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트 에코가 쓴 소설의 재미를 만끽하기 위해서는 그가 마련해 둔 입문 의례를 거쳐야 한다. 그의 소설은 유난히 첫 부분부터 읽기가 만만치 않다. 에코가 자신의 방대한 지식을 거침없이 풀어놓기 시작하면 그의 행간을 따라가기가 버거워지고 자칫 그 안에 맥락을 잃고 책을 덮어버리기 쉽다. 그래서 독자에 대한 배려 혹은 독자를 책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로, 소설의 첫 부분만큼은 쉽고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대세이다. 하지만 에코는 오만하게 말한다. “난삽한 첫 부분은 나의 호흡을 따라잡기 위해 독자가 마땅히 치러야 하는 입문 의례와 같은 것이다. 소설을 읽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산을 오르자면 산의 호흡법을 배우고 산의 행보를 익혀야 한다.” 즉 내 소설을 진정으로 즐기고 싶으면 내가 장치해 놓은 시험부터 통과해라.

《푸코의 진자》도 에코의 덫을 피할 수 없다. 처음부터 푸코의 진자가 설치되어 있는 파리, 생 마르탱 데 샹 수도원의 과학 박물관을 치밀하고 끈질지게 묘사해 가는 에코의 시험을 인내할 수 있다면, 그 인내의 매혹적인 대가는 달콤하기 그지없다. 현대 문명이 박제되어 있는 그곳에서 까소봉이 성당기사단의 이지러진 환영들이 광란의 고대 제의를 치르는 현장을 목격하기까지 10년의 시간도 함께 세피로트 나무에 새겨지고 진자의 부동점을 향해 집약된다.

성당기사단과 그를 둘러싼 은비학 및 비교(秘敎)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박학다식한 까소봉, 제2차 세계대전과 파시스트 치하를 경험한 어린 시절부터 역사 혹은 세상의 바깥에서 비겁한 방관자로 살아왔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벨보, 수비학(數秘學)과 토라와 카발라에 심취해 있는 디오탈레비. 가라몬드 출판사의 편집자인 그들의 장난 섞인 거짓 계획은 성당기사단의 암호 밀지와 은밀한 계획에 대한 원고로부터 시작됐다. 논리적으로 허술하기 짝이 없는 그 원고를 비웃으며, 그들은 성당기사단의 밀지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공의 역사를 세우기 시작한다. 켈트 족의 고대 드루이드교, 그리스 신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각종 비교와 비밀결사 등을 종횡무진하던 그들의 계획은 점점 자체생성력으로 그들에게 현실과 비현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그리고 그들이 가공해 낸 비밀결사가 실제로 현실화되어 그들을 엄중하게 위협해 온다.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 성당기사단의 밀지조차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세기를 넘나들며 지금도 진행중인 성당기사단의 세계 지배 계획을 신봉하는 자들의 눈먼 믿음 앞에서는 달콤한 거짓도 위대한 진실로 거듭났다. 광폭한 맹신은 실로 무섭다. 자신들의 상상력으로 뼈대를 세운 성당기사단의 계획에 스스로 도취되어 버린 까소봉과 벨보, 디오탈레비는 급기야 모든 사물의 현실성을 버리고 그들의 계획에 들어맞는 새로운 상징성을 부여했다. 그리고 성당기사단의 계획을 독차지하려는 자들은 그들의 목숨을 제물로 바쳐 거짓에 진실의 왕관을 바치려 한다. 이제 성당기사단의 계획이 실재하는가, 실재하지 않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인간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굳건히 믿는다는, 엄연한 사실만 오롯이 남아 있을 뿐이다. 현실에 발 딛지 않은 믿음의 아름다운 의지는 어느 한순간 맹신의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부메랑처럼 되돌아올지도 모른다. 그것이 몹시 불안하고 또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