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집은 빌라, 아파트, 단독주택과 같은 단순한 건축물의 형태를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다.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집안"(네이버 사전에서) 이라는 사전적 의미 또한 집이 주는 다양한 감정을 포괄 하지 못한다. 집은 각자가 처한 상황, 그곳에 머물고 생활하며 지낸 시간 등에 의해 다양한 느낌으로 개인들에게 다가온다. 누군가의 집은 끔찍하고 벗어나고 싶은 지옥일 수 있고 다른 이에게는 항상 자신을 반겨주고 의지가 되는 가족이 있는 따뜻한 공간일 수 있다. 신혼의 부부들에겐 사랑하는 사람과의 보금자리 일 것이고 40대 중년 남자에겐 어쩌면 자신이 짊어져야만 하는 의무일 수 있다. 그곳에서 느끼는 감정이 아마도 각 개인이 집을 규정 짓는 기준이 될 것이다.

남편의 경제적 무능력과 현실에 대한 시각차로 인해 이혼해야만 했던 <엄마의 집>의 호은의 엄마는 경제적 빈곤에서 벗어나 딸과 함께 살 공간을 만들기위해 필사적으로 돈을 벌었다. 자신의 이상과는 다른 일을 해야 할 지라도 돈을 벌어야 했기에 그것은 중요한 일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구한 집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 질까? 그것은 아마도 그 여성의 경제적 자립에 대한 표상 이었을 것이며 현실과 타협하며 살겠다는 여성의 의지 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 새로운 애인과의 생활은 집을 새로운 인생의 터전으로 느끼게 했을 것이다.

경제적 자립이란 부모의 보호를 벗어난 모든 사람들이 대면하게 되는 현실이다. 보호 아래에서 이상과 꿈을 향한 열정은 보호 받는자의 특권이었으며 바람직한 삶의 자세였다. 하지만 독립된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 이상은 자칫 사회적 무능력으로 비춰진다. 이념적 혼란기가 끝나버린 시절에 대학 생활을 보낸 나와 나의 친구들의 이상은 경제적, 사회적 성공이었다. 하지만 정치적, 이념적 혼란기를 보낸 이전 세대의 많은 대학생들에게는 이 같은 개인적 이상은 온당한 이상이 되지 못했다. 독재 타도와 민주적 이상의 실현이 그 시대의 배운자로써 추구해야 할 이상이었던 것이다. <엄마의 집>의 호은 아빠는 5.18 민주화 운동이 있던 그 시대의 젊음이 였으며 그의 이상은 민중의 구원이었다. 그런 남자와 결혼한 호은의 엄마는 시대와 무관하게 그림 만이 삶의 이상 전부였던 여자였다. 상반된 이상이지만 이상 추구에 대한 순수함이 그들의 결합을 가능하게 했다. 이상 만을 추구했던 두 남녀의 결혼 생활은 예정된 궁핍만이 있을 뿐이었다. 가난한 삶 속에서 이상의 허망함을 느낀 호은의 엄마와는 달리 남편은 끝까지 순수했고 호은의 엄마는 그 남편의 순수함을 못 견뎌했다. 삶에 대한 엇갈린 시선은 더이상 그들이 하나의 가족일 수 없게 했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간격은 이혼 후 이들을 상반되게 살게 했으며 상반된 삶은 자신들의 딸과 대화 중에 확연히 대비 되어 나타난다.

호은의 아빠는 대학생이 된 딸에게 <공산당 선언>을 읽을 것을 권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것에 가격이 붙어 있는 이 세계에 속지 마. 때가 되면, 네가 가격의 질서에서 벗어나 살게 되기를 바란다."

호은의 엄마는 딸의 "엄마, 이제 그림 안 그려?"라는 질문에 <잠자는 숲속의 공주> 동화를 얘기하며 자신이 잠 속에 살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잠 속에 살고 있지 않으며 자신이 그리는 일러스트가 잠 속을 헤쳐나오는 칼이 됐다며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내 그림은, 잠 속을 휘감는 욕망의 넝쿨이고 동시에 넝쿨을 자르고 길을 내는 칼날이었어. 내가 나에게 도달했을 때, 난 꿈에서 깨어났지."

소설 속에는 이렇게 상반된 부모 밑에서 자라게 되는 두 소녀의 삶의 자세도 대비되어 나타난다. 엄마의 영향력 내에서 자란 호은은 삶은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야간에 아이스크림 가계에서 일하지만 호은에게 그 노동은 고학생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팔이 아릴 만큼 힘든 육체 노동도 호은에게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는 행위라고 생각했으며 그리서 그 노동을 즐겼다. 남자와의 만남도 단순했다. 편한 관계일때만 남자 친구는 친구일 수 있었고 자신을 구속하는 순간부터 그 남자와는 관계가 지속 될 수 없었다. 진실한 사랑을 믿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양성적 성 취향 또한 혼란스러워 하지도 않고 받아들였다. 삶은 호은에게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호은 아빠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난 승지는 토끼를 사랑하는 소녀 였으며 아빠가 아빠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무조건적 사랑을 아는 소녀였다. 삶을 비틀어 볼 수 있는 감각도 지녔으며 자신의 일기를 3인칭으로 써서 자신의 인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아이였다. 아빠가 유토피아 건설이라는 이상을 지니고 산다면 승지는 세상에 대한 사랑을 이상 삼아 살아가는 것이라 느껴졌다.

소설은 가족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4명의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가족 간의 관계에 대한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그들 각각은 일치할 수 없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누구도 서로를 억압하지 않는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자식에게 강요하지 않고 자식은 부모의 삶을 부정하지 않으며 누구나 각자의 의지에 의해 삶을 살아야 함을 인정하고 있다. 함께 살던 승지가 <엄마의 집>을 떠나지만 그들은 이제 여전히 승지의 "언니"였고 "친척 아줌마"였다. 집이 가지는 공간적 한계를 벗어 나서도 그들은 그들이 함께한 시간적 관계에 의해 가족이 된 것이다. <엄마의 집>의 집은 또한 가족간의 관계를 의미했다.

  전경린 작가의 신작 장편인 <엄마의 집>은 소설속 인물들의 절제된 대화를 통해 이혼이라는 우리 시대의 사회적 문제 속에서 가족 구성원이 겪을 혼란을 담담하게 서술하며 그 속에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전 남편이 재혼한 부인의 딸과 동거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 설정 하에서 처절하지도 격앙되지도 않게 이어지는 그들의 대화 속에서 공간적, 법적인 남이지만 결국 가족일 수 밖에 없음을 이야기 하며  재혼으로 인해 불현듯 그들 인생에 들어온 사람들 또한 가족이 될 수 밖에 없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유쾌해 보이는 대화가 유쾌하지만은 않고 심각한 대화가 심각하지 않는 소설 속 대화는 인생이란 심각한 것만도 유쾌한 것만도 아님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호은과 K의 대화 속에서 어긋나 있는 서로에 대한 기억과 엄마와 아빠의 기억 속의 삶의 모습이 어긋나 있음은 결국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시선을 말하고 있으며 때문에 이기적인 관점에서 누군가를 구속해서는 안 됨을 말하고 있다. 호은의 레몬에 대한 결론은 사람의 삶은 관계 속에 살아갈 수 밖에 없지만 결국 그것을 살아내는 것은 주체적 자아에 있음을 전하고 있다. 관계에 의한 삶 보다 주체적 자아에 의한 삶의 강조는 이혼율이 급증한 우리 사회의 이혼 가정 안에서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갈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