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00주년을 맞은 빨간머리앤을 내가 책으로 접한 것은 두번째지만 소설과 동화 에니메이션으로 다양하게 번역되어지고 만들어져 그 동안 꾸준히 사랑받아오고 있는 것처럼 낯설지 않았다. 이번 책 표지가 앤의 머리카락과 닮은 빨간색 바탕에 매슈아저씨와 앤이 함께 마차를 타고 가는 모습은 예전 추억을 되살리는 한 단면이었다.

 주근깨 빼빼마른 빨강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책을 다 읽고 나서 난 콧노래로 흥얼거리고 있었다. 하나도 틀리지 않고 이 노래를 끝까지 흥얼거렸다.. 어렸을 때 시청했던 TV만화 빨강머리앤의 주제곡이다. 내가 앤을 처음 만났던 건 이 만화를 통해서였고, 서로 친구라고 확실히 점을 찍자마자 책을 봤던 기억이 난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었지만 난 마음속의 친구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여태까지도 항상 가까에 내 옆에 있는 친구로 여겨왔다. 동경하면서..앤이 우리와 같은 친구 말고도 자연풍경속의 나무들과 꽃.. 메아리,, 책장 속 유리에 비춰진 누군가를 친구로 여기는 것처럼..

 
내 옆에 뒀던 친구인 앤을 새로운 모습으로 만나 반가운 마음에 "안녕 앤 반가워, 프린스에드워드 섬에서 날 만나러 한국까지 왔구나 고마워"라고 인사했다. 앤도 반갑단다..얼마만이냐고..

 캐나다 프린스에드워드 섬의 에이번리 마을, 초록색 지붕집에 남매인 매슈와 마릴라는 고아였던 앤을 입양하게 된다. 앤은 빨간머리와 주근깨를 가진 11살 소녀로 시와 소설에 푹 빠져있었으며 다른 또래 아이들과 달리 유달리 상상하기를 좋아했다. 고집이 세고 눈물도 많은 감수성이 짙은 소녀였다. 순수하다 못해 너무 솔직한 앤애겐 둘도 없는 단짝친구 다이애나가 있다.  서로 감싸주고 나눠줄 수 있는 우정을 뛰어넘은 사랑을 주고 받은 사이였지만 에이번리 학교를 떠나 퀸즈에 다이애나가 들어가지 않게 되어 서로 다른 곳의 학교를 이어다녀야 했을 땐 둘의 우정보다도 서운하고 안타까웠다.

처음엔 실수투성이에 엉뚱한 앤을 마지못해 하며 올바르고 얌전하게 자라주길 바라는 무뚝뚝하고 엄숙한 마릴라 아주머니와 다이애나의 까탈스러운 할머니, 말과 웃음이 없고 여자를 두려워하던 매슈아저씨의 마음을 앤의 순수하고 티끌없는 신비로움에 열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상상력을 사랑하고 생활전반에 연관시켜야 하는 앤..두려움과 무서움, 나쁜생각이 상상력에서 비롯되더라도 상상력이 없는 인생은 앤에겐 무의미하다..

"나중에 알아볼 것들을 생각하는 일도 근사하지 않나요? 살아있다는 게 기쁘게 느껴지거든요. 세상엔 재미있는 일이 참 많아요. 우리가 모든 걸 다 안다면 사는 재미가 반으로 줄어들 거에요. 안 그래요? 그러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일도 없겠죠? [P35]

앤이 매슈아저씨가 떠난 후 마릴라 아주머니가 혼자 남겨진 탓에 퀸즈를 졸업해 대학을 가려던 것을 포기하고 교사를 희망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앤이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느끼는 수많은 기쁨과 즐거움 슬픔이란 감정들처럼..여러번의 용서와 화해, 인정과 이해가 오고가듯이..초록색 지붕의 집 주변과 에이번리 마을에 있는 풍경들은 발랄하고 엉뚱한 앤의 상상력을 마음껏 뿜어낼 수 있는 장소가 되기에 충분했다. 한적한 숲..반짝이는 호수..유령의 숲..버드나무 연못,빅토리아 숲,연인의 오솔길과 드라이어드 샘 등.

시적인 언어들과 우유체로 이루어진 문장들로 텁텁한 마음을 감미롭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이 책은 "꿈이란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많잖아요,그렇죠? 꿈이 실현된다니 얼마나 기쁜 일이에요? [P38] 처럼 어렵겠지만 그래서 이루고 나면 환희에 찬 순간을 느낄 수 있게 될 그 꿈을 위해서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유가 되어주기도 한다

빨간머리앤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건 상상력에 취한 희한하지만 특이한 감수성을 가진,, 예쁜 빨간머리에 귀여운 주근깨가 있는 얼굴에 상냥하고 다정다감한 미소를 간직하고 있는 소녀이기 때문이 아닐까..

여기에..다이애나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앤은 항상 새로워,다른 여자 아이들은 늘 똑같아서 짜증나고 질리는데 말이야. 그런데 앤은 무지개처럼 여러 가지 빛을 지니고 있는데다 빛깔들도 하나같이 사랑스럽거든.어렸을 때만큼 재미있진 않지만 그 아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 나는 그렇게 사랑이 우러나게 하는 사람이 좋아.그러면 내 마음도 쉽게 줄 수 있으니까." [P489]

처럼 내 마음을 쉽게 줄 수 있는만큼 편한 친구는 없을테니까..

 프린스 에드워드 섬은 저자가 실제로 생활하며 글을 썼던 곳이기도 하단다. 그렇기에 소설속에 등장하는 모든 장소들은 고스란히 눈 앞에 그려진다. 책 속의 이야기들 사이에 언뜻 보여지는 그림들처럼...마릴라 아주머니에게 못마땅하고 부족하게 보였던 소녀 앤이 좀 더 정숙해지고 성숙한 앤으로 변했듯 에이번리의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캐나다에 내가 잠시 머물러 있었던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