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빈트 부흐홀츠는 내가 편애하는 화가이다. 그의 그림은 뭐라고 한마디로 딱 잘라 단정짓기 어렵다. 아물아물 피어 오르는 아지랑이 사이로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풍경을 바라보는 아련함이 먼저 느껴진다. 한없이 부드러운 파스텔 톤 색채와 환상적인 소재들이 꿈결을 걷는 듯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크빈트 부흐홀츠가 붓끝으로 펼쳐내는 세상에는 오히려 여러 말이 거추장스럽고 방해가 된다. 그저 고요히 그의 그림 앞에 머물면서 그 그림들이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순간의 고요한 정적 이면에 두런거리는 진실된 이야기들로 그의 그림은 더욱 빛난다.

《그림 속으로 떠난 여행》에도 그런 크빈트 부흐홀츠만의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그림들이 가득하다. 이 책에는 그의 분신 ‘막스 아저씨’가 등장한다. 그는 뚱뚱한 데다가 구닥다리 철테 안경을 쓴, 촌스럽기 그지없는 이웃집 꼬마의 바이올린 소리를 소중히 아낄 줄 아는 화가이다. 막스 아저씨는 그의 곁에서 책도 읽고 낙서도 하고 바이올린도 연주해 준 이웃집 꼬마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전시회를 열어준다. 늘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와서 그림을 그리는 일에 열중했던 막스 아저씨가 그때껏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그림들, 그만이 수집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순간들이 그려져 있는 특별한 그림들이었다.

“난 순간을 수집한단다.”

이 말은 막스 아저씨이기도 한 크빈트 부흐홀츠의 말이다. 세상의 모든 사진들, 그림들은 어느 특정한 순간을 보여준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망막에 순간순간 맺혀지는 모든 풍경, 모든 사물, 모든 사람들도 역시 순간이다. 찰나에 지나가 버리는 그 순간들이 이어져서 연속성을 지닐 뿐이다. 하지만 크빈트 부흐홀츠가 말하는 ‘순간’은 조금 다르다. 그의 그림들에는 아주 비밀스러운 순간들이 담겨 있다. 아무나 볼 수 없는 순간들, 꿈꿀 줄 아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순간들, 상상할 줄 아는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순간들……. 그래서 아름답고, 아련하고, 그리운 순간들……. 그 순간에는 어느 한 시각이 정지되어 있지 않다.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공간,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그 이야기를 찾아달라고 마음에 속삭인다.

지금 크빈트 부흐홀츠가 수집한 순간들을 더 설명한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쓸데없는 사족으로 그가 포착한 순간들을 퇴색시키고 싶지 않다. 내 말은 그의 그림들을 진정 감상하는 데 방해만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