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그가 지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네가 무슨 유혹을 하든 말리지 않겠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까

(……………………)

파우스트 그렇다! 이 뜻을 위해 나는 모든 걸 바치겠다

지혜의 마지막 결론은 이렇다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파우스트』중에서

예술은 길고 인생을 짧다, 고 했습니다. 만약에 인생이 길고 예술이 짧으면 어떻게 될까요? 굳이 방황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방황을 이성(理性)이라고 한다면 방황을 하지 않는 것은 동물(動物)처럼 사는 것입니다.『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이런 인간들은 메뚜기라고 조롱합니다. 메뚜기들은 늘 풀숲에 처박혀 케케묵은 옛 노래나 불러대며 거름더미를 보기만 하면 그들의 코를 쑤셔 박는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인간은 노력한 방황하며 착한 인간은 비록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잘 안다고 했습니다.

정말일까요? 주님과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가 어떤 인간인지? 에 대하여 내기를 했습니다. 즉 파우스트가 착한 인간인지? 아니면 메뚜기인지? 파우스트는 하늘로부터는 가장 아름다운 별을 원하고 지상에서는 최상의 쾌락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파우스트는 자신이 말(言)의 소매상에 지나지 않다고 했습니다. 온갖 노력을 다하여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보다 똑똑해진 것은 하나도 없는 가련한 바보라고 여겼습니다. 석사니 박사니 그저 허울 좋은 이름을 듣는 대신에 모든 즐거움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더구나 올바른 것을 알았다는 자부심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파우스트는 마법에 몰두하면서 정령의 힘과 말(言)을 빌어 온갖 지식의 안개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항상 부정(不正)을 일삼는 메피스토펠레스가 절망의 늪에 빠진 파우스트를 구원해주었습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독수리처럼 가슴을 쪼여대는 파우스트의 고뇌 대신 넓고 넓은 세상으로 유혹했습니다. 그 세상에서는 어떤 인간도 구경하지 못한 관능적 쾌락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파우스튼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고 지식의 갈망이라는 답답함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어떤 고통도 감수하면서 인류에게 주어진 것을 경험하면서 내면의 자아로 음미하고자 했습니다. 만약 자신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속아 자기 도취에 빠지거나 관능의 쾌락에 농락당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최후의 날이 될 것이다! 라고 다짐했습니다.

파우스트의 모험은 마녀가 만든 영약을 마시고 젊음을 되찾았으면서 시작됩니다. 영약을 마신 파우스트의 마음 속에 사랑의 신 큐피트가 맴돌면서 모든 여인이 헬레나로 보였습니다. 그가 만난 마르카레테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사랑을 얻고자 값진 보물을 선물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불행해졌습니다. 메피스토펠레스의 시기심 때문에 그녀는 가족을 잃은 슬픔과 동시에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파우스트는 감옥에서 고통 받는 그녀에게 “당신을 살아야 해.”라고 하면서 탈출을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심판을 받고자 했습니다.

사랑의 굴레에 유혹된 불행한 파우스트는 이번에는 헬레나 때문에 넋이 나갑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금화 대신 도깨비 지폐로 위기에 놓인 황제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황제는 파우스트에게 남자와 여자의 이상적인 전형인 헬레나와 파리스를 눈앞에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헬레나를 찾기 위해 메피스토펠레스가 준 열쇠를 가지고 ‘어머니들’의 나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파우스트는 헬레나를 보는 눈에 아름다움이 샘물이 넘쳐났습니다. 하지만 헬레나를 힘껏 잡는 순간 그녀는 연기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파우스트의 시련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의 조수였던 바그너가 만든 인조인간 호문쿨루스는 불꽃이 되었으며, 스파르타 궁성에 만난 헬레나와 사이에서 태어난 오이포리온은 이카루스처럼 추락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덕분에 전쟁에서 승리한 황제는 파우스트에게 나라의 해안지대를 하사했는데 그 땅은 아직 있지도 않았습니다. 바다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이런 파우스트에게 ‘근심’이 달라붙었습니다. 근심은 스스로 ‘누구든 나에게 한번 붙잡히면 온 세상이 쓸모없게 되지요.’라고 하면서 파우스트에게 “인간이란 한평생 앞을 보지 못하니, 당신도 이제 장님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파우스트가 짊어진 고통의 무게는 시시포스와 같습니다. 시시포스는 불손(hybris)의 죄를 졌습니다. 불신이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인간의 오만을 말합니다. 그래서 시시포스는 바위를 산 정상에 밀어 올리는 벌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벌이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꼭대기에 오르자마자 바위는 도로 굴러 떨어져 시시포스는 다시 바위를 밀고 올라가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시포스에 대하여 절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카뮈는『시지프 신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바위의 결정 하나하나, 어둠으로 가득 찬 이 산의 광물 하나하나가 오직 그것만으로 그에게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정상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이제 행복한 시시포스를 상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파우스트는 마지막에 쓰러지면서도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말하며 행복하지 않았을까요? 비록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지만 허무함을 깨달은 그는 행복한 시시포스였습니다. 아마도 그의 얼굴은 무지개로 채색되었을 것입니다. 인생이란 채색된 영상 속에서 파악된다고 했을 때 ‘무지개는 인간의 노력을 비춰주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