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민 작가의 소설『조공원정대』는 자음과모음 2기 서평단에서 열다섯 번째로 받은 책이다. 내가 자음과모음을 통해서 만나는 책들의 공통점 대부분은 저자나 책에 대하여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의 인연이라는 것이다. 내가 구입한 책은 저자나 책에 대하여 어떤 관심이 있으니 구입을 한 것이고, 서평단에 응모해서 받게 된 책도 관심이 있으니 신청을 한 것이니 성격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자음과모음 서평단의 책은 출판사에 만든 책을 무작위로 보내 주는 것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독자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마음으로 보면 미지의 벗이고, 부담스러운 면으로 보면 무방비의 상태에서 적의 기습을 받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내게 있어서 어떤 경우였을까? 책을 완독한 뒤 내가 느낀 마음을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전혀 감을 잡지 못한 상태에서 만난 책이었다. 작가나 내용에 대해서 배경지식이 없다고 하더라도 제목이나 표지그림 등을 통해서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조공원정대’라니‘조공’이란 무슨 뜻일까? 세계에서 가장 미국의 말을 잘 듣는 나라에 살고 있으니 한미 관계를 그린 소설인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원정대’가 왜 들어가는가? 표지를 봐도 의미 파악이 쉽지 않다. 독일군 헬밋 같은 것도 보이고, 입을 벌리고 있는 남자들은 웃은 것인지 미친 것인지 알 수가 없으며, 세 개의 바퀴는 또 무엇일까?

 

띠지에 있는 ‘잘난 것 없는 청춘들의 속절없이 웃기고 대책 없이 울리는 이야기’는 무슨 의미일까? 그게 ‘조공’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얼마 전에 웹툰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고삼이 집나갔다』의 중요 배역 중에 한 명인 ‘조공’을 연상하면서 책을 펼쳤다. 그렇다면 조공은 사람이름일까? 아니면 지역일까?

 

둘째, 단편인 것을 보고 잠시 당황했다. 무언가 시니컬하면서도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내용에 흥미를 느끼면서 책장을 넘기고 있었는데 37쪽에서 이야기가 멈췄다. 이 소설은 장편이 아니라 단편소설이었던 것이다. 242쪽에 8편이 실렸으니, 40쪽 내외의 짧은 이야기들….

 

내가 당황한 이유는 현대 단편소설을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교과서에서 읽은 현대 문학 외에는 최근에 단편소설을 읽은 기억이 없다. 반가움보다는 낯설다는 느낌에 부담스러웠다. 그동안 장편에 길들여진 탓일까?

 

셋째, 나로서는 부담스러운 내용이었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하는 행동은 우스꽝스럽다. 자기 딴에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있지만, 결국은 부처님손바닥의 손오공처럼 당하기나 하는…. 아니, 손오공은 그래도 천국에 가서 천도를 따먹고 제천대성이라는 벼슬이라도 받지 않았는가? 이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그런 복도 없이 그저 당하고 당하다 쓰러지든지, 요행 목숨을 건졌다고 하더라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부담스럽다고 한 이유는 그들의 실패가 황당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 근접한 듯이 보였다는 것이다. 작품속의 인물들이 겪는 슬픈 코미디와 좌절은 나나 나의 가족, 또는 제자들의 모습이거나 미래가 아닐까?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굳이 문학을 통해 그것을 확인해야 하나, 라는 생각에 책장을 덮고 싶은 마음마저 일었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의 성격은 『운수좋은 날』의 현대판 김첨지들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제 딴에는 머리를 굴리고, 운도 따르는 듯이 만리장성을 쌓고 있지만, 어쩌면 하나같이 복도 없단 말인가? 김첨지는 나름으로는 몸부림을 치지 않았던가? 한푼이라도 벌어서 아내를 살리겠다고…, 그러나 힘들게 마련한 설렁탕을 먹을 아내는 이미 저 세상으로 간 뒤였다. 일제강점기 가난한 서민인 김첨지 내외가 그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이 작품속의 인물들도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세상의 풍파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미래에도 그런 운명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넷째, 부담스러웠지만 몰입하면서 읽었다. 이 책속의 여러 단편들은 독자를 끌어 들이는 매력(마력이라고 해야 할까?)을 지니고 있는 작품들이었다. 그것은 작가의 힘이고, 작품의 저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희망적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이, 박화성의『고향 없는 사람들』이, 최학송의 『탈출기』가… 그밖에 식민지 치하의 많은 작품들이 답답한 환경에서 희망이 없는 현실을 그렸지만, 아무튼 우리는 광복을 맞이하지 않았던가? 해방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장기독재를 했고, 쿠데타를 일으켜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이 18년간 철권을 휘둘렀으며, 하극상의 반란으로 서울의 봄을 악랄하게 짓밟고 권력을 잡은 전두환 대통령이 기세등등하게 한 시대를 휘둘렀다. 그들이 하늘을 찌를 듯 힘을 발휘할 때는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가 보다, 라며 체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는 갖가지 부정적인 세력을 극복하면서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이 책에서는 다양한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무너지고 있는 우리 이웃을 그리고 있다. 아울러 실오라기 같은 희망도 보이지 않는 듯한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아니, 작가의 뜻이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독자들이 이 글의 이면에 숨어 있는 희망의 그림자를 현실로 끌어내고, 밝은 미래를 개척하면 되는 것을….

조공원정대, 배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