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감독 샐리포터가 직접 주연을 맡고 연출을 한 1997년도 작품 [탱고레슨]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어느 날 우연히 파블로 베론이라는 무용가의 탱고 공연을 본

여주인공 샐리는 그에게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탱고를 선택하게 되었나요?"

"내가 선택한 게 아니에요. 탱고가 날 선택했어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일상의 무료함을 견디지 못한 주인공들이 삶의 새로운 즐거움과 행복을 찾게 되는

방법으로 탱고를 배우게 되는 장면이 많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탱고의 매력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탱고가 춤이라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그리고 부에노스 아이레스 사람들의 애환이

닮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클래식 음반 전문 매장인 <풍월당>의 주인이자 정신과 전문의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는 박종호라는 분의 이름이 익숙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클래식과 오페라에 대한 조예가 깊고

그동안 써온 관련 서적들이 많은 이들에게 읽혀졌기 때문이다. 나의 서재에도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박종호에게 오페라를 묻다>가 꽂혀 있었고, 그 책들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이 분이 예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낀다는 바로 그것이었다.

 

 

 

이번에 나온 이 책에는 그가 탱고의 고향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여행하며 보고 듣고 체험한 모든

것들이 담겨져 있었다. 그가 탱고에 대한 책을 쓰려고 마음먹은 이유는 최근 탱고를 월드뮤직, 제3세계 음악에서

클래식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과정 속에서 국내에 탱고 관련 서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직접 탱고의 고향을 방문해서 온 몸의 감각으로 탱고를 느끼려고 그 곳으로 떠난 것이다.

굳이 탱고를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탱고의 고향인 그 곳을 기행하면서 그것을 기록하는 것 자체가 탱고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은 부분은 바로 지구에서 최초로 탱고가 시작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산 텔모 지역을

걷는 부분이었다. 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에서 장국영이 정처없이 거닐었던 이 곳은 말 그대로 밤에 가야지

진면목을 알 수 있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예약을 하고 들어간 탱고 클럽에서 저자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음식을 먹고, 음악을 들으며 공연을 본다. 탱고 클럽을 예약한 손님은 호텔까지 에스코트를 해 주지만, 그런 시간마저

그렇게 보내는 것이 아까웠던 저자는 홀로 그 밤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그가 그 길을 거닐며서 느낀 감정은

<해피 투게더>의 장국영이 느꼈던 바로 그 고독감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렇게 저자는 마치 처음부터 그 곳에서 살았던 부에노스 아이레스 사람들처럼 그 도시의 밤 거리를 걷고 음악에 흠뻑

취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가장 작은 탱고 바인 바르 수르, 이민자들이 처음 정착한 라 보카까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곳곳을 누비며 그의 탱고기행은 계속되었다.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면 두 가지 생각이 들 것이다.

첫 번째로 저자와 함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여행한 기분이 들 것이다. 책 속에 담겨져 있는 생생한

사진들과 저자의 설명을 읽어 내려가면 마치 그 곳에 내가 함께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것은 저자가 경험했던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은 자발적인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도 할 것이다. 이 책은 탱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것 뿐만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기행 에세이로서 충분한 매력을 발산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당장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과 떨어져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 연인을 기다리고 만나고 싶어하는 그런 마음과 비슷하다. 이제 나에게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멀리 떨어져 있는 잘 모르는 도시가 아니라 너무나 익숙해서 한번은 꼭 가보고 싶은 그런 목적지가 되어 버렸다.

 

 

그에게 있어서 탱고는 춤이자, 음악이며, 그리고 詩語이다.

그리고 이제 서서히 탱고의 매력에 나 자신도 빠져들게 되었다.

 

	리드미컬한 음악 속에서 격동적인 춤을 추던 무용수들은 어느 시점 일순간에 정지 동작으로 딱 멈추어 서게 된다. 이것은 춤추는 동안의 움직임보다 더욱 중요한 순간이다. 즉, 탱고는 움직임과 멈춤의 반복인 것이다. 우리가 사진에서 흔히 보는 탱고의 모습들도 바로 이 정지 순간에 찍은 것들이다. 사실 움직니는 동안은 제대로 사진 찍기가 힘들다. 그러므로 움직이는 동안의 춤사위도 중요하지만, 멈춤 동작에서 그려지는 무용수들의 선, 그 두 몸이 이루는 선이 탱고의 수준을 좌우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 아름다운 멈춤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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