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리플리’와 관련된 것을 계속 접하게 되고, 또한 본인도 열광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운명인가보다. 얼마 전에는 알랑 드롱 주연의 《Purple Noon》의 DVD를 우연히 발견해 냉큼 사게 되었다. 그것도 무척 염가에 말이다. 그러고 오늘은 《미스 리플리》 음반을 어쩌다 받아 이렇게 리뷰를 쓰게 되니 기쁘다는 말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미스 리플리》 할 때의 ‘리플리’는 바로 그 리플리를 지칭함이다. 이 드라마가 나오기 전부터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에 대해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The Talented Mr. Ripley』라는 소설이 《태양은 가득히》와 《리플리》라는 영화로 제작되었고, 마침내 2011년 우리나라에도 《미스 리플리》라는 16부작 드라마로 상륙했다. 개인적으로 이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맷 데이먼 주연의 《리플리》다. 맷 데이먼이 분한 리플리라는 인물에 서사가 추가되고, 그만큼 더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스 리플리》가 우리나라에서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무척 기쁘다. 드라마가 끝난 지 반 년 가까이 된 지금도….


  사실 《미스 리플리》는 그다지 인기가 많지는 않았다. 극 초반에는 빠른 진행으로 호평을 얻었으나, 뒤로 갈수록 그 ‘빠른 진행’이 걸림돌이 되었다. 그 빠른 진행에 따른 교차편집도 너무나 잦았고, 플롯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조악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또한 장미리를 제외하고 각 캐릭터들이 갖는 각자의 서사가 부족해 캐릭터성이 별로 드러나지 않았고, 시원찮은 결말로 공감이 힘든 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에도 불구하고 《미스 리플리》라는 드라마가 의미 있는 이유는 ‘학력사회’인 우리나라의 현실에 경종을 울린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흥미 위주로 계속해서 똑같은 폼의 서사를 풀빵 찍어내듯 재생산하는 오늘날에 나름의 메시지를 담으려 했기 때문에 본인은 이 작품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잡설이 길었으니 이쯤에서 각설하고 본론인 음반리뷰에 들어가야겠다. 내 평생 처음으로 음반 리뷰를 작성하는 것이라 어떻게 써야할까 계속 고민했다. 그러나 딱히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라 일단 내 형편없는 글 솜씨로 몇 마디 적어볼까 한다.


  본격적인 리뷰에 들어가기에 앞서 본인이 음반을 리뷰어로 당첨되어 프로모션 버전으로 회사로부터 제공 받았음을 미리 밝히며, 나를 리뷰어로 뽑아주신 사(社)측에 감사드린다. 그러나 본인이 느낀 바를 최대한 솔직히 쓸 것을 약속드린다.


  《미스 리플리》의 음반은 Instrument 버전을 제외하고 총 4곡(같은 곡 제외)으로 구성되어있다. 왜 하필 4곡인가 하면, 《미스 리플리》 네 주인공 각각의 테마곡을 넣은 것이다. 곡은 박유천의 ‘너를 위한 빈자리’, 화요비의 ‘유리’, 미루의 ‘입버릇처럼’, 양영준의 ‘그대가 아니면’이라는 곡이다. 개인적으로 이 음반을 받기 전까지 본인은 박유천과 화요비 밖에는 몰랐다. 본인은 음악을 꽤 많이 듣는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한 앨범에 모르는 아티스트가 두 명이나 있었다니 이제는 본인의 생각을 수정해야 할 듯하다. 어쨌든 네 곡 중 두 곡이 모르는 아티스트가 불러 기대를 가득 품고 들었다.


  본인은 이 앨범을 오디오에 넣고 한 곡 한 곡 계속 반복해 들었다. 물론 다른 일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게 큰 실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디 이 글을 보는 사람은 나와 같은 짓을 하지 않길 바란다. 모든 노래가 그렇기는 하지만, 드라마 OST의 경우에는 드라마의 상황에 맞춰 곡을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혹은 드라마의 분위기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기존의 곡들을 가져온다). 특히나 이 《미스 리플리》의 OST 곡들은 하나 하나가 각 캐릭터들의 테마곡이기 때문에 그런 경향성이 더 강한 듯하다. 때문에 곡을 들을 땐 부디 음반을 펼쳐 가사를 음미하며 들어주기를 바란다. 한 곡 한 곡 가사가 모두 공감이 된다.


