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홀 뚜껑 속 어둠처럼 마음 속의 어둠이 점차 커지기 시작한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단지 18살 아버지의 죽음 말고는..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의 폭력은 일상생활이라고 할만큼 엄마를 때리고 심지어 자식들까지 때리기 일수였다. 그런 아버지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 어린 남매가 선택한 것은 집을 피해 새로운 안식처를 찾는 것뿐이였다. 언덕 위의 공사가 중지된 빌라의 맨홀 안은 남매의 안식처였으며 새로운 집이였다.

 

하지만 누나는 커서 더이상 다른 곳의 안식처를 찾지 않았고 동생만 덩그러니 혼자 남겨져 버렸다. 그리고 18살에 자신들을 괴롭히던 아버지가 훈장과 감사패를 받으며 이 생을 마감했다. 집에서는 폭력을 휘두르는 나쁜 사람이였지만 밖에서는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멋진 소방관이였기에 장례를 치루는 동안 아버지를 닮으라는 그 말을 들으며 견디기를 힘겨워했다.

 

기진이 패거리를 알게 되고 친하게 지내면서 친구도 만들었지만 지루함은 달라지지 않았고 어느날 파키(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폭행을 당한 일을 계기로 멀어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친하게 지냈다. 그리고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사건은 하나의 우연과도 같이 일어났다. 누나의 잔소리를 피해 집을 나오고 아르바이트했던 가게를 들리고 고물상을 들리고 기진이네들하고 놀다 희주를 만나고 날 때린 파키인을 만나서 붙잡아 그만 죽여버리고 마는 꿈같은 우연들이.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던 어린 남매는 각기 다른 길로 향하고 말았다. 누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행복을 찾았지만 남동생은 엇나가고 말았다. 마지 어릴적 누나가 발견한 맨홀 뚜껑 속 껌껌한 어둠처럼 남동생의 마음 한 켠에는 아버지의 폭력으로 물든 어둠이 점차 커지고 말았던 것 같다.

 

 

맨홀, 박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