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인기를 업고 여러 황진이 소설이 서점의 한 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책들을 보며 황진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한 권의 책으로 어찌 한 세상 살아가는 일이 다 말해질 수 있겠습니까만은 비천하고 보잘것없는 이 황모의 생을 다시 찾아 기록해 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라고 했을지도 모르지요. 아니면 살아서 세설이 저를 가만두지 아니하였고 한 줌 흙이 되었는데도 귀문관 밖에 저를 찾는 이가 이리 많으니 이 황모의 팔자는 나면서도 나의 것이 아니었고 죽어서도 제것이 아닌가 보옵니다 라고 했을까요? 또는 어떻다 말도 없이 다만 세상의 말이 거두어지길 기다리고 있을까요? 우리는 그가 아니기에 그의 마음이 어떠할지 짐작할 수 없습니다. 진실을 말해 줄 이가 없고 이것이다 믿을 기록이 없어 그의 이야기는 영원히 세인들의 입오르내림으로 끝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 황진이 소설 가운데서 이 소설은 특별하다 할 것입니다. <나, 황진이>이라는 제목에서 "내가 황진이 입니다"라고 외치는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작가는 황진이다운 말로 시대의 음악가이자 춤꿈이며 시인이었고 인간의 도를 구한 선비인 <나, 황진이>를 나 다운 나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쉰살을 바라보는 황진이의 독백 형식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글쓴이에게는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나가 아닌 다른 이의 이야기를 다른 이의 입을 빌리지 않고 나의 이야기로 쓰기 위해서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 했겠습니까? 진이가 되어보자 그렇게 다짐도 했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진이가 되었습니다. 시대를 거슬러 16세기 조선의 기생 황진이가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기생이었고 새끼할머니가 행수기생이였기에 날 때부터 해어화가 될 운명을 가진 여인의 굴곡진 인생 회고가 시작되었습니다.

유교의 영향으로 오랫동안 우리의 문화는 마초적 남성우월주의 또는 남성주도적 문화였습니다. 전해지는 진이의 이야기는 그런 문화적 분위기 속의 남성들이 적어 내려간 기록이 전부입니다. 그들의 기록속에 그녀는 단지 절세기녀의 모습으로만 그려질뿐이고 그녀의 일화는 다만 술자리 사와 대부들의 흥겨운 추임새 일뿐이었습니다. 이 소설이 특별하다 앞서 말한 이유는 독백 형식의 구성적 특별함 만을 지시함이 아닙니다. <나, 황진이>의 입으로 말해지는 '나'의 모습이 수동적 여성과 기생의 모습이 아니라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자 하는 능동적인 인간 황진이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를 올려준 이와의 첫날밤 회고는 기생의 어쩔수 없는 안타까움과 애절함을 기대하는 이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것입니다. 안타까움과 애절함을 기대하는 분위기, 이것은 여성의 처음만을 강조하는 성 차별의 다른 모습입니다. 그녀는 첫밤 남자에 대한 분노보다 권세와 관습에 머리 숙이는 삶을 경계합니다. 다르게 살겠다 다짐합니다. 지음을 찾아 지극한 우정을 나누는 모습은 오길 기다리는 수동적 여성의 모습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주체적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사후 오랜 유랑 생활과 화담 서경덕 문하의 제자로서의 삶은 당시 사와 대부들보다 더욱 지극히 세상과 민초를 걱정하고 인간의 도를 깨우쳐 세상을 바꾸고자한 선비의 모습이었습니다. 여성과 남성의 차별이 없는 삶, 천함과 귀함의 구별이 없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그녀는 여성운동가가 아니라 혁명가의 삶을 원했는지도 모릅니다.

이 소설속 진이의 모습이 실제 황진이의 삶과 단 한 줄기도 같지 않을수 있겠죠.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사람의 삶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사백년도 더 흐른 인물의 삶이야 어찌 헤아리겠습니까? 다만 저는 이야기 속에서 역사적 진실됨을 따지기 보다 자신을 몰아치는 삶 속에서 외롭고 힘겨운 인생을 살아간 한 인간의 모습을 볼 뿐입니다. 그녀를 통해 진실로 도를 구하는 선비의 모습을 보고 세상의 혼탁함과 민초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고 한 몸을 불살라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혁명가를 보았습니다. 어머니와 새끼할머니를 보내는 진이의 슬픔 속에서 가족을 잃은 인간의 상실감을 공유하였습니다. "이런 글쓰기란 처음부터 어리석은 일"이라 글쓴이는 한탄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