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는 혼란한 시대였다. 그러나 난세에는 영웅이 탄생한다고 하였던가. 동양철학이 이만큼 꽃피운 시대 또한 드물 것이다. 이 때 묵자라는 인물도 나왔다.

  묵가에 대해서 우리는 사실 많이 알지 못한다. 이 묵가는 유가와 많이 대별되곤 한다. 유가와 묵가의 핵심이 모두 사랑에 있음에도 그 속성이 매우 다른 까닭이다. 유가에서는 사랑을 하되, 가족·친구와 같이 가까운 자를 먼저 사랑하고 그 마음을 조금씩 널리 하여 다른 사람까지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의 맹점은 '과연 친한 자를 사랑했던 마음과 같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가'하는, 즉 사랑하는 마음이 확장이 가능하냐는 문제점이 있다. 바로 이런 점을 지적하며 나선 것이 묵자였다. 묵자는 공맹이 주장했던 사랑은 위선일 뿐이라며, 보편적 사랑을 외쳤다. 이러한 주장은 『묵공』의 저자 사케미 켄이치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예수의 가르침과 매우 흡사하다.

  많은 사람들은 사실상 묵가하면 이정도만 알고 있다. 실제로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도 『묵공』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설마 그들이 '병법'을 연구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보편애와 병법이라니, 너무도 먼 거리라 느껴졌던 탓이다. 그러나 그들의 싸우는 방식을 보면 '역시 묵가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묵공』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혁리는 묵자들 중에서도 특히 병법을 연구하는 이인데, 이들의 병법이란 참으로 독특하다. 묵가에서는 오로지 방어하는 방법만을 연구한다. 또한 대국이 아니라 대국의 침략을 받는 약소국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전투에 참여한다. 남에게 해를 입히기 위한 병법이 아니라, 해를 입히려는 이들로부터 약한 자를 구하기 위한 병법인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혁리는 "나는 공격하는 방법을 모르오."라고 말하기도 한다.

  전쟁이 빈번한 혼란한 시대에, 만약 묵가가 보편애만 외치고 현실을 외면했다면 아마 그 시대에 흥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를 사랑하라는 철학적인 구호만 외친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는 병법이라는 실제적인 방법으로 현실에서 모두를 품는 방법을 연구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묵공』을 보기 이전에는 묵가에 대한 본인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보편애라는 것은 이상에만 있을 뿐, 실제적으로는 실행할 수 없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묵공』을 보면서 본인은 이러한 평가를 물릴 수밖에 없었다. 병법이라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묵가들은 그들의 이상을 현실에 펼쳐냈다. 사케미 켄이치는 그러한 묵가에 대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독자에게 전해줌으로써 우리에게 묵가 철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하도록 하였다. 물론 그 저변에는 작가 본인의 묵가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그러한 이해를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기회에 사케미 켄이치라는 좋은 작가를 접하게 되어서 기뻤다. 내가 『묵공』이라는 소설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결코 독자에게 판단을 강요하지 않는 작가의 객관적 시선 덕분이었다. 감정의 과잉이 없는 이 소설은, 심지어 주인공이 죽는 순간에도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혁리가 죽는 절정의 순간마저 '음…….'이라는 짧은 말로 처리하고, 그를 쏘아 죽인 이의 '슬픔과 원망' 섞인 눈을 보여줌으로써 작자는 "과연 누가 잘못된 것인지 너희가 알아서 판단하라"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보면서 진정한 義(의)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그만큼 이 소설은 다만 묵가의 병법을 표면적으로 짚어내는 방식을 취한 것이 아니라 그 병법과 함께 묵가의 철학을 충분히 깊이있게 파고 들고 있다. 이 소설은 서사가 없는 병법서와 인문학 텍스트를 서사문학으로 변용한 텍스트적 가치도 있을 뿐더러 인문학적 가치 역시 충분하다. 앞으로 이 소설을 볼 이들 역시 이 『묵공』을 보고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경지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