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파울로 코엘료를 썩 좋아하진 않는다. 20대 초반에 그의 책 『연금술사』를 읽고 꽤나 큰 희망과 용기를 얻었지만 그 이후 그의 책은 문학이라기보단 자기계발서에 가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예외없이 베스트셀러에 오랫동안 랭크되니 베스트셀러용 시간때우기 책이라는 편견도 있었다. 사서 읽긴 아까웠고, 없는 시간 쪼개서 읽기도 아까웠고, 누군가가 사놓으면 빌려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기독교(혹은 캐톨릭) 색채에 동양의 신비주의가 오묘하게 녹아든 그의 영성(?) 혹은 사상은 그의 소설로 다가가는 데 거리낌을 주기 충분했고 말이다. 하지만 도대체 인정할 수 없는 세계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조금 거슬리는 부분은 있더라도 재미있게 읽은 것에 비하면 좀 더 익숙한 세계관을 그린 그의 소설이 거슬리는 것으로 보아, 그의 소설이 마뜩잖은 결정적인 이유는 아마도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그가 고집하는 강박적인 '해피엔딩'말이다. 마치 '거 봐, 내 말이 맞지?' 하고 강요를 당하는 것 같아 세뇌당한 것 같은 찝찝함이 있었다. (나는 독서를 하는 동안, 주체가 되고 싶지 객채가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물론 기욤 뮈소 또한 해피엔딩에 대한 강박을 갖고 있다고 느껴지지만 그래도 기욤 뮈소를 좋아하는 건, 그의 소설엔 반전을 거듭하는 보다 통쾌한 짜릿함이 있기 때문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착한(뻔한) 결말에서는 밋밋함과 지루함이 느껴진다. 이렇게 그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보자면,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만큼, 그의 문장력은 정말로 대단하다는 것이다. 일상에 대한 관찰력이 놀라운 작가라는 것을 『11분』을 통해 한 번 경험했지만, 이번 소설을 통해 다시 한 번 더 실감할 수 있었다. 

 

 

# 2.

 

그의 신작 『불륜』은 30대의 한 여성이 결혼생활에서 느낀 권태, 그로 인한 외도(불륜), 그리고 회복의 과정을 담은 한 유부녀의 성장소설과도 같다. 소재는 파울로 코엘료가 택한 것 치고는 짜릿하나 사실상 평범하고,(불륜 없는 소설, 불륜없는 영화가 요즘 어디 있나?) 스토리 진행도 평범하며(스토리 진행에 있어 실망하지 않았다. 알랭드 보통과도 비슷한 스타일의 평범한 스토리를,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다.)  결론은 기대이하로 억지스러웠다. 작가에겐 이 작품이 주고자 하는 교훈 - 그렇다. 파울로 코엘료는 교훈을 강박적으로 좋아한다. - 에 대해 집필 초기부터 명확한 의지가 있었을테지만, 나에겐 억지스런 결론으로 느껴졌다. 

 

"불륜, 즉 강한 일탈의 충동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죄성이겠지만, 결국 그것은 마약과도 같은 것이라 너를 구원해줄 수 없다. 진정한 사랑만이 너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불륜』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뻔한 메세지를 압축하자면 대략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 3.

 

누군가 이 소설을 통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굳이 이 책을 통해 알 필요는 없다며 말리고 싶다. 파울로 코엘료의 팬이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속 그의 문장들은 충분히 놀랍고 아름다웠다. 그의 생생하면서도 심플한 서술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알랭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느꼈던 것과 매우 흡사한 느낌을 받았는데, 어쩌면 보통보다도 좀 더 멋지고 예술적으로 다가왔다. 객관적이고 덤덤한 여주인공의 독백을 통해,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기도 했고, 읽는 내내 감정이입 없이, 인생의 다양한 감정의 '현상적인 측면'에 대해 관찰하고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의 이야기속에 푹 빠지기보단, 그의 서술을 통해 삶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정도의 거리감을 두었는데,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한다고 말하는 소설들은 대부분 이런 식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결말 부분은 도저히 내가 좋아할 수 없는 스타일임은 확고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다를 지도 모르겠다. 건전한 결말로 인해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쉬운 책이 될 수도 있겠고, 쉽게 읽힌 후에 결론까지 착하게 내려주니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지도 않을 테니까. 하지만 결론이 아무리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앞부분의 이야기에서 얻은 관찰과 통찰을 함께 쓰레기통으로 버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의 관찰력과 통찰에서 비롯된 여인의 내면에 대한 서술은 분명 훌륭했다. 예리했고, 그의 언어는 예술적이었다. 그의 글은 마치, 하나 하나 빠짐없이 반짝거리는 예쁜 조각들로 구성된 퍼즐과도 같았다. 70%까지 맞췄을 때 가장 아름다웠고, 100%까지 맞추고 나니 차라리 미완성이 낫다 느껴지던 그런 퍼즐. 

 

 

# 4.

 

패러글라이딩은 내가 20대때 버킷리스트에 올려두었던 것이었다. 스카이다이빙을 한 후 자유낙하의 짜릿함에 비해 패러글라이딩이 조금 시시하게 보이긴 했지만, 열기구든, 패러글라이딩이든, 중력을 거슬러 세상을 내려다보는 다양한 방법은 가능하면 더 많이 해보고 싶은 것들이었다. 스카이다이빙을 했을 때, 1분여간의 자유낙하의 짜릿함과 바람의 저항을 느끼며 바라보았던 아름다운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가끔, 그런 짜릿한 경험들이 아무것도 아닌 일상에 영감을 불어넣고 터닝포인트를 만들어줄 수 있음을 나는 믿는다. 어쩌면 인생은, 별 것 아닌 것들로 인해 별 거인 인생의 문제들이 스르륵 해결되어버리기도 하는것이니깐. 

가족과 함께, 혹은 가족 구성원 각자가 짜릿한 경험을 종종 찾을 수 있기를, 모험을 감내하고라도 터닝포인터들을 많이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