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이 고비만 넘어서면 무언가 힘듦은 끝이 나고 행복이라는 것이 다가올 것 같았다. 그렇게 믿고 생각하며 수험생시절을 버텨서 대학이라는 것에 들어갔지만 오히려 더 높은 산이 나타났고 고통의 무게와 크기는 더욱이 커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취업이라는 고난을 겪고 나면 더 나은 직장, 돈 문제, 결혼문제, 가정생활 등 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고 정답이 없는 문제에 피로감은 점점 쌓여가며 저절로 ‘포기’라는 단어가 생각나게 된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고 당연한 것이니 너도 그 정도는 이겨내야 한다’라고 이야기 한다. 삶은 고난의 연속이고 버텨내는 것이 삶의 본질이기 때문에 그래야만 한단다. 그렇게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만 가득한 채 지쳐만 간다.

 

‘도망치고 싶을 때 읽는 책’

제목만으로도 벌써 혹하고 기분 좋게 만들어 준다. 뭔가 힘든 세상에 해결책이나 방안을 알려줄 것 같은 생각이 들기까지도 하지만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이 덜 상처받는 일이라는 게 지금껏 버텨내온 삶에서 그나마 배운 것이다.

누구나 사는 것이 힘들고 지치며 책임으로 부터 회피하고 도망가고 싶어 한다. 사람들 속에서 소외되지 않고 살아가고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조용한 곳에서 홀로 사람들의 간섭을 받지 않고 눈치 보지 않으며 나의 삶을 오롯이 살아가고 싶어 하는 양가감정이 들기도 한다. 그런 이들에게 ‘도망쳐’라고 말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기에 이 책이 할 도리는 했다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 괜찮다’, ‘포기해도 된다’, ‘넌 특별하다’라는 틀에 박힌 소리를 듣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너무 각 주제에서 현실적인 해결방법을 나열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다른 자기개발서와 유사한 느낌에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다.

 

“두려움은 어제의 슬픔을 소멸시키지 않는다. 내일 닥쳐올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않는다. 두려움이 하는 일이라고는 기껏해야 오늘 살아갈 힘을 모조리 앗아가는 일뿐이다”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에서 우울증의 대표적인 사고방식으로 ‘반추’를 뽑곤 하는데 반추는 부정적인 사건과 관련된 생각들을 계속해서 떠올리는 과정을 의미한다. 또한 우울증의 양상을 설명하는 이론 중 ‘학습된 무기력’이 있는데 부정적인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이 되었을때 어떠한 시도나 노력으로도 결과를 바꿀 수 없다고 여기게 되고 나중에는 그 상황을 바꾸려는 시도나 노력을 하지 않고 무기력해지는 것을 말하는데 지금 현재 처해있는 상황에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너무 애쓰고 스스로를 옭아매지 말고 스스로를 위해 지금 상황에서 한발자국 벗어나 보는 것은 어떨까 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어려움과 힘듦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말이 틀리지는 않다. 하지만 한번 뿐인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이고 ‘나의 감정’이기에 가끔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감정에 충실해질 필요는 있을 것으로 보여 진다. 물론 그 책임도 본인이 져야 하는 것이기에 책임질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