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내 기억 속에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견공은 초등학교 시절 읽었던, 일명 공상과학소설에 나오는 개들이다(제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까마득히 오래전, 토성의 고리에 첨단 도시를 세우고 말하는 개들과 로봇들의 시중을 받으면서 살았던 인간이 그들만 남겨두고 홀연히 사라진다. 그로부터 먼먼 미래에 그들의 후예로 추측되는 지구인들이 우주 여행 중에 그 도시에 불시착한다. 그렇게 돌아온 인간을 두고 개와 로봇의 쟁탈전이 시작됐다. 하지만 그곳은 점점 공기가 희박해져 가는 위험한 도시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지구인들은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고, 로봇들은 또다시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치려는 지구인들을 방해하고, 개들은 또다시 자신들이 버림받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로봇들을 막았다. 이 소설에서 개는 인간에게 충직한 동물의 전형으로 등장한다.

사실 개는 인간이 최초로 길들인 동물로, 수많은 동물 중에서 인류와 가장 오랫동안 친밀한 교감을 나누어왔다. 개는 언제나 충성스럽기 그지없는 동물로 첫손에 꼽힌다. 인간을 향한 개의 변치 않는 충심과 희생은 오늘날에도 더없이 아름다운 일로 오르내린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인간 중심적이고 일방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이야기이기 쉽다. 그런 점에서 영국 동반견 협회의 실제 이야기를 모아놓은 《인생의 동반자들》의 가치는 충분하다. 영국의 동반견 협회는 자립하고 싶어하는 장애인과 그를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개를 동반자로 짝 지워주는 봉사 단체이다. 여기에서 아무 장애인에게나 기계적으로 맡겨도 전혀 문제가 없도록 잘 훈련시킨 개들의 감동 없는 재주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면 더 이상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개와 인간이 서로 자신의 동반자를 찾아가는 신비로운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귀여운 애완견을 고르듯 인간의 일방적인 선택으로 개의 주인이 정해지는 방식은 이곳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인간과 개는 일정 기간 동안의 합숙 훈련 과정을 통해 서로를 유심히 관찰하고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동반자에게 애정을 느끼면서 신뢰에 기반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개를 고른다기보다 오히려 개가 인간을 선택한다고 하는 편이 옳다. 이 같은 동반견들은 특정 명령어에 반응하도록 훈련되어 있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지 않는 인간의 명령에는 아예 반응하지 않거나 굼뜨게 행동한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인간의 명령에는 진심으로 적극적인 반응을 보일 뿐만 아니라 별다른 명령이 없어도 제가 동반자가 필요를 먼저 알아서 헌신한다. 인간과 개가 완전한 교감을 이루면서 평생의 동반자로 협력하고 기쁜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이처럼 장애인이 독립적인 생활을 꾸릴 수 있도록 동반견을 찾아주는 취지로 순전히 기부금에 의존하는 동반견 협회가 개를 평생 임차해 주는 가격은 달랑 1파운드이다. 맹인안내견을 구하는 데도 거액이 드는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너무나도 부러운 이야기였다.

《인생의 동반자들》을 읽는 내내 생뚱맞게 떠오른 공상과학소설의 결말에는 다행히(?) 지구인들은 그곳에서 무사히 벗어나 잘 먹고 잘 살았다고 나온다. 하지만 그 후에 로봇과 개 들이 어찌 되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버려진 도시에서 두 번 배신당한 로봇의 분노가 솔직하다. 공기가 자꾸만 줄어서 숨쉬어야만 살 수 있는 개들이 턱턱 숨이 차오르면서도 인간을 위해 로봇의 공격에 맞섰다는 설정은 인간의 뻔뻔한 이기심에 다름 아니다. 인간은 개들의 주인이 아니다. 영국 동반견 협회의 개들은 소유자가 따로 있지 않다. 그 개들의 도움이 필요한 인간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