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생동감 넘친다. 문장들은 꿈틀대는 듯하며 폭발하는 에너지를 주체 할 수 없어 보인다. 작가가 젊어서 일까? 글을 읽는 내내 활자를 통해 전달되어 오는 생명력을 느꼈다. ‘활자가 힘을 내뿜는다’는 식의 허무맹랑한 표현을 내가 쓰지 않고 다른 사람의 글에서 읽었다면 ‘글에서 무슨 힘을 전달 받어? 과장이 지나치군.’ 하고 아마도 글쓴이를 타박 했을 것이다. 표현의 꾸밈이라 의심해도 좋지만 나는 분명 활기찬 생명력을 느꼈다. 그 책이 나에게 준 감흥은 청춘의 고뇌도 중년의 반듯함도 아닌 살아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애착과 살아 있음에 뿜어 낼 수 있는 오로라 였다.

  사람이 만들어가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는 긴 인생이라는 시간 축 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점 같은 시간에 결정한 선택에 따라 크게 요동 친다.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답은 살아서 겪어야 얻게 되는 것이다. 어느 순간 오답인 것으로 판명 되었더라도 그것을 홀로 감내하고 겪어내면 엑스 표가 아니라 세모 표로 바뀌는 것이 선택에 대한 채점 방식은 아닐까? 어떤 것도 결정되지 않은 내일, 누구도 알 수 없는 정답을 찾아 선택을 하는 것 그런 것들이 인생을 산다는 것이 아닐까? <달의 바다>는 인생의 선택이 주는 의미를 묻고 있는 듯하다.

  책 속에서 은미와 민이는 결정해야 할 선택을 앞두고 있다. 은미는 기자가 되겠다는 선택을 했지만 그것은 잘못된 결정으로 결론이 났다. 가족들은 은미에게 새로운 선택을 강요하고 그는 현재의 결과에 승복하기 힘들며 가족들의 요구가 불편하기만 하다. 실패로 인한 패배 의식이 그를 지배했고 자살로 인정하기 힘든 현실을 떠나려 한다. 하지만 은미는 자살의 방법을 놓고도 선택을 해야 했다. 목을 매달 것인지, 손목을 그을 것인지, 달리는 차 앞에 뛰어들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그 선택들 앞에서 자신의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상상하며 자신이 책임 질 수 있는 선택을 결정했다. 은미의 친구 민이는 자신의 성 정체성으로 인해 고민한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지만 확신 할 수 없는 미래가 결정을 더디게 만들었다. 믿었던 은미는 그의 고민에 별 관심이 없고 급기야 상처를 주고 만다. 결정의 갈림길 앞에서 상처 받은 민이, 현실의 절망감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삶을 포기하기로 한 은미 이 둘은 은미 할머니의 희망을 안고 미국으로 잠깐의 휴가를 떠나고 떠나는 순간에는 그들이 알 수 없었던 두 사람의 희망이 또한 미국에 있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그건 어쩌면 책임질 일이 많아 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선택하고 또 선택하며 사람들은 점점 나이 들어간다. 그리고 선택은 하면 할수록 점점 그 폭이 줄어들고 결국 이전 했던 선택의 결과로 다음을 결정해야 되는 상황이 되어간다. 더 이상 결정해야 할 무엇도 남지 않았을 때 우린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건 선택에 대한 결과물에 대해 책임을 감당하는 것은 아닐까? <달의 바다>는 은미와 민이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를 통해 선택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면 은미의 고모와 고모의 친구들로 대표되는 어른들을 통해 책임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인생의 황혼기를 보여주고 있다.

  크고 화려한 집에서 높은 수준의 생활을 하는 고모의 친구 레이첼. 그의 체구는 당당하고 건강미가 넘친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도 꺼림이 없다. 현재의 모습은 무엇하나 부족해 보이는 것이 없는 그 이지만 그도 삶을 포기하려 한 적이 있었다. 빼빼 말랐으며 자신에 관해 무엇하나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고모의 남자친구. 과거 기자였지만 이제는 단지 차 안에 슬리퍼를 싣고 다니며 공허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결혼도 하기 전에 아이가 생겨 버렸지만 당당했던 고모. 새로운 남자와 결혼해 미국으로 오지만 아이를 키울 수 없어 친정으로 보내버린다. 그리고 아이를 다시 찾으러 왔을 때 자신이 더 이상 아이를 책임질 수 없음 확인하며 홀로 살아간다. 그들도 은미와 민이 같이 희망을 꿈꾸며 선택의 나날들을 보냈던 과거가 있었다. 그 과거의 어느 순간 행했던 결정에 의해 그들의 현재는 어딘가 삐걱거리지만 그런 삶 일지라도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들은 서로를 지지하는 버팀목이며 나누는 삶 속에서 희망을 엿본다.

  은미와 민이가 미국을 떠나 돌아오며 고모와 고모의 친구들로부터 무엇을 얻어왔을까? 그건 어쩌면 우리의 삶은 숨이 붙어있는 그 순간까지 계속 되는 것이며 겉모습이 화려하지 않을 지라도 그 안에는 나름의 화려함과 나름의 생이 있다는 것은 아니었을까? 희망은 희망을 포기하는 순간 사라지는 것이지 스스로 소멸하지 않음을 본 것은 아니었을까? 은미는 돌아와 취업을 포기하고 가족의 결정에 따르지만 자신의 희망은 포기하지 않는다. 민이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결심을 결행한다.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은 대단히 고단하며 심각한 것이었다. 그 고단함이 삶의 후광으로 비친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것은 포기하지 않는 인물들의 삶의 자세 때문은 아니었나 생각한다. ‘포기 할 수 없는 삶이기에 살아가야 한다면 현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하자’ 라고 소설 속 인물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젊은 작가가 풀어놓은 이야기는 경쾌하고 빨랐지만 작가가 나의 가슴 속에 새겨준 감동은 아주 깊은 것이었다. 신파스럽게도 눈물까지 보이고 말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