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로 높은 빌딩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고 바삐 움직이는 많은 사람들이 옆을 지나가지만 시야 속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끝없는 지평선 밖에 볼 수 없는 그런 벌판에 홀로 서있다고 느낄 때가 가끔 있다. 심하게 앓고 난 후 아무도 없는 어둑한 방에서 눈을 떴을 때 그곳이 여러 세대가 모여 살고 있는 아파트이고 대도시의 한 가운데에 있다 할지라도 죽은 도시 속에 홀로 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우렁찬 울음을 터트리며 세상 속으로 나온다. 그 울음에는 생물학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엄마의 자궁 속에서 혼자가 아니라 함께였던 안도의 시간은 끝나고 세상 밖으로 홀로 떨어지는 그 두려움에, 그 서러움에 우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타인일 수 밖에 없다. 자신의 행동 조차도 스스로에게 이해 받지 못하기도 한다. 오정희 작가의 소설 <새>는 그러한 고독을 안은 인간의 삶을 바라보고 있다. 소설은 엄마를 잃고 아버지로부터 사랑 받지 못하는 남매의 시선과 주변 인물들의 삶을 통해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타인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의 본질을 보여준다.

   우미, 우일 남매는 그들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로 인해 친척집으로 떠돌게 된다. 그들을 떠안게 된 친척들은 친척이란 이름으로 서로 관계 지어져 있지만 남매에게는 타인 일 수 밖에 없었다. 친척 아주머니들에게 그들과 함께한 시간은 미쳐가는 시간이고 소리 하나 없는 집안에서 조차 끝없는 소음이 괴롭히는 시간이었다. 남매는 숨소리 조차 내지 않았지만 소음은 끊이지 않았고 우미와 우일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볼 수 없는 곳을 찾아 시간을 보내야 했다. 여럿이 살았지만 남매에게는 단지 둘 만이 함께였다.

   남매는 다시 아버지와 살게 되지만 아버지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의 관심은 새로 데려온 젊은 여자에게 가 있었다. 아버지는 머리칼을 황금빛으로 물들인 여자가 떠나지는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 했다. 젊은 여자는 곰 같은 남편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 두려워했고 피폐해 가는 남매의 모습이 두려웠으며 속을 알 수 없는 아이들이 무서웠다. 그들은 무엇 하나 서로에게 의지되지 못했고 각자의 마음을 닫은 채 자신들의 시간을 보낸다. 그들과 같은 주택에 거주하는 이웃들은 단지 벽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개별 공간들은 고립되어 있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 짐작할 뿐이지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무슨 고민을 하는지 알지 못했고 단순한 호기심에만 관심을 두었다. 이웃들이 모여 함께 잔치하거나 화단을 손질하는 일도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순간의 유희일 뿐 생활이 고민을 나누는 행위는 아니었다. 그들은 이해 받으려 하지도 않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혼자라는 두려움 때문에 끊임없이 옆에 있어줄 누군가를 찾는다. 어려서는 가족이 옆을 지켜주고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나면서부터 친구들이, 동료들이, 그리고 연인이 그 자리를 메운다. 그들에게 기대고 이해 받으며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언제나 함께 일 것 같은 그들도 어찌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외로움에 처절히 몸부림쳐야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실연의 아픔 속에서 안으로 울어야 할 때, 철저한 패배가 할퀸 인생의 생채기를 어루만져야 할 때 혼자 일 수 밖에 없는 자신을 바라본다.

   남매는 함께 버림을 겪어내지만 우미는 우일의 행동 모두를 이해 할 수는 없었다. 비록 살을 맞대고 함께 하여도 그를 괴롭히는 꿈을 알 수 없었다. 우미도 외로웠고 우일도 외로웠지만 그들의 고독은 합쳐져 메워질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동생은 누나에게 기대어야 했지만 누나는 그의 등받이가 되어 주기에는 너무 어렸다. 우일은 TV도 아버지도 ‘그 여자’도 없는 집을 벗어나 밖으로 떠돌았고 우미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웃들의 삶은 가난했으며 고단했다. 그들은 남매를 불쌍히 여겼지만 자신들의 삶도 버거웠다. 그렇게 그들은 갈갈이 찢어져 극복되지 않는 거친 바람 속에 떠 다녔다.

   소설은 우미의 시선에서 남루한 이웃의 모습을 관찰하며 잘못되어 가지만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자신의 현재를 그리고 동생의 현재를 단순하게 묘사한다. 점차 파괴되어 가는 삶을 위해 어떠한 일이든 해야 했지만 우미는 어렸고 그래서 알 수 없었다. 몸부림 쳐 보지만 삐뚤어진 길을 따라가는 일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미련한 그 행동을 읽는 내내 답답해 하고 이해 할 수 없어 가슴을 치지만 나 또한 타인으로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다른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다른 이가 자신을 바라봐 주기를 갈구하지만 그가 자신과 동일시 되어질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관심을 주고 관심을 받는 것은 그 속에서 버텨내는 힘의 일부나마 얻기 위함일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완벽히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얻기도 한다. 안도감은 때론 역경을 뚫고 지나가는 힘이 된다. 작가가 풀어놓은 남매의 삶은 너무도 잔인했기에 그들 곁에 누군가 있어서 마음의 일부라도 소통이 되었더라면 하는 진한 슬픔이 책의 끝자락에 여운으로 남았다.

   우리가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 하는 것은 채워 질 수 없는 부재의 고독감에서 벗어나려 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 빗자루에 쓸려버린 듯 완벽히 사라진 소설 속 인물들의 고독한 삶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주위와 스스로를 향한 사랑을 갈구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