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교수는 통섭학자로 유명하다. 몇 년전 학문의 통합, 통섭, 융·복합이 유행했었던 기억이 있는데 저자는 지금도 학문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통합된 학문의 세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재천 교수가 쓴 이 책 <과학자의 서재>는 그가 살아온 과정들을 기록한 에세이집이다. 애초에 청소년들을 책의 독자로 설정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책은 상당히 쉽고 간결하게 써져 있어 2~3시간만에 300페이지가 되는 분량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애초에 이 책의 제목만을 보고는 최재천 교수의 서재에 꽂혀있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책들을 단순히 그 내용과 함께 소개하는 책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저자도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최재천이라는 한 과학자의 정신과 영혼이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를 이야기해주는 듯 책이다.

 

저자는 그가 고백하듯이 ‘통섭적 인생’을 살아왔다.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살다가 미술도 좀 하다가 나중에는 자연과학자가 되었다. 그런데 자연과학자이면서 인문사회과학 책들까지 읽고 서평도 쓰고, 결국 넓은 의미의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의 책도 저술했다.
페이지 : 283

 

 

그가 들려주는 그의 성장기는 상당히 흥미롭다.

 

그는 강릉의 자연속에서 자라다가 여덟살이 되는 해 서울 영등포의 외삼촌의 집으로 더부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서울생활에 적응을 하면서도 강릉의 자연에서 뛰어 놀던 때를 몹시 그리워해서 방학때만 되면 강릉으로 내려가, 자연 속에서 지내곤 했다.

 

서울에서도 전학문제도 학교를 가지 않던 2달간 그는 남산의 개울가를 누비며 가재잡기를 하곤 했다고 한다.

 

그는 미국 유학시절 지금의 아내와 어릴적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가재 잡고 놀던 그때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지금도 어제 일처럼 기억이 생생할 정도야”   내 말을 듣고 있던 아내가 갑자기 “아!”하고 탄성을 내지르더니 웃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했다. “맞아, 학교 파하고 집에 가다 보면 개울에 들어가 노는 애들이 있었어. 그 더러운 개울에서 꾀죄죄한 몰골로 뭐가 그리 신 나는지...볼 때마다 참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그중 한 사람이었겠네?”   .....개울에서 가재 잡느라 정신없이 놀던 소년과 그 모습을 보며 이상하고 더러운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던 소녀가 이십 년 가까운 세월 뒤에 결혼을 했으니, 인연이란 참 오묘한 것이다.
페이지 : 28~29

 

그가 초등학교때 수학시험을 상당히 많이 틀려, 틀린 개수대로 선생님께 맞은 이야기도 흥미롭다.

 

맞는 요령이 없었던 그는 피가 고여 살갗이 처질 정도로 엉덩이에 멍이 들어버렸다. 이 얘기를 전해 들은 당시 육군 본부에서 근무하시던 그의 아버지는 다음날 담임 선생님께 항의하기 위해 권총을 찬 채로 학교로 찾아갔다고 한다.

 

	“우리 아이는 내가 압니다. 이렇게 맞을 아이가 아닙니다. 어떻게 선생님이라는 분이 학생을 그 지경이 되도록 때린단 말입니까?” .... “재천이만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기준으로 맞았습니다. 재천이가 문제를 틀린 것을 어떻게 합니까? 재천이만 봐줘야 합니까?” ... 아무튼 나에겐 별다른 위로의 말도 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학교까지 찾아오신 것도 놀라운 일이었고, 서슬이 퍼런 아버지 앞에서 기죽지 않고 끝까지 당당하시던 선생님의 태도도 무척 놀랍고 감동적이었다.
페이지 : 32~33

 

저자는 한때 대학 시험에 떨어지고, 좌절감에 음악다방을 전전하고, 당구장이나 드나들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가 당구장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올 때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를 마주쳤다. 친구는 서울공대 건축과 학생으로, 다른 한명은 재수생이라는 처지로 마주치게 된 것이다.

 

저자는 반가운 마음에 웃으며 손을 내밀었는데, 그 친구가 다짜고짜 따귀를 후려갈겼다고 한다.

 

	“너 왜 이러냐?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그리고는 찬바람을 쌩하니 일으키며 올라가 버렸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계단을 내려와 다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다방에서 나올 때 나는 생각이 바뀌어 있었다. ‘도망친다고 도망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니, 이것은 단순한 도망이 아니라 나를 망치는 길로 달리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공부를 하자.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지나가야만 하는 길이 있다면 지나가야 한다.’
페이지 : 134

 

그가 유학을 결정했을 때 아버지의 반대가 컸지만 결국 아버지의 허락을 얻어내고야 말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당시 다니고 있던 포항제철을 그만두고 제철판매회사로 옮겼는데 그 이유가 이제 곧 유학 떠나는 아들과 조금이나마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때문이었다.

