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적요와 그의 제자인 작가 서지우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다. 지독하게.

친아들보다 더 헌신적으로 자신을 보살펴준 제자였고

재능은 없지만 시를 써보겠다 매달리는 제자를 기꺼이 받아준 스승이었다.

여고생 은교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면서 그들 사이에는 미묘한 기류가 발생한다.

평생을 이성적으로 스스로를 완벽히 통제하며 살아온 시인의 마음에 본능적 욕망이 끓어오른 것.

은교와 자신 사이의 6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같은 띠임을, 언어적 유희같지만 동갑임을 강조해보고 싶지만

그의 육체는 부정할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은교를 향한 사랑의 마음이 결코 사람들에게 용납될 수 있지 않음을 알지만 마음을 거두기가 쉽지 않다.

제자는 스승의 글을 자신의 글로 발표해서 성공을 거두고 자신이 글을 쓴 척 강연과 인터뷰를 하러 다니면서 정신적인 혼란을 겪는다. 스스로의 힘으로 해보고 싶지만 재능없는 그에게 전작을 뛰어넘는 작품이 나오기란 어림없는 일이다.

고귀하고 흔들림 없는 존경의 대상인 시인이 은교를 바라보는 눈빛에 불꽃이 이는 것을 발견한 제자.

질투심에 휩싸인다. 은교를 빼앗길까 두려운 것일까. 스승을 빼앗길까 두려운 것일까.

제자는 스승이 '노인'임을 강조하며 스승이 할 수 없는 것들을 자신이 해보이고자 한다.

스승을 뛰어넘고 싶은 비뚤어진 욕망이 은교에 대한 집착으로 표현된다.

스승은 늙어가는 자신을 조롱하고 자신의 작품을 훔쳐 의미도 이해 못한 채 작품을 망가뜨렸으며 자신의 처녀를 유린하기까지 한 제자에게 분노한다. 그리고 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시인의 노트에 적힌 글과 제자의 일기에 적힌 글이 번갈아 나오며 이야기를 완성해 간다.

두 인물이 어떤 마음의 변화를 겪어가는지를 너무나 상세히 그리고 있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는 영사기가 돌아간다.

스승과 제자는 그야말로 질기고 질긴 애증의 관계. 은교가 그 애증을 좀더 폭발시키는 불씨가 되었을 뿐이다.  

책을 읽고 너무 좋아서 오늘 영화를 보고 왔는데,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원작이 주는 미묘하고 치밀한 감정 표현들을 영화가 살려내기에 역부족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