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이겨내고 삶을 일류로 바꾸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성석제의『왕을 찾아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속도감있게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제목에 나와 있듯 왕(王)이다. 하루를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 왕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러면서도 소시민들은 왕이 되고자 한다. ‘왕이 되었다.’라는 한 마디 속에는 너무 많은 말들이 감추어져 있다. 삶의 배수진을 치지 않고는 왕이 될 수 없다. 아마도 많은 말들을 꽉 쥐어짜면 눈물이 쏟아질 것이다.

 

『왕을 찾아서』는 왕을 위한 진혼곡이며 왕의 자리다툼에서 벌어지는 비극적 운명을 비추는 ‘싸움꾼’의 이야기다. 갑자기 싸움꾼이라고 해서 왕의 아름다움이 사라질지 모른다. 하지만 작가가 말한 ‘이야기의 독성’에 한 번 당해본 사람은 알게 된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왕은 삶을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간섭하는 정체였다. 그것은 이 소설에서 말하듯 ‘내 마음의 시생대’였다. 그러나 왕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오히려 노골적이며 거칠다. ‘미친 존재감’이 생생하다.

 

미친 존재감! 마사오는 분명 그랬다. 마사오는 거리(街)에서 단련된 싸움꾼이었다. 또한 위대한 자였다. 싸움을 잘 해서 위대한 자였는지 아니면 위대한 자여서 싸움을 잘 했는지, 어느 것이 먼저고 나중인지는 흥미롭지 않다. 그 보다는 싸움과 위대한 자의 거리(間)가 문제였다. 마사오에게는 둘 사이의 거리가 멀지 않았다. 그는 ‘가난과 불의, 불평등에 시달리던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였다. 이렇게 해서 그는 신화적인 인물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신화에 대한 정체성을 알면 알수록 이 소설에서 장원두가 고백하듯 ‘객관적인 거리’에서 ‘관능적인 거리’로 좁혀지게 된다. 관능적인 탓에 장원두는 마사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긴 가야지’라고 말했다. 이미 오래전에 그의 마음속에 죽었다고 하지만 마사오는 그가 살았던 지역의 ‘일월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갈 수밖에 없었다. 지난 날 마사오가 보름달이었다면 그는 반딧불이에 불과했다. 보름달에게 반딧불이는 미약하겠지만 반딧불이에게 보름달은 일생일대의 사건이요, 애증이었다.

 

그런데 마사오에 대한 애증은 그의 죽음을 통해 반전된다. 어리석은 왕이라고 여겨졌던 마사오의 몰락과 죽음, 그리고 그 지역 싸움꾼의 공백을 둘러싼 과거 사건들이 하나둘 밝혀지면서 장원두는 마사오 같은 ‘왕’을 찾고자 한다. 마사오가 그랬던 것처럼 왕은 주먹이 아니라 영웅이어야 한다. 그래서 어느 누가 마사오를 대신한다고 하더라도 마사오 만큼 하지는 못했다. 비록 왕처럼 행동했다고 하더라도 ‘신화’는 주지 않았다. 즉 위엄과 자비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수에 불과했다.

 

『왕을 찾아서』는 우리 사회가 바라는 ‘느린 왕’을 찾아나서는 것 같다. 이 소설이 15년이 지난 후 우리 곁을 맴도는 이유는 그동안 악의에 찬 왕에 대한 상처때문이지 않을까. 왕이라는 이유만으로,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은 부당할 수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이 세상은 이런저런 폭력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폭력에 대한 망각은 위험하다. 이것은 마치 이 소설에서 장원두가 빈소로 가기 위해 야간에 고속직행을 타고 가는 느낌이다. 빠른 속도에 길들어 있는 사람에게 죽음은 없다. 더더욱 사람에 대한 예의는 없다.

 

하지만 버스가 덜컹거리며 느리게 달리면서 한순간 뒤죽박죽된다. 작가말대로 버스가 덜컹, 할 때 ‘ㄹ’의 바퀴가 어디론가 떨어져나간다. 새로운 시대에는 이 모두가 바보 같고 촌스럽다. 그럼에도 느리기의 세계에서는 죽음도 있고 망각도 있다. 마사오의 죽음과 망각에 대한이면에는 무한경쟁하는 사람들의 존재감이 제로에 가까워서 결국에는 왕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