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을 안 본 사람은 주의

          인간실격과의 만남-

  인간실격. 나한텐 특별한 책이다. 이 '인간실격'을 접한 것은 애니로가 먼저였다. 전공수업을 할 때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한 교수님이 인간실격 애니메이션을 약 10분 정도 보여준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집에 돌아온 뒤 약 2000원 정도를 결제하여 '인간실격' 4편의 애니메이션이 내 손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에 이끌려 핸드북을 샀다. 지금은 일본 원서를 사려고 대기 중이다.

 

          처음 본 그 순간의 느낌은, 충격 그 자체-

  처음 보고 왜 그렇게 뒤져댔냐고 물으면 나도 모르겠다. 사실 처음 봤을 때 오바타 타케시 생각이 왔다갔다했다. 긴가 민가한 것이다. 그러다 작화가가 오바타 타케시가 맞다는 걸 확인하고 더 열심히 찾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 그랬던 거 같다. 그리고 그걸 본 순간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일본인들이라서 이런 걸 좋아하는가 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실격은 일본의 한 시대를 풍미한 국민문학이다. 지금의 일본 어린 아이들은 아마 인간실격을 교과서에서 볼 것이다. 인간실격이 그렇게 교과서적인 글이냐,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국민문학이 된 이유는 있는 것 같다. 인간실격에는 다자이 오사무의 가슴 사무치는, 처절한 생의 기록이 있다. 다자이 오사무는 자살을 총 5번을 계획한 인간이다. 그리고 마침내 5번 시도 끝에 죽은 인물이다. 어떻게 하면 자살 기도를 5번이나 할 수 있는지 나는 상상도 못하겠다.(아직 큰 벽에 부딪혀본 적이 없어서 그럴까?) 그런 사람의 생의 기록이란 어떤 것인가. 충격, 그 자체다.

          스스로를 역겨워 하는 그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내 요조(이는 다자이 오사무로 거의 기정 사실화 되어있긴 하다)는 스스로를 역겨워 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첫번째 수기 맨 첫문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끄러움 많은 삶'을 살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둘은 사실 좀 다른 뉘앙스로 다가온다. 부끄러움 많은 삶을 산 인간과, 스스로를 역겨워하는 인간.

  일단 요조의 부끄러움이라는 것은 스스로가 인간 실격이라고 생각한 데에서 기인한다. 인간 실격이란 무엇인가. 그는 분명 인간인데, 스스로가 인간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구절이 그러한 그의 심경을 잘 보여준다.

어쨌든 인간들의 눈에 거슬려서는 안 된다.

나는 무(無)다.

바람이다.

허공이다.

  이처럼 그의 처절한 심경을 잘 표현한 구절이 또 있을까. 그는 스스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뿐더러,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 이유인 즉슨 그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과는 너무나도 다른 세상이, 요조에게는 두렵고 또한 이질적인 것이었다.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 따라 살지 못하는 요조는, 스스로가 너무도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또 그는 스스로를 역겨워한다. 그 이유는 자신이 괴물과 같이 보이고, 그래서 그 자신조차 멀리해야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스스로에게도 공포를 느낀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닐까?

  이는 인간실격 애니에서 나온 장면이지만 요조의 그림을 상당히 잘 표현한 것 같다.(애니는 상당히 완성도도 높고 인간실격을 잘 이해한 뒤 구사한 듯 보인다. 또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점도, 일본의 수준 높은 애니메이션 프로듀스 실력을 잘 보여준다.) 이렇게 시꺼멓게 색칠한 요조의 모습은 인간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힘들다. 하지만 요조는 분명하게 말한다. '이건 나예요!'라고 외친다.

  이렇게 시커면 그의 모습을 보자면, 그의 마음 속에 들어찬 마이너스적 감정이 얼마나 그를 갉아먹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갉아먹힌 감정은 그 자신을 압박하는 기제가 되기도 한다.

 

          세상에 순응하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는 순수

  요조는 결국 스스로를 세상에 끼워맞추려 한다. 그리하여 처음엔 '익살꾼'이라는 가면을 쓴다. 인간과 친해지기라도 해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스스로의 목을 조르게 된다. 아버지의 실망한 얼굴에 잠도 이루지 못하고 방을 뛰쳐나가 아버지 수첩에 몰래 '사자탈'이라고 써놓는 그의 강박적 행위를 보아도 알게 될 것이다. 그의 행위는 파탄에 이를 것은 예견된 일일 터다.

  그는 나중엔 일도 받고 결혼도 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와중 만난 마약의 힘은 그에게 가히 매력적인 것이었다. 맞으면 기분이 좋으니, 생에서 기쁨을 맞보지 못한 그에게는 명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마약 자체에 집착하게 되고 스스로가 인간의 끈을 놓았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의 삶은 이미 '인간실격'이 된 이후였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인간실격인가?

  요조는 스스로가 인간실격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요조가 인간실격인가? 물론 마지막에 보이는 그의 모습은 인간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마약에 집착하는 하나의 짐승을 보는 기분이다. 그러나 인간실격을 쭉 읽은 사람은 알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였다는 것을. 요조는 자신이 잘못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살아가는 세상이 비틀린 세상인 것이다.

  결국 그가 마약에 집착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그 이유는 그가 잘못됐기 때문인가 세상이 잘못됐기 때문인가.

  과연 요조는 인간실격인가.

          인간실격, 그리고 문학의 힘

  '인간실격'은 한 순수한 인간의 눈으로 본 세상을 진솔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인간이든 한 번쯤 해볼만한 한 인간의 고뇌를 드러냄으로써, 우리 마음 속의 어두운 부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다자이 오사무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우리의 모습은, 다소 거북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나는 인간실격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문학의 힘을 느꼈다. 소설은 그저 하나의 텍스트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 자체로 힘이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나의 어두운 부분을 밝혀준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준다. 요조는 쓰러졌다. 하지만 우리는 쓰러지지 않는다. 그가 우리의 고뇌까지 함께 짊어지고 가주었기 때문에.

  인간실격, 어두운 문학작품이다. 그러나 인간실격을 본 우리의 앞날은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