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얼마 전에 우리 나라에 『새벽거리에서』라는 작품을 낸 작가다. 많은 그의 저서들이 영화화되기도 하였고, 이미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이이기도 하다. 사실 본인은 이 작가의 이름 정도만 들어봤지 그의 책을 읽은 건 최근이다.(아니, 어쩌면 좀 됐을지도 모른다.) 처음 이 작가를 만나게 된 책은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라는 책으로, 지금 리뷰를 쓰고 있는 『악의』와 마찬가지로 '가가형사 시리즈'에 속한다. 그것도 내가 직접 찾아서 읽은 게 아니다. 책을 선물해줘 내게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를 인식시켜준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악의』. 방금 다 읽었다. 15분 전이니 정말 방금이다. 내가 지금 이렇게 리뷰를 쓰고 있는 이유는, 이 소설이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또한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얼른 써내려가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나의 기억은 날조를 하는 데 특히나 탁월한 능력이 있으니 말이다.

  『악의』. 나는 이 소설을 다 읽고 소름이 끼쳤다. 왜냐.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소설에서 던지는 문제가, 진실로 '문제적'이기 때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악의』라는 소설을 통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악의'에 관한 것이다.

  우리 마음 속에 '미음', '증오'와 같은 것이 왜 생겨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이미 고대에서부터 수많은 철학적 고찰이 나왔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의도 그 중 하나다. '성악설', '성선설', '성무선악설', '인간 백지설'…. 개인적으로는 이 중에서 본인이 믿고 있는 것은 '성악설'이다. 앞으로 글쟁이를 희망하는 본인으로서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견해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아무래도 나의 마음이 그쪽으로 기우는 것을 어찌 하랴. 여기서 본인의 생각이야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이쯤 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어찌되었든 그만큼 많은 논의가 시도되었음에도 사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신이 아닌 이상에야 인간이 간악한 마음을 왜 품는지 누가 알 수 있으랴. 그야 말로 그것은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본능인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맹목적인 것이기에 때로는 더 무서운 칼날이 될 수도 있다. 인간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제노사이드로 기록되는 홀로코스트 역시 그 일종인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홀로코스트엔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었다. 가장 이성적이라 자처하는 민족이 끔찍한 일을 자행한 그 역사적 사건에 갖다붙인 이유가 있었다면 다만 유대인이 그저 '싫었다'. 그 뿐일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일들은 크고 작게 우리 주변에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그만큼 '악의'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근원적'이면서도, 또한 '문제적'인 감정이다.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가 추리소설이라는 형태를 빌려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악의'에 대한 논의를 이끌고 온 것은 매우 흥미롭다. 추리소설를 읽는 데 있어서 대개는 1회성에서 끝나고 말지만, 단언하건대 이 『악의』라는 작품만큼은 그렇게 가볍게 넘길 소설은 아닌 듯싶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까발리는 진실은 너무나도 불편하다. 아직 이 소설을 다 읽지 않은 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소설의 내용을 조금만 인용해야할 것 같다.

  그때 왕따의 주모자였던 학생이 했던 말이 있습니다.

  "아무튼 마음에 안 든다, 아무튼 마음에 안 든다…."

  ● 씨, 당신의 심경도 그 학생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마음속에는 당신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 씨에 대한 깊디깊은 악의가 잠재되어 있었고, 그것이 이번 사건을 일으키게 한 동기가 아니었을까요?

  예의상 본문에 나오는 이름들은 ●와 ◎로 표기했다. 위 인용은 어쩌면 이 사건을 푸는 핵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찌됐든 이는 이 소설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임은 틀림없다.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생각한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악의』에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진실, 그것은 '악의엔 아무런 이유가 없다'라는 것이다.

  …여기에 굳이 긴 말을 덧붙이고 싶진 않다. 이러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통찰력 덕분에 그의 작품 세계를 섣불리 '추리소설'이라고만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굳이 『악의』에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심지어 아주 짧은 엽편들에서도 그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낄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마냥 즐겁게 읽을 수 있을 수만은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아마 아주 불친절하게 쓴 나의 리뷰 때문에 대체 왜 '악의엔 아무런 이유가 없다'라고 지적하는 것의 의미있는지 와닿지 않는 이도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이들을 위해 나는 다만 짧게 한 줄만 덧붙이고자 한다.

  본래 진실은 너무나도 불편하기에 피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