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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쓰기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내 스스로가 경험과 지식이 일천해서, 나같은 놈이 글을 쓰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젊은 시절 공부한 것을 글로 풀어내는 시험을 볼 때 정말 너무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쓴 글을 보고 있자면 초등학생이 쓴 일기를 보고 잇는 것 같아 정말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글로 풀어내는 시험(논술)에서 좌절하면서 글쓰기를 좀 무서워하게 되었다.

그러다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라는 위안을 얻는 계기가 있었다.

회사 직원들의 승급연수에 출제자 겸 채점자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대략 십여명이 일주일 정도 한적하고 연락이 차단된 곳에서 문제를 출제했다. 그리고 다시 회사로 돌아와 직원들이 시험을 다 보기를 기다려 저녁시간부터 채점에 들어갔다. 객관식을 먼저 다 채점한 후에 논술문제를 채점하기 시작했다. 논술문제는 직원들이 시험준비에 어려움이 있는 것을 감안해 대략 2~3배수의 논술 주제를 주고, 그 중에서 출제했다. 직원들 대부분은 2~3배수의 논술 주제에 대해 서로 분담해서 모범답안을 만들고 준비를 철저히 했기 때문에 다들 어느 정도 수준으로 답안지를 작성했다. 비슷비슷하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는 약술문제를 채점하게 되었다. 약술은 직원들에게 어떤 사전 출제정보도 주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대부분의 직원들이 약술을 잘 적어내지 못했다. 아예 빈칸으로 남겨둔 직원이 있는가 하면, 머리에 남아있는 기억들을 쥐어짜내 글을 쓰긴 했는데, 전혀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써낸 글도 있었다. 나는 꽤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직원들의 이런 약술답안지를 채점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상당한 위안과 힐링을 얻게 되었다.

이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뜻하지 않게 글을 좀 써야하는 팀에 발령이 났다. 애초에 글솜씨가 없는 내가 글을 써야하는 팀에 들어가게 되니 정말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월급받아 먹고사는 직장인이 어쩌겠는가? 일단 해당 팀에 경험이 있던 다른 직원들에게 예전의 자료들을 수소문해서 모아놓고 일자별로 정리해 그동안 어떤 논조들로 글을 썼는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뒤늦게 바쁜 직장생활을 핑계로 손을 놓고 있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무엇이라도 좀 집어넣어야 나오는게 있을 것이라는 심정에서였다.

다행히 글쓰기는 대부분 업무에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에 글의 재료가 되는 이야깃거리는 풍부했다. 그런 주제들을 잘 구성하고, 예전 글들을 참고해 비슷한 논조와 형식으로 풀어내면서 그 때 그 때 위기의 순간들을 모면할 수 있었다.

여전히 나에게 글쓰기는 괴로운 과정이다. 서평을 주로 올리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시간을 내 짬짬이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과정은 나에게 여전히 힘들다. 서평이라고 써놓은 글을 나중에 읽어 보면 여전히 맘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출근전 한 두시간만에 쓴 글이니 어쩔 수 없지 하며 위안을 삼을 뿐이다.

이번에 <대통령의 글쓰기>란 책을 읽으면서김대중대통령, 노무현대통령의 연설문을 썼던 저자의 글쓰기에 관한 생각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글을 쓰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무엇일까? 글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의사전달매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컨텐츠이다.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무 내용이 없는 속 빈 강정과 같은 글이라면, 그 글을 읽는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도 딱 하나다. 욕심 때문이다. 잘 쓰려는 욕심이 글쓰기를 어렵게 만든다....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멋있게, 있어 보이게 쓸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는 것은 부질없는 욕심이다. 그러나 무엇을 쓰느냐에 대한 고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글의 중심은 내용이다.

