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프리모 레비는 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가다. 1919년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태어났고, 1941년 토리노 대학 화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유대계였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말 파시즘에 저항하는 지하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당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고, 제3수용소에서 노예의 삶보다 못한 나날을 지냈다. 1945년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 토리노로 돌아왔고 1977년까지 니스 공장에서 관리자로 일하며 작품들을 발표했다. 1987년 토리노의 자택에서 돌연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 책은 프리모 레비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에서 보낸 10개월간의 체험을 기록한 거시다. 그는 자신이 목격하고 감내한 공포를 세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특유의 절제와 위트를 잃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극한의 폭력에 노출된 인간의 존엄성과 타락의 과정을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독일 나치스의 유태인 학살은 영화화 되기도 하였었던 부분이라 낯설지 않은 과거의 상처였다.

하지만 레비의 기록은 너무도 참담하지만 침착하게 하나하나 서술하고 있어 더 충격적이었다.

사실 자국의 아픈 식민지 수탈역사를 가진 나로써는 동정심은 가지만 그리 크게 와닿지 않는 일들이었다. 적어도 이책을 읽기 전까지의 아우슈비츠에 대한 내 개인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존재하는 인간을 마치 처음부터 짐승이었던 양 그런 무리로 만들어버리는 아우슈비츠의 그 힘에 분개함을 갖기도 전에 탄복하고 말았다. 아침 저녁으로 일터로 오고가는 행진은 작가는 정말 상상조차 하기 싫다는 군악대의 음악소리에 맞추어 딱딱딱딱 발걸음 소리가 들어보지도 못한 내 귓전에 울려 퍼졌다. 

책을 읽는 내내 너무도 담담한 어조에 난 하마터면 독일 나치스에 대한 적개심을 잊고 그저 짐승같은 생활을 하는 수용소 내부인들에 대한 막연한 동점심만으로 글을 읽어나갔다. 거의 책을 읽는 대부분의 시간이 그랬다... 얇은 거적대기 같은 옷을 걸치고 나막신을 신고 머리는 빡빡밀린채 몸은 만신창이를 하고서 겨울을 여름을 지나고... 병이라도 걸렸다하면 카베에서 열악한 치료를 받고... 수용소보다 수용인원이 늘어날 때면 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리고 나머지는 그저 기계적으로 분류되어 가스실로 향하는 지상에 지옥이 있다면 그것과 다를 바 없었을 아우슈비츠의 모습이었다.

그곳에서는 미래를 섣불리 생각할 수도 없었고, 예측이란 무의미 했으며 무엇보다도 생각하는 것이 사치인 곳이었다. 한끼 한끼를 걱정해야 했고 묽은 감자죽에 감자 알갱이를 두고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잘때도 씻을 때도 먹을때도 볼일을 볼때도 사소한 소지품하나하나를 도둑맞지 않도록 온몸에 지녀야 했으며 좁은 침대를 안면도 없는 자들과 함께 써야 했다. 씻는다고는 하나 물은 구정물이었고 마실수도 없었다. 사실 수용소내에는 마실물이 전혀 없었다. 갈증을 달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다행이도? 죽이 너무 묽어서 갈증을 달래기에 좋았다. 아프리카의 기아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보면 못먹어서 팔다리는 비쩍마르고 배만 올챙이처럼 툭 튀어나온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레비는 자신이 그런 모습이었다고 서술한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는 말이 여기서도 실현된건 당연한 일일까? 아픔이 사그라 들면 추위가 괴롭히고, 추위가 사그라 들면 배고픔에 몸부림을 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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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오늘날의 예술은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특히 미디어 아트의 경우 이런 말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아 졌다. 그저 작가의 주장, 취향, 기술적 능력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작품에 대해 느끼는 이러한 단절감과 무감동의 근거를 밝히기 위해서 이 책의 저자는 예술을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는 신비의 현현이라고 보는 관점에 무게를 두고, 예술이 비합리적인 신비의 세계를 드러내는 힘을 지니고 있으며 그 세계와 소통하게 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예술이 근거로 삼고 있는 이미지가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그 힘은 어디서 비롯되는지, 또한 그 힘이 예술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등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이런 예로 미술사 책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라스코 동굴벽화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이미지의 소개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원형(archetype)적 이미지인 뱀과 새, 가면, 성상, 만다라에 대해 소개함으로서 이미지의 상징적 힘과 더 나아가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신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신성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은 결국 신비주의 체계와 연관되어 비학, 연금술, 기하학을 통해 인간과 자연과 우주의 조응을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학문적 배경을 토대로 결국 저자는, 오늘날의 상품화와 철저한 물질화 속에서 본질을 잃고 죽어가는 예술에 대해서 반성이 필요하며, 예술이 태곳적에 지니고 있던 하나의 역할인 인간과 우주와의 간극을 매개하여 행복한 화해에 이르게 한다는 주술적 역할을 강조한다. 예술 역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며, 자연으로 회귀하려면 예술적 창조성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보아야 하며, 진정한 창조는 대우주와 호흡을 같이하는 일이라고 보고 있다.

