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인간은 욕망에 무기력하다고 했다. 나 또한 인간이기에 욕망에 무기력하다.

우습지만 특히나 무기력한 분야는 식욕이다.

주인공인 한석호는 세속적인 욕망에 무기력한 인간이다. 그는 인정받기 위해, 오로지 성공하기 위해

자신을 철저하게 관리한다. 그 뒤로 추악한 얼굴을 숨기고서.

성공으로 향하는 일방통행 탄탄대로를 여유롭게 달리며

마침내 그가 바라는 모든 것이 그의 손아귀에 들어오려는 순간,

 

You can't get always what you want.

항상 원하는 것을 가질 순 없지. 그럴 순 없어.

 

롤링스톤스의 노래를 복선으로 그는 움켜쥔 모든 것을 하나씩 위협받게 된다.

나를 위협하는 이 악마는 도대체 누구인가. 석호는 짐작가는 곳이 너무 많다.

손에 쥔 것을 하나씩 내려놓으며, 포기해가며 그가 결국 가장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일련의 과정.

복수의 탄생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실마리를 풀어가는 가운데 삶에 대해 되돌아보게 한다.

나는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욕망이 얼만큼의 가치를 지니는가.

일상의 소중함을 되돌아보고, 어리석은 욕망을 반성케 한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주목했던 건 주인공 석호를 향한 여인들의 사랑이었다.

연이는 석호 때문에 죽는다. 석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가질 수 없어서.

아직 어리지만 나도 누군가를 진심을 다해, 온 몸을 다해 사랑한 적이 있었더랬다.

하지만 나는 연이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람이 자기 자신과 맞바꿀 정도로 타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

불가피한 상황에 대신 죽어주는 경우는 있을 수 있겠으나 다른 선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 목숨을 내던진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스스로를 가장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가장 사랑하기보다는 자신의 건강을 먼저

챙기고 자신을 소중히 해주길 바란다. 그래야 내가 그를 오래 행복하게 사랑할 수 있을테니.

 

이 책의 중심에는 인간의 욕망이 있지만, 전체에는 사랑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석호를 둘러싼 여인들은 석호를 사랑한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사랑에서 시작해 사랑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누군가는 사랑하고, 누군가는 사랑받고, 누군가는 사랑받지 못한다.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듯 긴박함이 넘친다.

엄청난 흡입력과 생생함에 잠을 자기 전 읽으면 책의 내용이 꿈에서 계속되었고

깨어있을 때는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극적이고 과감한 요소가 많아 흥미를 자극하고, 이야기가 정체되는 구간없이

숨막히고 긴박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쉽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오로지 읽는 쾌감만을 위해 쓴 소설이라는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래서 재미있었지만

또한 그 때문에 깊이는 부족하고 조금은 진부하지 않았나 싶다. 사실 나는 범인의 정체까지는 예상했으나

결말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으므로 꽤 재미있게 읽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보다 추리력이 뛰어난 독자들에게는

조금 식상하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