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나로서는 드물게 예약 주문하여 구입을 한 책이다. 나는 매월 5권 내외의 책을 구입하는데 공지영 작가가 5년 만에 펴낸 신작이라는 말을 듣고 구입 목록의 맨 윗자리에 이 책부터 올린 것이다.『봉순이 언니』이후 작가의 책을 10여 권 정도 읽은 듯하다. 그중에는 소설도 있고, 에세이도 있지만 어떤 책도 지루하게 읽거나 내용에 대해 실망을 느끼지 않았다. 공지영 작가는 내게 있어서는 작품성과 흥미성에 있어서 믿을 수 있는 작가인 셈이다. 그렇게 구입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느낀 생각을 몇 가지만 적겠다.

 

첫째, 책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었다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의 저자가 공지영 작가이고, 5년 만에 펴내는 신작이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이 책이 한겨레신문에 연재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몰랐다는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었지만, 곤혹스러울 때도 있었다. 이 책의 경우는 차라리 몰랐다는 것이 더 좋았다.

 

이 작품의 경우는 베네딕도 수도원 수사에서 신부가 되는 정요한 신부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벗이자 수도원 동기인 미카엘과 안젤로 세 수사의 우정, 성소가 되는 과정의 걸림돌의 하나인 여성들과의 사연이 담겨 있다. 모태 신앙으로 가톨릭을 신앙으로 가진 내게는 여러모로 친숙하고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이 이 책을 만난 것이, 감동을 극대화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던 듯하다.

 

둘째, 등장인물들의 물음인 “왜? 대체 왜?”가 가슴에 와 닿았다. 이 책에서 가장 자주 많이 나오는 말이 "왜? 대체 왜?"였다. 등장인물들은 다양한 환경에서 상상하지 못할 끔직한 고통을 겪을 때마다 그들의 신에게 물었다.

 

"왜 이런 고통이 있냐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착하게 살려고 애쓰고 있는 자신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왜? 대체 왜 그러시냐?"라고….

 

"왜? 대체 왜?" 이 질문은 작품과 관계없이 내가 현실에서 신에게 자주 물었던 질문이자 의문이었다. 특히 지난 대선 결과를 보며 이런 의문을 품기도 했다.

 

"혈서를 쓰면서까지 일본왕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해방공간에서 남로당 군부내 프락치로 공산당에 충성을 다했으며,

자신을 용서한 조국의 정부를 불법적인 반란으로 전복했고,

유신 독재의 철권을 휘두르던 박정희 씨에 대해 역사는 제대로 응징을 하지 못했는데

왜? 대체 왜?

그런 분의 따님을 다시 대통령으로 뽑아야 했는가?

신이 이 나라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책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좀 이상하기는 하다. 책의 내용이나 주제와 관계없이 제멋대로 상념에 빠지면서 혼자만의 세계로 떠나거나 개인적인 질문에 대한 답까지도 듣게되기를 기대할 때가 종종 있으니….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도 들을 수 있기를 소망했다. 어이없는 사태로 친구들을 잃은 정요한 수사가, 공산당의 핍박으로 동료들을 잃은 토마스 수사가, 남편과 사별을 해야 했던 정요한 수사의 할머니가 "왜? 대체 왜?"의 답을 듣기를 원했 듯이, 나 역시 내 질문에 대한 신의 답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그 답을 들었을까? 들은 듯한 감동을 느꼈다. 가톨릭 성가 469번의 구절이던가? ‘언제나 주께 물었다. 세상은 사랑 찾는데 왜 고통이 있냐고? 오직 한 마디 내게 주었네. 마치 물음에 답하듯이. 사랑하라 알고 싶거든. 빛이 솟음을 너 보리라.’자주 듣던 그 노래의 의미를 느낀 듯도 했다. 내가 듣고 느낀 답을 이 책을 읽게 될 다른 이들도 공감했으면 좋겠다.

 

셋째, A.J 크로닌 박사의『천국의 열쇠』가 떠올랐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가톨릭 최고의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학창시절에 그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 고지식하여 답답하기까지 한 치셈 신부가 착함으로 인해 글레이나 가족에게 천대를 당할 때는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모른다. 또 그의 선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원장수녀, 어려서부터 길러준 은정을 끝내 배반하는 안나의 가증함 등을 대할 때는 마치 내가 당하듯 울분이 치솟았다. 그러나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신의 손길이 치셈에게 닿고 있음을 느끼면서 마치 내가 창조의 섭리에 참여한 듯 기쁨을 체험했다. 학창시절에 느낀 그 감동을 정서가 메마를 대로 메마른 듯한 이 나이에 이 책을 통해 다시 느낀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빅토리아에러더스 이야기는 특히 감동적이었다. 1.4후퇴 당시 승선인원 12명의 화물선인 빅토리아메러디스호에 1만 4천 명의 피난민을 싣고 거제도까지 운반했다는 선장! 피난민들의 참상을 그대로 둘 수 없어서 식량은 물론 식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 사람들을 태우고 사흘 간의 항해를 마친 그는 그 항해를 이끈 것은 자신이 아니라 신의 손길이었다고 했던가? 후에 뉴욕 뉴튼 수도원의 마리너스 수사가 된 선장이 그 배에 탔던 산모에게서 태어난 사람의 아들에게 도움을 받는 대목…. 그것이 소설적인 구성이 아니라 고통 받는 이들의 "왜? 대체 왜?"라는 질문에 대한 신의 대답이라고 믿고 싶다.

 

아마 나의 체험과 종교가 이 책의 등장인물들의 삶과 깨달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 듯하다. 해방공간의 공산치하에서 그렇게 핍박을 당하며 많은 동료들을 잃었던 덕원 베네딕도 수도원의 독일인 수사들이 가까스로 석방이 된 후 대부분 한국으로 돌아와서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의 초석을 다졌다는 실화를 나는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다. 고국을 떠나서 이역 만리 한국에 온 후 이 나라를 위해 일생을 바친 이방인 성직자들이 자신의 삶을 통해 사랑의 의미와 인간적 품위를 보여 준 예화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 세례를 주신 호주 태생의 조선희(필립보) 신부님은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에 와서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가 추방되셨다. 해방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오셨으나 한국전쟁 때 북한군에 체포가 되어 압록강 부근의 강계까지 끌려가며 34개월 동안 수용소 생활을 하셨다. 당시 700여 명의 포로 중에 100여 명이 세상을 떠났으므로 세계 언론에서는 이들의 포로 생활을‘죽음의 행진’으로 불렀다. 극적으로 생환을 한 뒤에 조 신부님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셨고,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강원도 벽지에서 대부분의 삶을 보내며 자신을 봉헌했다. 즉 이 책의 신부님들의 생애는 소설적인 허구가 아니라 실화였던 것이다. 작품속의 등장인물들과 내게 세례를 주신 조 신부님은 "왜? 대체 왜?"의 답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 고통을 겪지 않고도 책을 통해 느끼고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이 책은 대단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는 여러 매체의 보도를 보았다. 발간 이틀 만에 11만부를 판매하여 2판에 돌입하는 놀라운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다음은 한국일보에 실린 관련 기사이다.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310/h2013103120552984210.htm

 

댓글 논란 등 각종 의혹에 대해 귀를 막고 있는 현 정권의 어두운 모습이 우리 사회를 무겁게 하는 상황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공지영 작가의 작품이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림으로써 밝은 조짐의 하나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높고푸른사다리, 공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