페이지 : 13, 16

많은 글쓰기에 관련한 책들이 말하듯 글의 내용이 충실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글 재료가 많아야 한다. 100권의 책을 읽어야 1권의 책을 써낼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많은 경험과 재료가 있을 때 글이 쉽게 써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할 때, 바로 그 때 쓰는 글들은 내용이 풍부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 줄 쓰고 나면 더 이상 쓸 말이 없다? 자료 부족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것만으로는 글을 쓸 수 없다. 자료 확보가 필수적이다. 소설가 김훈은 <글쓰기의 최소 원칙>이란 책에서 좋은 글의 조건을 이렇게 말했다. “정보와 사실이 많고, 그것이 정확해야 되며, 그 배열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여기서 절반이 자료 찾기와 관련이 있다. 많고 정확한 정보와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페이지 : 75

그렇다면 이야기할 소재가 많지 않다면 글을 쓰지 말아야 할까? 말이나 글도 자주 하는 사람이 늘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할 이야기가 많지 않을때에도 비록 짧게 글을 쓰더라도 일단 써내려가 보는게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글의 감동은 기교에서 나오지 않는다. 애초부터 글쟁이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쓰고 싶은 내용에 진심을 담아 쓰면 된다. 맞춤법만 맞게 쓸 수 있거든 거침없이 써 내려가자. 우리는 시인도, 소설가도 아니지 않은가

페이지 : 17

내 자신도 글을 쓰기 위한 소재가 별로 없을 때가 많다. 그런데 저자는 글을 쓰기 위해서 생각을 많이 하라고 한다. 많은 생각들 자체가 글을 쓰기 위한 하나의 재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글을 잘 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특히 자신이 써야 할 글이 정해지면 그 글의 주제에 관해 당분간을 흠뻑 빠져 있어야 한다. 이처럼 빠져있는 기간이 길수록 좋은 글이 나올 확률이 높다.

페이지 : 28

창조적 아이디어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영감이나 직관과는 다르다. 죽을 힘을 다해 몰입해야 나오는 것이 창조력이다. 열정과 고민의 산물이며, 뭔가를 개선하고 바꿔보려는 문제의식의 결과물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집중하고 몰입해야 한다. 절박해야 한다.

페이지 : 42

미치면(狂) 미치는(及) 법이다. 많이 읽고, 많이 써보지 않아도 죽을힘을 다해 머릴ㄹ 짜내면 누구나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목숨 걸면 누구나 잘 쓸 수 있다. 글 쓰는데 왜 목숨까지 걸어야 하느냐고? 그래서 못 쓰는 것이다.

페이지 : 43~44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면서도, 절박함이 없었던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글이다. 저자가 말했듯이 반드시 써내야 하는 절박함이 있으면 어떻게든 또 해내게 되는게 사람일인 듯하다. 글을 잘 쓰는 분들이 글을 그야말로 가열차게 쓰게 되는 동력중에 하나가 마감기한이라고 한다. 글쓰기 평민인 우리들도 마음 속에 마감기한 하나 정해놓고 그 안에 글을 써볼려고 생각하고 고민해보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은 머리로 쓰는게 아니라 엉덩이로 쓰는 것입니다.

페이지 : 51

글을 쓰는데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다. 내가 글쓰기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는지 뒤돌아볼 일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서 글쓰기 결과물이 좋기 바라는 것은 욕심일 뿐이다.

저자는 긴장의 연속이었던 8년의 청와대 생활로 인해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자신의 정신을 집중하고, 신경을 썼기 때문일 것이다. 글을 기본적으로 잘 쓰는 사람도 이처럼 긴장하고 온 신경을 집중하여 글을 쓰는데, 과연 우리는 그만큼 신경과 정신을 집중하는 지 생각하면 부끄러울 따름이다.

못을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맞춰 지은 집이 좋은 집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접속사를 가급적 쓰지 않는 버릇을 들이자.

