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적으로나 마음으로나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 듯 상처가 없다고 감추지 않는 이상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상처를 삶을 맛보고 있는 이들이라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말해주지 않더라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각자의 걸어온 혹은 걷는 길이 다르기에 상처의 정도나 이유와 내용은 다르겠지만...

 

초등학교 시절 가즈시는 일본의 한 지방의 K라는 마을에 어머니와 함께 살던 중 짱구라는 별칭?을 가진 집 밖으로 나갔다 돌아온 영감을 만나게 된다. 그 전에는 영감을 만나본 일이 없기에 처음 만난 사람처럼 어색하기만 하다. 그는 어머니의 아버지로 짱구라는 그 별칭처럼 수전노에 구두쇠 등 별별난 특징을 가진 사람으로 궁금했던 그의 이야기를 어머니와 그 형제인 삼촌에게서 조금씩 과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유별난 성격을 가지고 유별나게 어머니를 키웠던 짱구할아버지는 무엇을 해 보겠다고 집의 안과 밖을 들락날락했고 그래서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은 그만한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또 어머니는 문제가 있는 아버지와의 이혼으로 엎친 데 덮친 격의 상처를 지닌 채 가즈시와 살아왔다. 나 역시나 홀어머니 밑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낯선 환경의 부적응의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괴짜같은 행동만을 했을 법한 할아버지도 이 둘과 별 다를 바 없이 그만의 상처가 있다. 어려운 그 시절의 길을 걸어오는 과정이 결코 순탄치많은 않았다. 전쟁을 거쳐 오시고 거칠고 궂은 일을 해 오시면서 나름대로의 상처를 안고 살아오셨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가즈시의 집으로 돌아온 후 어머니도 예전의 아픔을 잊은 척 감추며 지내고 할아버지도 커가는 손자를 보면서 과거엔 절대 하지도 않했을 법한 피조개를 조금은 먼 곳에서 힘들게 잡아와 어머니와 나에게 주고 같이 나눠먹는 모습에서 가족이란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고통이 있더라도 같은 피가 흐르고 있는 것처럼 함께 하다보면 통하는 마음이 우러나 모여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서로에게 나누어 질 수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전체 내용치고 짧지만 저녁놀이 져가는 마을이 그대로 멈추어 버린 듯 차분하고도 전혀 먼지가 묻지 않아 때깔이 그대로 묻어나 있는 고운 소설이다. 워낙 사실적이어서 저자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허구적인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묘하고 희한한 기분이 들게 하기도 했다. 중간의 재미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런 억지스러운 과정을 삭제한 것처럼 내용이 금방 끝나버려서 생긴 허무감도 없다. 길고 감동적인 소설을 읽고 나면 생기는 묵직한 느낌이 나의 머리 주변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목처럼 노을이 져가는 마을은 상처를 받은 세 사람의 상처가 가족이란 이름으로 서로가 공생을 하듯 보이지 않은 따스함으로 품어주었기 때문에 저물어 갈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