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무척 기쁜 소식을 들었다.

바로 김연수 작가의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 소식!

처음에 수상작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이란 제목을 들었을 때는, 내가 읽어보지 못한 작품이라 얼른 읽어보고 싶은 마음 뿐이었는데, 이 책을 받아들고 나서야, 언젠가 작가님 블로그에서 보았던 글이 생각났다.

 

아, 그 코끼리!

코끼리 사진과 함께, ’고통’에 관한 글이 올라온 걸 읽었었는데, 그 글이 이 소설의 한 부분인가 보구나, 하는 생각을 그제야...

그리고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나 <마음의 의학> 같은 책을 읽고 남긴 흔적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즈음에 나온 소설이구나, 싶었다.(역시 ’고통’에 관해 많은 공부를 하셨음이...)

 

산책.

이 단어를 들으면 기분 좋은 이미지들이 많이 떠오른다. 녹음이 우거진 산길도 떠오르고,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호숫가도 떠오르고, 뭔가 비밀을 숨기고 있을 것 같은 골목들도 떠오르고, 기분 좋게 숨이 차오르는 그 느낌도 떠오르고,...아, 생각만해도 기분좋다.

 

김연수 작가는 산책하는 이들의, 어떠한 다섯 가지 즐거움,을 들려줄까, 무척 궁금했다.

(정작 소설을 읽어나가면서는 줄곧 ’고통’이란 존재와 맞닥뜨리게 되어, 산책이 주는 즐거움을 잠시 잊고 말았지만.)

소설 속 묘사를 생생하게 상상하는 재주(?)를 가진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심장을 묵직히 누르는 ’코끼리’ 때문에 힘들었다. 3년 전 쯤 겪었던 심장 통증의 공포가 되살아나 땀을 삐질...

 

 (코끼리 사진 출처: 김연수 작가 블로그)

 

짧은 시간에 척척,

코끼리도 재울 수 있으며,

침대에서는 잠만 자고 섹스만 하고,

결국 혼자서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며,

거리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될 것이다.

 

 

’코끼리’가 주는 고통이 심하긴 했지만, 산책하는 순간을 떠올리는 일은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책을 읽으면서 당장 산책을 나서고 싶은 마음을 달래느라 애먹었다.(새벽 4시경에 읽고 있었으므로 산책은 언감생심!)

 

 

’사람들을 만나면 그는 "우리 좀 걸을까요?"라고 말한 뒤, 상대방의 눈치를 살폈다. 상대방이 힘들어 하면 한 1킬로미터 정도 걷다가 가까운 커피숍으로 들어갔는데, 그런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산책에, 그냥 걷는 일에 굶주려 있었던 것이다.’

나도 그냥 ’걷는 일’을 좋아한다. 날이 좋을 때는 지하철에서 내려 집까지 45분 길을 걸어오기도 한다.(이럴 때는 대개 카메라를 들고 있을 땐데, 집에까지 오는 시간은 늘 그 두 배 이상이 걸린다.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세상을 향한 관심과 관찰력이 무한 상승. 몇 걸음 떼다 멈추고 찍고, 다시 몇 걸음 떼다 멈추고 찍고...) 누가 나에게 "우리 좀 걸을까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기꺼이, 행복하게, 그와 함께 걸을 텐데, 내 주위에는 걷는 일에 굶주려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늘 혼자 걷거나, 아니면 함께 ’가까운 커피숍’으로 들어가거나,이다. 이 소설을 읽고 생긴 자그마한(?) 소원이 하나 있다면, 김연수 작가와 산책 한번...이라고 하고 보니, 커다란(!) 소원. 

 

이어서 만나본 자선 대표작은, 작년 한 낭독회에서 작가님이 글쓰기의 전환점이 된 작품으로 언급했던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이었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읽어서인지, 처음 읽을 때와는 느낌이 무척 다르게 와 닿았다. 책 뒤에 실린 수상 소감과 문학적 자서전, ’이 세상 그 누구도 대신 써주지 않는 15매’. 이 문학적 자서전이 또한 무척 감동적이었다. 침대에 편안히 누워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자’의 신분이 더 없이 행복하고 고맙게 느껴지더라는. 자서전 끝에 작가님이 지금까지 쓴 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실려 있어서, 나는 잠깐 또 딴 생각을. 작년 여름에 ’북콘서트’에서, 작가님이 쓴 글 중에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무엇인지 질문을 했다가 대답을 듣지 못했었다. (하긴, 그 자리에서 당장 대답을 듣기에는 좀 무리한 질문이었다는 생각을, 질문을 하고서야 했으니...) 그 대답을 뜻하지 않게 여기서 만나게 되는구나,라는 기쁨을 누렸다는.

 

좋아하는 작가가 대상을 수상했으니, 무척이나 행복하고 들뜬 마음으로 만나본 수상집이었다. 새해선물,을 받은 기분이랄까.

함께 실린 우수상 수상작들도 그런 기쁨을 더욱 크게 해주었다.

요즘 연재 소설을 통해 만나고 있는 공선옥 작가의 <보리밭에 부는 바람>은 글 속 대사를 소리내어 따라 읽는 맛이 또 어찌나 좋은지. 제대로 흉내도 못내는 사투리 억양을 한껏 살려가며 신나게 읽어보았다. 정지아 작가의 <봄날 오후, 과부 셋>을 읽으면서는 나와 내 친구들 모습이 생각나서 괜히 분한 마음(?)이 들었다. 내게도 꼭 그런 친구가 있더랬다. 나에게는 말고 다른 친구에게만 비밀을 이야기하는 얄미운 P양이 떠올라, 나도 "야! 나 없을 때 또 비밀 이야기하면 죽어!"라고 냅따 소리를 질러줘야겠다는 생각을. 이혜경 작가의 <그리고, 축제>는 ’축제’라는 단어가 주는 즐겁고 신나는 느낌이 아닌, 무겁고 슬픈 느낌의 글이었다. 온 몸에 구더기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그 느낌을 떨쳐버리느라 힘들었다.(위에서 말했던, 그 ’재주’가 어김없이 발휘되는 바람에.)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그 지저분한 범죄 행위가 뿌리뽑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간절히 간절히. 전성태 작가의 <두 번째 왈츠>는 단편으로 만나고 헤어지기에는 아쉬워 장편소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냐마와 나 사이의 이야기도 궁금하고, 몽골 이야기도 더 듣고 싶고 말이다. 조용호 작가의 <신천옹>에는 늘 익숙한 것에만 머물러 있으려 하는 나와, 그러면서도 늘 새로운 것을 찾아 다른 세계로 떠나고 싶어하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한 두 인물이 있었다. 박민규 작가의 <절>은 처음으로 보는 ’무협소설’이어서 처음에는 글을 읽기가 무척 힘들었는데, 조금 읽다보니 글 속에서 비꼬고 있는 현실 모습이 참 재미있었다.(’그리고 대형, 지금은 돈이 최곱니다’ 정말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는.) 윤이형 작가의 <완전한 항해>는 SF소설이었는데, 역시 평소에는 거의 접하지 않는 장르다보니 낯설면서도 신선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었다.

 

책을 아주 많이 읽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게 읽는 편도 아닌데,

이번에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다 보니, 그동안 한국 소설을 별로 많이 읽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수상 수상작가 일곱 명 중 이름이 생소한 작가도 있었고, 한 작품도 읽어보지 않은 작가도 여럿이었다. 슬프고, 부끄럽다.)

올해에는 한국 소설과 더욱더 많은 만남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불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