  첫 번째 곡, 박유천의 ‘너를 위한 빈자리’는 박유천이 《미스 리플리》에서 분해 직접 연기를 펼친 송유현의 테마곡이다. 잔잔한 음색임에도 애절한 이 곡은 대기업의 후계자였으면서도 지고지순한 연정을 품었던 송유현의 이미지를 절로 떠올릴 수 있다. 사랑하는 여인의 거짓으로 점철된 모습을 목도하고 그동안 미리를 위한 ‘빈자리’를 남겨두었으나 사랑을 이제 ‘그만’하자며 ‘네게 해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 말하는 그의 마음이 어땠는지, 박유천의 미성을 들으며 한껏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두 번째 곡, 화요비의 ‘유리’는 이다해가 분했던 장미리의 테마곡이다. 차분한 음색으로 시작해 점점 애절한 분위기가 고조되는 이 노래는 드라마에서 처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장미리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화요비라는 감정이 풍부한 보컬이 부르는 이 곡은 가사가 아주 절묘하다. 이 곡에서 장미리는 그대가 아는 나는 모두 ‘꾸며진 것’라며, ‘거짓’과 ‘상처’로 감싸져 있다고 말한다. 《미스 리플리》에서의 장미리란 이런 여성이었다. 거짓된 가면을 뒤집어썼지만, 그것은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한 표출이었고 그 트라우마는 곧 그녀의 상처였다. 장미리는 거짓된 가면을 쓰고 살면서 만족한 듯 보였으나, 아마 내면 깊숙한 곳에서 그녀는 늘 불편하고 초조해하는 동시에 실제 자신은 그러지 못하는 슬픔과 울분에 휩싸였을 것이다. 이런 그녀의 마음을 ‘유리’라는, 깨어지면 날카로운 흉기가 되는 하나의 언어로 함축하면서 풀어내는 곡이다.


  세 번째 곡, 미루의 ‘입버릇처럼’은 강혜정이 분했던 문희주의 테마곡이다. 다른 세 곡과는 조금은 분위기가 다른 이 곡은 역시나 문희주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햇살이 따스하지만 우산을 챙겨두세요’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이 곡은 빗소리가 없지만 어쩐지 비오는 날이 떠오르게 한다. 남 몰래 사랑하는 그를 은근히 챙겨주며 서로 사랑하는 상상을 하지만 결국 한 걸음 떨어져 서서 있다는 노랫말을 듣고 있노라면, 장미리를 사랑하는 송유현을 한 발 물러나 지켜봐야 했던 문희주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네 번째 곡은 양영준의 ‘그대가 아니면’으로, 김승우가 분한 장명훈의 테마곡이다. 본인이 앨범을 받고 난 뒤 2주 동안 신나게 무한 반복한 곡으로, 특히 Spanish 버전이 좋았다. 이 곡은 사실 처음에는 가사를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계속 듣다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내를 사랑했지만 더 이상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떠나보내고, 장미리의 유혹에 넘어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됐음에도 결코 그녀의 진실 된 사랑을 받을 수는 없었던 장명훈의 마음이 느껴지는 곡이다. 게다가 그녀의 거짓말을 모두 알았음에도 마지막까지 원망의 소리 없이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장명훈의 애절한 마음까지 잘 표현해냈다. 아내를 떠나보낸 장명훈의 마음에 ‘바람’처럼 스며든 장미리에 잠자던 일상이 흔들리지만, 자신에게 상처가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 이 남자의 사랑법이었다. 들을수록 공감되고 그의 아름다운 사랑법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요즘 몇 번 듣다가 질려버리는 노래가 많았는데 아무래도 이 곡은 꽤나 오래 들을 수 있을 듯하다. 더불어 양영준이라는 아티스트의 이름을 기억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미스 리플리》는 장미리는 인물을 통해 학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우리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한 작품이었으나, 그 안에 또 주인공의 사랑법을 네 가지 색깔로 그려낸 작품이었다. 《미스 리플리》가 끝난 지 벌써 반년이 다 되어가나, 아직 이 드라마에 대한 진통이 남아있다면 이 앨범을 들으면서 다시 한 번 그 느낌을 되새겨 봄은 어떨까. 노래를 듣는 동안 드라마에서 조금은 아쉬웠던 캐릭터들의 서사를 좀 더 뚜렷하게 체감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