 

저자가 전해들은 아버지가 사표를 내며 당시 박태준 회장에게 한 말은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저희 집 큰아들이 유학을 가겠다고 하는데 사실 그놈하고 보낸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돌이켜보니 어렸을 때는 전방으로 주로 다녔고 또 나중에는 여기 포항제철에 근무하는 탓에 자식들과 늘 떨어져 살았지요. 이놈이 유학을 간다는데, 말로는 공부 끝내고 빨리 온다고 그러지만 그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녀석이 미국에 가기 전까지 얼마간이라도 살을 맞대며 살다가 보내고 싶습니다.”
페이지 : 193

 

 

저자는 유학가기 전 6개월을 그 어느때보다 더 가깝게 아버지와 보내게 된다.

 

유학을 떠나는 날, 친구들이 “저게 죽으러 가는거지, 어디 유학가는 사람이야”라고 의아해할 정도로 그는 아버지 생각에 대성통곡을 했다.

 

	뒤늦게 당신의 깊은 자식사랑을 알게 됐고, 함께 지낸 시간이 너무나 짧다는 아쉬움에 가슴이 무너졌다. 자식도 아내도 뒷전이고 평생 일밖에 모르시는 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식과 함께 하겠다고 회사를 그만두셨다는 사실이, 막상 그 품을 떠나야 하는 순간이 되자 나를 그토록 애달프게 만든 것이었다.
페이지 : 194

 

그가 유학시절 만난 <이기적 유전자>는 그의 인생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세상을 살면서 한 권의 책 때문에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경험을 하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대부분은 아마 단 한 번도 그런 짜릿한 경험을 못하고 생을 마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면서 그런 엄청난 경험을 했다. 그 책을 읽을 때만 해도 나의 영어 실력이 그렇게 출중하지 못했다. 미국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니까. 그럼에도 그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점심때부터 읽기 시작한 것이 다 읽고 난 뒤에 눈을 들어보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밤을 새운 것이다.
페이지 : 207

 

<이기적 유전자>가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긴 하지만, 어렵기도 한 책이라는 기억만이 남아있는 내가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상당히 부끄럽기도 했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는 거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60년 가까이 살아온 저자가 말하는 인생도 상당히 인상 깊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행운도 역시 공짜가 아니다. 지금까지 60년 가깝게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가 행운은 무작위로 방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준비가 된 곳에만 방문한다. 현실의 눈으로 보면 이룰 수 없는 꿈이나 목표일지라도 조용조용 준비하면서 차분하게 기다리면, 언젠가는 행운의 여신이 악수를 청하게 되어 있다. 단지 그 여신이 비행기를 타고 올 수도 있고 KTX를 타고 올 수도 있고 정류장마다 서야 하는 완행버스를 타고 올수도 있기에 시차가 날 뿐이다.
페이지 : 257

 

저자가 아들이 대학을 가기 전까지 1,000권 넘게 독서를 하도록 습관을 길러준 방법은 나도 상당히 공감하는 방법이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아이들을 귀찮게 하지 말고 부모들이 책을 읽으면 된다. 우리 부부가 가장 잘한 교육이 바로 그것인 것 같다.
페이지 : 265

 

어떤 일이든 자식이든, 아랫 사람이든 따라주길 바랄 때 자신이 먼저 솔선수범할 필요가 있다. 자신은 꿈쩍도 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이것저것 요구를 하면 그 요구가 받아들여질 확률은 적다.

 

이 책은 저자가 어떻게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내가 인상 깊은 부분만 소개해서 그렇지, 그가 학창시절을 보내고, 힘든 유학생활을 하면서 인정받는 교수로 성장하는 책의 내용들은 그야말로 책을 손에서 뗄 수 없게 만들 정도로 흥미롭고 자극이 되었다.

 

나중에 아들이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되면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나름 성공한 사람들이 어떻게 인생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아! 이래서 그가 성공할 수 밖에 없었구나 하고 수긍이 되고, 이내 그처럼 노력하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저자처럼 치열하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뒤돌아보았을 때 후회는 남지 않도록 삶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어차피 한번 살아내는 것 아니겠는가? 때로는 실수하고 때로는 넘어지더라도 한번 뿐인 인생 즐기며,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재미있게 살아야겠다.

최재천, 통섭, 과학자의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