페이지 : 107

저자는 독자와 청중은 글의 맥락과 전체 흐름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접속사가 필요없다고 말한다. 내 자신도 글을 쓰다보면 어느새 문장마다 ‘그러나’, ‘그런데’가 많이 붙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글 자체가 논리적인 흐름만 있다면 저자가 말했듯이 접속사가 굳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다. 접속사가 많지 않은 글이 간명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일반론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지면과 시간 낭비다.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선입견에서 벗어나자. 같은 사안도 낯선 눈으로 보면 새롭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 말대로 ‘참된 발견은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페이지 : 119

자기 인생에서 길어 올린 자신만의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콘텐츠는 어떻게 만드는가. 나는 인생 경험이 보잘것없는데 어떻게 하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독서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면? 방법은 있다.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이다. 훔치는 방법은 관찰이다. 세심하고 용의주도한 관찰이다.

페이지 : 220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관찰과 호기심이 중요하다. 똑같은 사물을 보면서도 그것의 숨겨진 다른 면을 보거나, 다른 사람은 하지 않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글을 보다 창조적으로 쓸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다.

“모든 초고는 걸레다.” 헤밍웨이의 말이다. 그는 <노인과 바다>를 400여차례 고쳐 썼다. 두 대통령은 눈이 높았다. 한마디로 고수다. 고수일수록 퇴고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실제도 쓰는 시간보다 고치는 시간이 더 길었다. 초고가 완성되면 발제 정도가 끝난 것이다. 그때부터가 본격적인 글쓰기 시작이다. 고치는 것은 마감 시한도 없다. 연설하는 그 시각이 마감 시각이다. 그때까지는 계속 고친다.

페이지 : 138~139

저자가 말하듯 글을 계속 다듬는 퇴고의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내 자신이 시간 부족으로 한번 쓴 글은 잘 쳐다보지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내가 올린 글에 오자나 탈자가 있지 않나, 논리적으로 이상하지 않나 하고 한 번씩은 더 보게 된다. 책을 만들어내는 사람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틈날 때마다 자신이 쓴 글을 보고 무엇이 부족한지 생각하는 것도 글을 잘 쓰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가 출판사에 원고를 보낸 후 반응이 궁금해서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

이에 대해 출판사에서 답을 보내왔다.

“!”

그 결과로 <레미제라블>이 탄생했다.

페이지 : 160

글을 쓸 때는 더 넣을 것이 없나를 고민하기 보다는 더 뺄 것이 없는지를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글이 좋은 글이다. 군살은 사람에게만 좋지 않은게 아니다.

페이지 : 163

글을 간결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다. 자신의 생각을 그냥 나열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것을 얼마나 핵심적으로 요약해서 전달할 수 있느냐가 상대방을 더 잘 이해시킬 수 있느냐를 좌우시킨다.

김대중 대통령이 어렵고 힘들 때면 글을 썼다는 이야기는 인상깊다.

“나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백지를 한 장 갖다 놓습니다. 그리고 그걸 반으로 접습니다. 한쪽에는 어려운 일을 적습니다. 다른 한 쪽에는 다행이고 감사한 일을 적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번도 한쪽만 채워지는 적은 없었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반드시 좋은 일도 있었습니다. 사는 게 그런 것 같습니다.”

페이지 : 311~312

저자가 말하듯 김대중 대통령에게 글쓰기란 자기 치유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 책 <대통령의 글쓰기>는 어쩔 수 없이 글을 써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자신의 생각을 글로써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분들에게도 유용할 수 있다.

덧붙여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생각을 글에 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리고, 두 분 대통령이 글쓰기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그런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도 글쓰기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도 부족하고, 아직도 글을 쓰는게 진이 다 빠질 정도로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가 많지만, 나만 그런 것은 아니라는 위안을 삼으면서 일단 무엇이라도 글쓰기를 시작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쓰자. 초등학생의 글처럼 보일지라도...죽이 되든 밥이 되든...

글쓰기는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지 않은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 그래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대통령의글쓰기, 강원국,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