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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노르웨이의 숲, 해변의 카프카를 세 번쯤 시도했고, 모두 실패했었던 게 정말인가 싶을 정도로, 그의 문장은 나를 압도했다. 바로 눈 앞에 그릴 수 있을 정도의 생생한 묘사, 피식- 웃기도 부족한 무뚝뚝한 위트, 심플한 문장. 게다가 내가 자주 타고 다니는 츄오센, 신주쿠의 찻집과 나카무라야, 수도 고속도로, 도쿄 근교의 야마나시, 그리고 우리 집에 종종 찾아오는 불청객 방문원 NHK수금원과 여호와의 증인 이야기 등, 일본에서 내가 경험한 장소나 상황에 대한 묘사가 나올 때면, 그의 소설이 더더욱 생생하게 내게 다가오곤 했다. 그는 내게 도쿄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소설가이기도 한 셈이다. 게다가 그는 적재 적소에 '명언'을 쓸 줄 아는 문장가이다. 주인공의 대사를 통해, 그는 인생에 관해 그가 하고싶은 명언들을 쏟아내곤 하는데, 전혀 억지스럽지도, 과하지도 않은 말은 크게 공감을 자아내곤 한다.

# 2.

1Q84. 제목 한 번 멋지다. (일본어를 할 줄 모르던 시절, 하루키에 관심도 없던 시절, 이 책이 날개돋힌 듯 팔릴 때 나는 이 책이 『아이큐팔사』 인줄 알았었고 이름 한 번 참 어렵다. 생각했었다.) 『이치.큐.하치.욘.』 일본어로 9가 Q와 발음이 같기에 나올 수 있는 멋진 제목이다. (다만, 일본 사람들은 1984년.이런 식으로 연도를 얘기하지 않는다. '유통기한'혹은 '달력' 정도에만 그런 식으로 연도를 표기하는 것 같다. 2014년이라고 어딘가에 써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헤세이 26년. 이런 식으로 쓴다.)

조지오웰의 『1984』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 1984년의 일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공상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판타지임에도 베르나르 베르베르, 혹은 기욤뮈소와 다른 점은, 환상의 세계가 착.착. 맞아 떨어지지도, 전부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소설엔 공백이 지나치게 많고, 그래서 독자들이 책을 덮은 후에도 '피곤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들이 상당히 많다. (그건 다자키 쓰쿠루와도 닮았다.)

도대체 리틀피플이 뭔지, 공기번데기가 뭔지, 그 이상한 종교는 대체 뭔지, 덴고의 아버지의 쇠약과 죽음, 후반부 NHK 수금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간호사의 정체는 무엇이고, 쓰바사는 무엇이며, 또 덴고의 어머니는 어떤 사유로 죽게 된 건지 등등. 소설 속의 대부분이 물음표이다. 게다가 아오마메의 임신 확신과 처녀잉태는 대체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가장 어이 없었던 부분이 바로 그부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에서 나의 세계관, 종교관, 가치관을 찾을 생각은 추호도 없으므로, 순전히 개인적으로 해석했고, 받아들이고 싶은 부분만 받아들였다. 물음표가 많은 그의 소설이기에 가능한 것이고, 그래서 나는 빈틈을 많이 만들어둔 그의 소설이 좋다. 내가 내 식대로 채워가면 되는 거니깐.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중,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 종교에 따라, 세계관에 따라 그것은 얼마나 달리 보일 수 있는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은 각자 다른 세상에서 서로 다른 것들에 관심을 갖고, 관심 있는 것들만 보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령,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놓여있지 않은가. 아오마메가 1Q84년으로 흘러들어간 것과 같이, 전혀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은 도처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언제든 빠져 나올 수 있는 세계일 수도,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다시 나오기 힘든 세계일 수도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결국 내게, 이 책의 이야기는 혼란한 세상 속에서 꾸려가야 할 '개인'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 주었고, 작가가 무엇을 의도했든간에, 내겐 확실히 그 어떤 의미가 되었다.

그의 인생의 역작이라 할 만큼, 이 책은 잘 쓰여졌다고 생각한다.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생생하며 인상적이어서(게다가 비밀스럽기까지 하여) 누구 하나 관심갖지 않을 수 없다. 1권은 미친 속도감과 흡입력을 보여준 데 비해, 3권이 조금 지루하고 허망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이 두꺼운 책을 읽는 동안 한 권 읽는 것보다 더 빠르고 쉽게 읽었다는 점에서 하루키의 문장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 3.

돌이켜보면 나 또한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문을 통과했던 때가 인생에 몇 번 있었다. 수도고속도로 한가운데서 그것이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인줄도 모르고 비상계단을 통해 내려왔던 아오마메처럼, 그 문을 통과할 당시에는 그것이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이라는 걸 전혀 몰랐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것이 새로운 세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전과 후의 세상은 똑같았지만, 내겐 완전히 다르게 보였고, 다시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없기에, 결국은 어려운 선택형 질문지를 풀어나가며 괴로워해야 하는 게 인생이지만, 가끔은 나도 아오마메가 사랑과, 아이와, 자유를 얻은 것처럼, 내가 원하는 그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제 3의 세계를 꿈꾸어 본다. 일상을 떠나 여행을 하는 것 또한, 내겐 제 3의 세계에 대한 갈망의 일환이다. 물론, 그 꿈의 세계 또한 모순과 새로운 위협, 혹은 고통이 도사리고 있는 세계일 수 있기에 오래오래 머무를 자신은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