결국 이 책의 저자에게 있어서 예술이란, 단지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자연과 세계, 존재하는 것에 대해 명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일체감을 느끼는 일, 작은 우주인 인간이 커다란 우주와 조응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일이다. 예술이 인간과 우주를 화해시킨다는 저자의 입장이 다소 과장된 의미 부여인 듯 하지만 '왜 예술 작품을 보는 것인지', '작품에서 무엇을 봐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책이다.

 

이미 지난해의 얘기다. 나이가 막 오십이 된 어느 한 소설가가 
해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한 권의 수필집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눈에 번쩍 띌 만한 한 구절을 발견했다. 

“새해다. 내 나이 오십이다. 이제 더 이상 삼등열차를 타지 않으리라.” 

그 구절을 읽은 소설가는 그 말이 너무도 쓸쓸해 눈가에 이슬이 맺힐 
뻔했다. 오십 전에 이 가난한 작가는 얼마나 자주 삼등열차를 탔으면 
그런 결심을 다 했을까 싶은 게 당최 그 말이 남의 말 같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이야기를 자신이 활동하는 어느 환경단체의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고, 거기에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이 하나둘 
글을 더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내가 읽은 책 ‘50헌장’은 그렇게 세상에 나온 책이라고 했다. 
제목은 거창하게 헌장이라고 했지만, 거기에 실린 내용은 나이 오십이 
되거나 가까워진 사람들이 자신의 지난 삶을 반성하듯, 혹은 한 집안과 
사회의 어른으로서 지켜야 할 50가지의 덕목을 적은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나 역시 내일모레면 오십이라 저절로 그 책에 손이 갔다. 내용은 미처 
살펴볼 사이 없이 제목부터 일별했다. 나이 오십 언저리의 사람들이 쓴 
글이라 내용 또한 쓸데없이 무겁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흔히 ‘지천명’
이라고 하는 오십의 나이가 이렇게 경쾌한 면도 있었나 싶게 튀는 
제목들이 많았다. 

‘콩가루 집안을 부끄러워하지 말자(알고 보면 세상 모든 집안이 
다 콩가루 집안처럼 지지고 볶고 산다)’ ‘자식은 내 인생의 적이다’
 ‘싫다, 안해, 하는 표현에 익숙해지자’ ‘섹스에 더욱 전념하자’ 
‘나이를 벼슬이나 무기로 삼지 않는다’ ‘이제는 평수를 더 늘릴 때가 
아니다’ ‘나 없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아버지도 1등은 아니었다’ 등 
제목만 봐도 그래그래, 하고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이어서 
그날 밤 안으로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애초 시작은 한 소설가가 나이 오십에 대한 자기 생각을 게시판에 
올린 것으로부터였지만, 거기에 하나하나 항목을 더해간 사람들은 
월급쟁이의 대명사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오랜 시간 한 직장을 다녀 
그 회사의 중견 간부가 된 서울 어느 큰 병원의 검진팀장, 

고등학교 때 ‘토지’를 읽다가 소리를 배우려면 그 소설 속의 
봉순이처럼 권번에 들어가야 하는 줄 알고 소리 배우기를 포기한 
현직 고등학교 선생님, 잡지 기자와 리포터, 프리랜서로 오랫동안 
활동했던 수필가, 두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섬에서도 살고 
산기슭에서도 살다가 지금은 어느 중소 도시에서 살면서 아직도 
자기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새로운 인도’를 늘 꿈꾸며 사는 어느 주부, 

이제까지의 생활에서 보인 자신의 성실성이 지겨워 앞으로 
‘근사한 불량 할머니’가 되는 것이 장차 소원이라는 어느 50대의 여성, 
자신의 오랜 의료행정 경험과 중국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에 직접 
병원경영 관련회사를 설립한 벤처 모험가, 글과도 거리고 멀고 나이 
오십 가까이 되도록 평생 명함 한번 가져본 적 없는 순도 100%의 
또 다른 전업주부, 수년 전에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창립하고 
‘어디 한번 제대로 살아보자’고 환경판에 뛰어든 오십 중반의 여류화가, 

어떻게 하면 하루하루를 쉽고 편안하게 지내며 행복할까만을 
연구하는 1인 생활건강 연구소의 소장, 예전에 술만 마시면 매일 
출근하다시피 광화문 파출소의 화장실을 이용해 별호까지 ‘광파’가 
되어버렸다는 또 다른 소설가, 이들보다 나이가 한참 어리지만 세상 일에 
둔하기로 따지면 이미 정신연령 오십을 훌쩍 넘겨버린 어느 출판사의 
직원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 경험 안에서 오십의 쓸쓸함과 또 한편으로 갖게 되는 
새로운 열기를 더러는 비장하고 더러는 유쾌하게 ‘나는 이렇다. 
너는 안 그러냐?’고 우리에게 묻는다. 더러는 나와 생각이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걸 계기로 우리 한번 제대로 
우리 사회에서의 오십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오십이 되거나 
가까운 사람들 모두 이제부터 내 인생 내가 디자인하자는 것이다. 
그것도 유쾌하게. 

소설가 

[세계일보 2005-02-27 1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