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펭귄 클래식 시리즈가 발간 되었다는 소식에 무척 반가웠다.

한국어판 펭귄클래식 시리즈는 한국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세계문학의 중요한 고전 11종으로 선정되었다.

사실 고전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터라 이번에 발간 된 11종 중에서 읽어 본 작품은 하나 밖에 없었다. 부끄럽게도...

내로라 하는 작가들의 이름을 보면서 모두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무척 설레였는데,

그 중에서 내가 가장 먼저 집어든 책은 레프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

우선 뒷표지에 쓰여진 '삶은 그 모든 시기에 맞는 사랑을 갖는다.'라는 문구가 참 맘에 들었다.

늘, "사랑은 타이밍이야."라고 말하는 내 마음과 비슷했다고 할까...

 

이 책에는 모두 네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가정의 행복, 크로이체르 소나타, 악마, 신부 세르게이..

이 네 편을 통해 다양한 양상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으며,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제목으로 실린 '크로이체르 소나타'에 가장 많은 관심이 갔으나, 다 읽고 나서 가장 큰 여운을 남긴 작품은 '가정의 행복'이었다.

서문에 새뮤얼 존슨의 "결혼은 많은 고통을 낳는다. 하지만 금욕은 어떠한 즐거움도 낳지 않는다."라는 글이 실려있는데, 사실 나는 그 '많은 고통'이라는 것에 지레 겁먹고 결혼을 기피하고 있는 중이다.

서로 좋아 평생을 약속하고 행복한 미소 속에 결혼을 하지만, 그런 행복은 얼마 가지 않고, 이제 곧 덤덤해지고 서로 미워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크게 다투기도 하고...(사람이 살면서 그 상대가 누가 되었든 어찌 안 다투고 살아갈 수 있겠느냐만......'사랑과 전쟁'을 너무 많이 봤다!-_-;)

전생에(전생이 있다면..) 부부싸움을 엄청 많이 해서, 이번 생에서는 해보지도 않고 질렸나보다,라고 혼자 생각해볼 뿐, 사실 나도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건지는 잘 모르겠다...

 

'가정의 행복'에서는 서로 사랑을 느끼고 결혼했지만, 결혼 이후 무언가 변해가는 감정에 서로 당혹해 하고, 이제 서로를 미워하는가 생각하다가,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을 찾는 내용이다.

맨 마지막 단락을 읽는 순간, 전체 이야기가 새롭게 이해가 되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그냥 그렇고 그런 사랑하고, 시들해지고, 다투고, 미워지고....한 마디로 '사랑이 식었다'라는 말이 나오기까지의 진부한 과정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건 '사랑이 식었다'라는 말로 표현할 것이 아니었다.

이날부터 남편과 나의 로맨스는 끝이 났다. 예전의 감정은 귀중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추억으로 남게 되었고, 아이들과 아이들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라는 새로운 감정이 생겨났다. 이 감정은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전혀 다르게 행복한 삶의 기반이 되었다.

불타는 사랑으로 시작한 결혼 생활에 그 '불꽃'은 언제고 사그라들게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 오는 것은 시커먼 숯덩어리 같은 '미움'이나 '증오'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인 것이다. 활활 타오르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온기를 유지하고 있는...

내 마음 속의 두려움이 이 글을 통해 조금 사그라들은 듯 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세기가 지나도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다 똑같구나...하는 것이었다.

100년도 전에 쓰여진 작품이지만, 그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생각에 나도 크게 공감을 느꼈다는 이야기...

 

미(美)가 선(善)이라는 완벽한 환상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아름다운 여인이 바보 같은 소리를 해도 사람들은 그 말 속에서 어리석음보단 현명함을 보게 되지요. 그녀가 추잡한 소리를 하거나 행동을 해도 사람들은 예쁘다고 합니다. 그녀가 어쩌다 바보 같지도 추잡하지도 않은 예쁜 말을 하면, 사람들은 그녀가 현명하고 도덕적인 기적의 여인이라고 확신합니다. ('크로이체르 소나타' 중에서...)

 

카사츠키는, 의식적으로 자기의 부도덕한 행위는 허용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으면서도 아내로부터는 이상적이고 천사 같은 순수함을 요구했던 1840년대 남자들(요즘은 그런 사람들이 없겠지만) 중의 하나였다. ('신부 세르게이' 중에서...)

 

특히 '신부 세르게이'에 나온 구절과,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나의 성장기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테스>의 이야기와 비슷한 맥락이 있어서 시작할 때는 울컥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읽었다. 진심으로 바라노니 '요즘은 그런 사람들이 없겠지만'..^^;

 

어쩐지 쉽게 접해지지 않았던 고전들을 이번 기회에 만나봐야겠다.

이번에 나온 펭귄 클래식 전권을 다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