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의 마지막을 보내면서 읽은 소설...
날씨가 추워서인지... 마음이 추워서인지... 소설 속의 극한 환경들이 고스란히 다가선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읽은 황석영 작가님의 소설이다. 과연..... 대가의 작품답긴 한데...

소설 속 배경은 그리 멀지 않은 과거...그러니까 1990년대와 2000년을 살짝 걸치는 우리의 동시대.
그리고 주인공 "바리"의 북한땅에서 중국으로 탈북...그리고 영국으로의 밀입국까지가 공간적 배경이다.
낯설지 않은 역사적 사실들이 연관되는데...김일성의 사망, 북한주민의 탈북, 911미국무역센터 테러, 영국의 버스테러사건 등.

소설은 한 개인의 가족사..그러니까 북한땅에서 일곱번째 딸아이로 출생한 주인공 바리의 고난의 시간들을 
따라가면서... 그녀 주변인물들과 동시대 그녀가 겪어내는 사건들을 통해 시대적 어둠들을 적고있다.
특히 북한땅에서 우리 민족들이 지금 현재 겪어내고 있는 굶주림과 고통을 탈북이라는 현실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또한 북한만이 아닌 동시대의 제3세계국가들의 가난하고 배고픈 민초들이 함께 겪고있는
시대적 아픔들을 위대한 제국 영국 런던의 뒷골목을 통해서 보여준다. 

그곳의 허름한 연립주택에 모여사는 다양한 배경의 민초들... 
지하층에서 함께 동거한 방글라데시인 언니,
지하층 이웃인 나이지리아인 흑인 부부, 주유소일과 시간제파출부를 하지만 불법거주자다.
일층의 중국인요리사와 필리핀 청소부, 작은 인도식당을 경영하는 스리랑카인 가족,
이층의 폴란드인 가족, 집수리와 상점점원을 한다.
연립주택을 관리하는 파키스탄인 압둘 할아버지,
삼층의 태국에서온 학생부부, 불가리아인 노부부까지...그야말로 다인종이 함께 공생하는 공간이다.
마치 이 세계를 축소해 놓은 듯하다. 
이들의 공존은 외부의 억압...그러니가 불법체류자 단속이 없었다면 얼마든지 평화로울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바리의 행복한 일상 역시, 이슬람과 미국주도의 전쟁이 없었다면...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그러하듯.... 민초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들은 또다시 찢기고 상처입고 헤어지고 도망다니고..... 고통받는다. 마치 역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지금도 이 세계에 전쟁과 억압으로 고통받고 있는 힘없고 배고픈 나라의 민초들이 존재하듯이...

소설은 접신의 능력이 있는 바리를 통해서.... 사뭇 철학적인 물음들을 제시한다.
딸아이 순이의 죽음과 절망의 고통속에서 바리는 생명수를 찾아헤매는 꿈을 꾼다.

고통받는 영혼들이 바리에게 묻는다.
"얼른 대답해다오. 우리가 받는 고통은 무엇 때문인지..."
"어째서 악한 것이 세상에서 승리하는지 알려줘요..."
"우리의 죽음의 의미를 말해보라!"
"여긴 네가 가장 미워하고 있는 것들이 타고 있는 배다. 우리는 언제 풀려나게 될까?
 우리는 언제나 너에게서 풀려나게 될까?"

생명수를 못가지고 돌아오는 바리 속의 어린아이(딸아이)가 대답한다.

"사람들의 욕망때문이래. 남보다 더 좋은 것을 먹고 입고 쓰고 살려고 우리를 괴롭혔지. 
그래서 너희 배에 함께 타고 계시는 신께서도 고통스러워 하신대...."
"전쟁에서 승리한 자는 아무도 없대. 이승의 정의란 늘 반쪽이래."
"신의 슬픔. 당신의 절망때문이지. 그이는 절망에 함께하지 못해."
 "우리엄마(바리)가 묶여 있어. 엄마가 미움에서 풀려나면 너희두 풀릴거야."

생명수에 대한 의미를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파키스탄인 압둘 할아버지는 바리에게 말한다.

"할아버지, 세상을 구해낼 생명의 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걸 얻을수만 있다면...."

"희망을 버리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지. 네가 바라는 생명수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 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 

...........

소설은 바리공주 신화 속의 생명수를 정점으로, 
항구적 의미로서의 평화, 이상적 세계를 추구하며,
종교적 의미에서의 구원에 대한 의문을 제시한다고 본다.
또한 고난받는 민초들을 통해 고통을 의미를 생각하게 하고
다소 철학적인 변증을 이루어낸다.

역시 인생의 의미와 고통의 문제를 풀어내려는 대가의 문학적 노력이 느껴진다.
다만 수세기동안 명확한 답을 제시할 수 없는 철학적문제들에 대한 소설 속 답변들의 모호함과 그 한계에
또한 인생의 무게를 느낄 수 밖에 없다.     

(이상에서 적색,청색의 글은 본서<바라데기>에서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