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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만 읽고서 H. 알코프리스바 교수의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우선 알코프리스바 교수처럼 시작하겠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절대 글과 그림을 구분하려 하지 마세요! 기차역의 시계들을 관리하는 소년 위고 카브레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온전히 들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요!

『위고 카브레』는 아주 독특하다. 보통 글과 그림이 함께 있는 책에서, 그림은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글의 흐름을 방해하는 일 없이 특정 장면을 묘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글만큼 그림이 이야기의 진행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림이 글의 부수적인 역할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데 동참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참으로 다재다능한 작가 브라이언 셀즈닉은 두 개의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려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도록 영상(그림)과 문자(글)를 배치했다. 여기서 ‘그림’ 대신 ‘영상’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레 선택한 것은 『위고 카브레』가 ‘달세계 여행’을 만든 프랑스 SF영화의 선구자 조르주 멜리에스에게 바치는 오마주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그에 대한 기억들이 그득하다.

우선 본문 책장의 가장자리를 검게 둘러싼 것은 어둠 속에 앉아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도록 독자들을 위해 배려한 장치이다. 이제 『위고 카브레』 전용 영화관에 들어와 있다. 이 영화관의 어둠이 아늑하게 느껴지는 순간 우리는 화면을 가득 메운, 줌인된 달과 마주한다. 그리고 점차 달과 우주, 달빛이 비치는 프랑스 파리, 아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는 기차역, 기차역을 오가는 사람들, 붐비는 인파들 사이를 헤치고 나아가는 한 소년으로 줌아웃된다. 이렇게 『위고 카브레』의 이야기는 시작되는 것이다. 영화 신(scene)처럼 펼쳐지는 여러 장의 그림들은 모두 섬세한 연필화들이다. 하얀 종이와 검은 연필 한 자루만으로 조르주 멜리에스 시절의 흑백 무성영화를 되살리고자 하는 작가의 속 깊은 의도가 짐작된다.

그 소년이 기차역 시계지기 위고 카브레이다. 위고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숨죽이며 살아가는 이 기차역은 파리 몽파르나스 역이다. 이곳에서 조르주 멜리에스는 장난감을 팔며 불운한 말년을 보냈다. 당연히 눈치 챘겠지만, 그는 위고가 태엽 장난감을 훔친 가게의 주인 조르주 할아버지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위고는 왜 태엽 장난감만을 훔쳤을까? 여기에서 수많은 태엽으로 이루어진 자동인형이 등장한다. 위고에게는 기계공이었던 아빠가 고치려고 애썼지만 박물관의 화재로 끝내 그렇게 하지 못했던 자동인형만이 아빠 대신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위고는 이제 아빠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자동인형을 아빠 대신 고치기 시작한다. 실제로 조르주 멜리에스는 평생 동안 모은 자동인형들을 박물관에 기증했지만, 박물관에 불이 나는 바람에 그의 자동인형들이 모두 소실됐다고 한다. 아마도 위고와 아빠가 발견한 자동인형은 조르주 멜리에스의 자동인형이었으리라.

조르주 멜리에스의 자동인형을 발견한 가상의 소년과 실존 인물인 조르주 멜리에스, 즉 조르주 할아버지가 엮어내는 본격적인 이야기는 2권에서 펼쳐질 것이다. 1권에서 브라이언 셀즈닉이 펼쳐 보이는 영상과 문자의 마술에 매료된 사람이라면 2권을 보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내가 바로 그 지경이니까. 1권만 있는 상태에서 『위고 카브레』를 보기 시작한 것은 실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