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정말로 알 수 없는 매력이 있는 작가다. 한 번 손에 잡으면 도저히 책을 놓을 수가 없다. 내 히가시노 게이고의 딱히 열렬한 팬이 아님에도 벌써 그의 책만 7권이나 있다. 물론 그의 방대한 저서를 생각하면 아주 일부이긴 하지만 본인 치고는 꽤나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살 터이니 곧 10권을 넘어서리라 생각된다. 본래 좋아하는 작가만 편식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설마 이렇게 많이 사리라고는 본인도 생각하지 못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력이 무엇인가. 개인적인 생각은 이렇다. 격렬한 감정의 묘사는 자제하는 담백한 문체, 마지막 순간 까지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탄탄한 스토리 구성력, 그리고 인간의 심리를 꿰뚫는 통찰. 개인적으로는 닮고 싶은 작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본인 같은 평민이 어찌 그를 따라잡을 수 있으리. 100년은 이르다.

  아, 일단 『새벽 거리에서』를 읽으면서 오타들이 눈에 띄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편집 쪽에서 좀 더 신경 써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도서출판 재인… 잊지 않으리.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편집상의 문제일 뿐, 이와 별개로 이제부터 간단한 감상평을 적으려 한다. 책을 읽은 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잘 모르겠다. 이게 잘 하는 짓인지 아닌지 말이다. 이 소설은 뭔가 '여지'를 많이 남겨둔 책이다. 나쁘게 말하면 뭔가 모호하고 말하려는 게 대체 뭔지 잘 안 잡히는 어려운 책이다. 본인은 이 책이 '소통'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고 봤는데, 역시 확실하지 않다. 사람에 따라 제각기 모두 다르게 받아들일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뭐 독자는 100% 옳은 것이라는 말도 있으니 본인은 이 소설이 그러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고 멋대로 생각하겠다.

  이 소설은 불륜 로맨스(?)물과 추리물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아주 미묘한 지점에 있는 책이다. 복잡하다. 도대체 추리물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추리물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기대치에 못 미칠 것이고, 일반 통속 소설로 읽는다면 꽤 괜찮게 읽힐 수도 있으나 역시 밀당의 묘미가 기대치보다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럼에도 '너 왜 별 4개나 줬니'라고 말한다면, 이렇게 대답해야 할 것 같다. "'불륜 로맨스'도 '추리물'도 이 소설의 본질이 아니다." 물론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 얼마든지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만약 작가가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면 더더욱 할 말이 없다. 그러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새벽 거리에서』가 마냥 통속소설로 가볍게 읽히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 알다시피 이 소설은 남편의 불륜이 시작되는 시점에서부터 서술이 된다. 주인공은 남성이며,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다. 그에게는 부인과 어린 딸이 있다. 그의 내연녀는 15년 전 발생한 살인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다. 벌써부터 남자와 여자의 눈치 싸움이 시작되리라 예상하는가? 안타깝게도 이 소설에서 그것은 주로 다뤄지지 않는다. 아니, 다뤄진다 해도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이 아까 말했듯이 불륜 로맨스와 추리소설의 애매한 선을 왔다갔다 한다고, 하지만 그것들 역시 본령이 아닐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 두 가지가 아니라도 충분히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작품이 틀림없다.

  이 소설에서 주목해야할 관계는 주인공과 아내, 내연녀와 그의 아버지의 관계이다. 본래 소설 내에서의 관계란 아주 특별하지 않은 이상 문제적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그들의 관계를 어떻게 형상화했는가에 따라 그 소설의 내용과 깊이, 성격이 결정되는 것이다.

  책을 어디선가 구경이라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책에도 모종의 반전이라는 게 있다. 표면적으로는 한 가지의 반전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반전은 둘이다. 사실 추리소설은 그간 '반전을 위한 소설'이라는 비판은 면치 못하고 있었는데, 적어도 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새벽 거리에서』만큼은 그러한 평가를 내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소설에서의 두 가지의 반전은 '주인공-아내', '내연녀-그의 아버지'의 관계를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방향을 전환시키면서 그 순간 이들의 관계 자체가 모종의 의미망을 형성하며, 독자에게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를 통해 우리는 이 소설이 어떠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어떠한 것인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비록 끝이 모호하게 처리되긴 하였으나, 이 서사가 지향하는 방향을 찬찬히 살펴보면 틀림없이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계속해서 머릿속에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스쳐지나가고 있다. 『새벽 거리에서』는 'A는 B다.' 식으로 딱 제단하여 정의 내릴 수 있을 만큼 간단한 작품이 아니다. 독자에 따라 그 받아들이는 의미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이 책에서 펼쳐지는 내용이 '어? 이거 재미있는데?' 하며 그저 웃고 넘길 수 있을 정도로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머리 식히려고 이 책을 선택하는 이가 있다면, 책을 모두 읽고 오히려 꺼림칙한 마음만 더 생길 수도 있다는 일종의 경고를 해두고 싶다. 그러나 그러한 목적이 아니라면 『새벽 거리에서』가 좋은 소설, 나아가 특별한 소설로 읽힐 수 있으리라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