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허버트의 SF 소설 <듄>에는 '퀴사츠 헤드락'이란 특별한 유전자를 가진 인물이 나온다. 퀴사츠 헤드락은 '모든 장소에 존재하고 모든 시간에 존재하는 자'이다. 즉 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유전자 속에 이어져 내려온 모든 사람들의 과거를 공유하며 미래의 시간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람은 불확실한 미래에 두려움을 느낀다. 내가 학생의 신분으로 공부하며 가장 못 견뎌 했던 것도 바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었다. 이런 불안을 떨쳐 버리기 위해 사람들은 미래를 엿보려 한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의 혜택을 받는 현대에도 점성술이 그 명맥을 유지하는 이유이다. 그럼 미래를 예지할 수 있었던 소설 속 '퀴사츠 헤드락'은 자신의 삶에 만족했을까? 그렇지는 않다. 그는 자기가 예지한 미래가 자신의 현재 행동 하나 하나에 의해 틀어지는 것을 보면서 불안해 했다. 그가 가진 불안은 또한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이었으며 결국 자신은 미래를 변화 시킬 수 없으며 예지한 미래를 따를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좌절했다.
 
  미래를 예지 하는 일은 공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고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미래는 현재의 결과 이기에 미래를 예지하는 일은 무의미한 일 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의 모습에서 미래의 모습을 그려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현재는 우리의 의지 안에 존재하며 변화 될 수 있기 때문이고 그 변화된 현실에 의해 미래를 어느 정도 의도한 바 안에서 변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자크 아탈리가 쓴 <미래의 물결>은 그런 관점에서 의미 있는 저술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과거 역사의 흐름과 현재의 상황을 통해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 미래의 모습 속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으며 각 가능성들은 미래를 준비하는 현재의 우리의 의지에 의해 열려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책은 아주 오래된 인류의 과거를 이야기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유목 생활을 하는 원시 인류가 어떤 과정을 거쳐 정착하게 되었고 정착 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국가가 형성 되었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그 정착 과정을 통해 형성된 원시 자본주의의 발생을 살펴보며 국가의 발전과 소멸을 자본 이동과 연관 지어 갔다. 그는 역사의 흐름을 자본의 이동과 더불어 민주주의 발달 과정으로 보고 있었으며 자본의 이동은 저자가 ‘거점’이라 명명한 특정 지역의 이동이라 설명하고 있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거점’이 국가의 개념이 아니라 특정 도시와 그 주변 지역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책 후반에 자본의 세계화에 따른 미래의 국가 해체론과 연결된다. 부르게에서 로스앤잴레스까지 이어지는 현재의 ‘거점’ 까지의 이동 과정을 기술한 후 다음 시대의 ‘거점’에 대한 예측을 통해 미래의 모습을 그려갔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 대한 예측은 언제나 비관적이다. 사실 장미빛 미래의 모습은 기대심리만 충족 시켜 줄 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측은 불안 요소를 찾아내고 그 해결점에 대한 모색을 할 때 의미가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자크 아탈리가 바라보는 미래의 모습 또한 희망적이지 않다. 그가 그려내고 있는 미래는 ‘하이퍼 유목민’이라 불리는 자본의 소유자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이다. 이들은 국가라는 지역적 얽매임 없이 필요에 따라 국가를 이동해 가며 그들이 어떤 지역에 머무는 이유는 오직 금전적 이득이 있을 경우이다. 유목민의 탄생과 극단적 자본주의 논리에 따른 기업으로 인해 국가는 점점 자신의 역할들을 기업들에게 내어 주고 결국은 지금의 유럽 왕실처럼 이름만이 남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하나의 중심점으로 흘러가던 세계는 다중심적 세계로 바뀔 것이며 국가 기능의 약화를 틈타 해적들이 활기를 칠 것으로 예상했다. 부의 편중, 국가 기능의 약화, 극단적 이기주의와 자본주의는 ‘하이퍼 분쟁’을 발생 시킬 것이며 이를 해결 하는 과정에서 저자가 ‘트랜스 휴먼’이라 명명한 새로운 지도적 사람들에 의해 주도된 ‘하이퍼 민주주의’가 사회를 안정 시킬 것으로 예상했다..
 
  자크 아탈리가 ‘하이퍼 민주주의’라 부르는 미래의 이상향은 이타주의에 바탕을 둔 사회이다. 지식과 부가 공유 되며 타인의 행복이 곧 각 개인의 행복이 되는 사회이며 공존이라는 가치가 어떤 가치보다 우선하는 사회가 미래의 이상적 사회임을 말하고 있었다. 저자는 ‘하이퍼 민주주의’가 도래하기 전에 인류가 ‘하이퍼 분쟁’을 극복하지 못하고 범 지구적 혼란 속에 살 수 있음을 경고하며 환경적 문제와 더불어 존재 자체를 위협 받을 수 있음을 염려했다.

   <미래의 물결>에서 그리는 미래의 모습들 각각은 이미 현재 우리 안에 내재되어 진행 중인 모습들 이었고 그래서 그것들이 진행된 미래의 모습은 매우 설득력 있었다. 저자는 미래를 선택하는 것은 몇몇 지도자에 의해 결정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개개인의 선택에 의해 결정됨을 설파했다. 저자는 우리가 경쟁과 자본주의 가치만을 따를 경우 첨예한 이해 대립과 부의 극단적 불균형, 환경 파괴로 인해 ‘하이퍼 분쟁’에서 헤쳐 나오기 힘들 것이지만 공존의 가치를 선택할 경우 자연과 조화된 삶, 분배에 의한 성장, 인간의 존엄성 회복 등을 통해 인류는 ‘좋은 시간’이라 명명된 시간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는 현재에도 자본주의가 많은 승리를 쟁취하지만 점차 그 패배하는 광경도 목격하고 있다. 지식의 공유라는 기치를 내건 GNU 운동은 거대한 제국 MS(Microsoft)에 대항해 많은 승리를 거뒀고 점차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으며 동남아시아가 쓰나미에 의해 폐허가 됐을 때 범 지구적 도움의 손길이 그곳으로 향하는 것을 경험했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계는 반 인류적 행위와 환경파괴에 대해 평범한 개인들을 결집하여 압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거대 자본의 다국적 기업들도 그 압력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이런 모습들에서 우리는 저자가 말한 ‘하이퍼 민주주의’가 실현 불가능한 이상적 사회가 아니라 눈 앞에 닥친 현실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볼 수 있다.

   미래를 볼 수 있었지만 미래를 바꿀 수 없었던 ‘퀴사츠 헤드락’과 달리 우리는 미래를 볼 수 없지만 스스로의 손으로 미래를 결정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정은 예전과 같이 특정 엘리트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과학의 힘으로 강화된 개인에 의해 선택 될 것이다. 나는 저자와 마찬가지로 개인들이 선택한 미래는 혼란에 가득 찬 세상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존중 받는 공존의 세상이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