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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팔리는(응?) 철학자 강신주.

강신주를 알게 된 건, 친하게 지내던 동료 선생님과의 대화 때문이었다.

안그래도 좋아하는 알랭 드 보통의 TED강의를 듣고 난 후 심취한 상태에서 점심을 먹으며, 정말 이 남자 너무나 섹시하다는 감탄을 쏟아부었던 적이 있다.

알랭드 보통을 모른다고 하기에 철학자 겸 작가라고 소개했었고 그 때 그 친구는 자기가 요즘 심취한, 섹시한 작가이자 철학자는 바로 '강신주'라며 그를 소개해 주었다.

오, 그렇다면. 한 번 읽어보자 하고 시작한 책이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이었다.

그 때 그의 책을 도서관에서 뒤지면서 생각했다. 철학자가 이제까지 쓴 책이 이토록 많다니 정말로 대중과 소통하려는 의지를 높이 살만하군.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의 책을 읽으며 나는 참 좋았다. 나는 음악에 관한 글, 미술에 관한 글, 책에 관한 글, 시에 관한 글을 씀으로서 그 소재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커지게 만드는, 당장 듣고 싶고 읽고 싶고 느끼고 싶게 만들어주는 그런 류의 글을 매우 높이 사므로.

이 책 또한 그런 책이다. 스피노자가 정의내린 마흔여덟가지 감정을 소재로 하여 『감정수업』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주목할 점은 이 모든 감정을 이야기 할 때 고전을 엮어 글을 썼다는 점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내가 미처 읽지 못했던 그 책이 읽고 싶어 근질거릴 정도로, 이 책은 독서욕을 간지럽히는 무언가가 있는 책이다. 이 책에 인용된 스피노자의 감정 정의를 만나는 재미도 좋았다.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좀 더 거칠어지고 단순화되는 요즈음 단어를 하나하나 곱씹어보며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또한 무엇보다 좋았던 건 그 감정들과 엮인 고전을 새로이 소개받는 기쁨이었다. 특히나 문학을 소개해준데서 그치지 않고, 작가를 소개해 준 것도 말이다. 매 꼭지마다, 이번 감정엔 어떤 문학의 어떤 주인공을 엮어 설명할까 궁금해지곤 했다.

하지만 이전의 책에서 기대했던 것처럼, 무언가 새로운 지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는 없었다.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을법한 부분은 10%도 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새로운 통찰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책의 45% 정도는 고개가 끄덕여졌다면, 이 책의 55%정도는 갸우뚱해지곤 했다. 잘 나가다가 뭐 이런 요상한 결론이? 하는 느낌이 들어 황당한 느낌이 들었던 적이 제법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과 문체가 달라서 그랬던걸까. 무례하게 강요한다는 느낌도 조금은 불편했다. 그런 느낌이 들어 책의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을 무렵 힐링캠프를 통해 처음으로 그가 말하는 스타일을 알게 되었고, (남편은 팟캐스트를 통해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나에겐 처음이었다) 그제서야 이 사람의 스타일을 파악했고, 이 책은 맥락에서 읽으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꽤 오래 베스트셀러 상위권 랭킹을 지키고 있으며 대중들에게 아주 읽혀지기 쉬운 요소를 갖고 있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 잘 생각해 보지 않고 바삐 달려온 분들이라면 감정을 명료화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이 책의 메세지를 100% 받아들이기엔 여전히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베스트셀러'스러운' 책이다.

여러모로 비판적 시각을 떨칠 수는 없었던 채로 끝까지 읽었지만, 어쩌면 그건 베스트셀러에 대한 어느정도의 비판적 시각이기도 한 셈이라고 볼 수 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저자의 생각에 국한되지 않고, 내 나름의 통찰과 저자에 대한 반박으로 나만의 감정사전을 만들어가며 재구성하는 재미는 있었다.

철학책을 싫어하는 사람 (혹은 철학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

자신의 감정에 대해 잘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 (혹은 명료화되지 않은 감정이 답답한 사람),

문학고전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 않는 사람 (혹은 문학 고전을 읽기 어려워하는 사람)

그렇다 할지라도 싫어하는 것을 한 번 깨뜨려 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 책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한 꼭지씩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임은 분명하니까.

다만, 요즘 읽고 있는 인문학자 황현산님의 책 『밤은 선생이다』를 읽으며 생각해본다. 돌직구 스타일보단 적절한 비유와 은유로 표현된 스타일의 글이 훨씬 나를 더 강하게 사로잡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