학적이라는 말을 할 때 한 번 역사를 언급했다. 시는 실행할 수 있거나 실행할 법한 행위를 묘사하고 역사는 일어난 사건만을 다룬다.

 

입증이나 반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보면 역사, 철학, 과학 등은 지식의 영역에 속하지만 시는 그렇지 않다.(92 페이지) 그런데 위의 네 영역을 더 넉넉한 의미로 진리를 받아들일 경우 모두 진리에 포함된다. 저자는 우리의 이해에 이바지하는 시와 철학의 공통점은 지성을 사용하는 것이라 말한다.(186 페이지)

 

디드로와 달랑베르는 프란시스 베이컨에게서 심대한 영향을 받았지만 베이컨과 달리 종교적 신학을 철학에 포함시킴으로써 인간의 지식과 신성한 지식의 구별을 무시했다.(102 페이지) 콩트는 인간 지식의 세 단계 발달론을 제시했다.

 

지식을 신화나 미신 등과 동일시한 신학적 단계, 형이상학 즉 사변적 단계, 실증과학으로 대표되는, 경험적으로 증명된 타당한 지식의 단계다.(114 페이지) 저자는 에피스테메와 파이데이아의 차이를 설명한다. 라틴어로 Scientia(스키엔티아)로 번역하는 그리스어 에피스테메는 특정 전문 분야에서 사용되는 전문 지식을 말한다. 라틴어로 후마니타스로 번역하는 그리스어 파이데이아는 모든 사람이 갖추어야 하는 종합적 지식이다.(173 페이지)

 

저자는 전문화를 야만이라 부른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를 언급한다. 저자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종합인이면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생 초반, 후반에는 종합인이 되어야 하고 중반에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177 페이지) 저자는 평생 공부를 지속하는 데 특히 필요한 것은 시와 상상문학에서 얻을 수 있는 종류의 이해라 말한다.(205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종합적 교양인을 나타내는 표식은 인간 학식의 전 영역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21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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