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 이 책은 아유슈비츠 수용소 등 죽음이 지배했던 집단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는가를 다룬 책이다.

 

	내가 다루려고 하는 것은 장기간 계속되는 위기 속에서의 인간의 생존 양식이다. 또한 정신과 육체에 극단적인 손상을 입고도 살아남은, 미치지 않은, 인간성을 잃어버리지 않은, 의연한 인간의 모습이다. 이 책에서 파헤치려는 대상은 집단 강제수용소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속의 인간, 그 곳을 체험하고 그 만행을 견디어 내고 세계에 증언하기 위해 돌아온 사람이다.
페이지 : 5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인간성이 말살된 집단 수용소에서 오히려 인간성을 발휘하고, 생존을 위해 조직적으로 협동을 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는지를 각종 생존자들의 인터뷰 등을 통해 보여준다.

 

저자는 생존자를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생존자란 인간으로서의 행동방식을 영위하려는 의지를 잃지 않은 채 공포와 절망을 견디어 낸 사람, 즉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살아남은 사람을 말한다.
페이지 : 30

	생존자는 단순히 희생될 것을 단호히 거부하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투쟁을 전개하며, 죽음과는 어떤 형태로든지 타협하지 않는다. 즉 그는 자신에게 부과된 상황의 논리에 순종하지 않으려 한다.
페이지 : 33

 

 

생존자는 영웅일까? 생존자는 영웅과 다른 점이 다른 사람을 구해주거나 영웅적인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남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헤밍웨이가 고전적 비극의 영웅을 정의한 바대로라면 생존자도 영웅과 다를 바 없다.

 

	헤밍웨이는 고전적 비극의 영웅을 “파괴되기는 하지만 패배하지는 않는” 인간상으로 표현한 바 있다. 영웅은 최후의 순간까지 꿋꿋하게 서 있을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생존자 역시 굳세고 의연하게 버티어 선다. 그러나 생을 선택한 이들에게 있어서 죽는다는 것은 패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페이지 : 36

 

 

저자는 인간성에 대한 존중이 존재하지 않는 집단수용소에서 가장 큰 저항의 행동은 살아남는 것이라고 말한다.

 

	누명 쓴 사람에게 있어서 현명한 행동은 살아남는 것이며, 끈질기게 버티고 서서 단순한 희생물이 되거나 죽어 사라지기를 거부함으로써, 정부로 하여금 자신을 재판에 회부하여 그 진상을 드러내도록 만드는 것이다.
페이지 : 41

 

혹자는 생존자들이 그렇지 못했던 자들에 대해 죄의식을 느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가해자들이 아닌 피해자에게 죄의식을 느끼게 함으로써 본질을 흐리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살아남았다는 데에는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수행해야 할 임무를 갖게 되었다는 느낌이다. 그것을 생존자의 임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아무튼 그것은 나의 초자아에게 맡겨진 일이라기보다는 나의 자아가 해야 할 과업이다. 이러한 임무는 34년전, 내가 살아남으리라는 아무런 보장도 없었던 때, 부켄발트 강제수용소에서 포로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내 머리를 꽉 메우고 있었다.
페이지 : 84

 

 

한 생존자의 말처럼, 집단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집단 수용소의 비인간성, 잔인함 등에 대해 증언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한다.

 

	수용소 생활을 기록해 둔다는 사명, 자기보존의 본능 깊숙한 곳으로부터 이끌어져 나오는 그 사명이 내가 그 시절의 공포를 부정하고 살아남을 수 있게 도와주었던 게 확실하다. ‘목격자’의 역할을 맡음으로써 나는 적어도 잠시나마 아우슈비츠에서 진행되고 있는 모든 일로부터 초연해질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온전한 정신을 제대로 유지할 수가 있었다.
페이지 : 95

 

책에서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묘사되는 집단수용소의 삶은 그야말로 참혹하다.

 

	몸이 극도로 쇠약해진 사람들은 자기가 누워 있는 자리에서 그대로 배설하고 만다. 그리고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배설물 속에 찌들어 죽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가스실에 가기도 전에 죽어 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대개 자신의 배설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화장실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몸을 조금도 깨끗하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페이지 : 108~109

나치 등이 이처럼 집단수용소를 화장실 시설도 거의 없이 비인간적으로 운영한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는 수용된 사람들의 생존에 대한 의지를 빼앗고, 냄새나는 서로에 대해 혐오하도록 함으로써 서로 협동할 수 있는 것을 방지한다는 측면이 있었다.

 

	수용자들의 사기를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뜨리는 것이 부켄발트 수용소의 원칙이었다. 그럼으로써 희생자들 간에 생길지도 모르는 협동심이나 동지의식을 예방하는 것이다.
페이지 : 118

 

	나치의 냄새나는 책략이 그렇지 않아도 촉발되기 쉬운 수용자들 간의 반감을 조장하거나 서로의 혐오감을 키쿼 연대감을 말살시키는 데 얼마나 유효한 것인가를 알 수 있게 된다.
페이지 : 118

 

 

그리고 둘째는 집단수용소를 운영하는 자들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자기 배설물에 범벅이 되어 짐승보다 못한 사람을 죽인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을 덜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왜 그토록 비참하게 수용자들을 학대하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왜 그런 동물 이하의 상태에까지 인간들을 몰아넣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가장 의미심장하고도 정곡을 찌른 해답은 “SS대원들의 작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해서 희생자들이 도저히 인간이라고 보기 힘든 천하고 더러운 몰골을 하고 있을수록, 학살자들은 인간을 대량 살육한다는 공포감을 덜 느끼게 되는 것이다.
페이지 : 119

 

이러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조금이라도 자기 몸을 씻고 인간성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관리했던 사람들이다.

 

	몸을 씻는다는 것은 건강상의 이유로 씻는 것과는 별개의 형식적 의미의 행동이라도, 수용자들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들은 그것이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일임을 알았다. 이를 중단한 사람들은 얼마 안가서 죽는 것이었다.
페이지 : 123~124

	자기의 외모를 보살피는 것이 바로 저항의 몸짓이 되고 생존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스스로 존엄성을 유지하느냐, 못하느냐에 생명자체가 달려 있었다. 외견상 인간답게 스스로를 유지하려는 끊임없는 투쟁에 생사 여부가 달려 있었다.
페이지 : 125

 

 

그렇다면 수용자들은 언젠가 죽임을 당할 것을 알면서 왜 제대로 된 저항을 한번이라도 해보지 못한 것일까?

 

	왜 그랬을까? 왜 우리는 온순한 양 떼처럼 도살장으로 걸어 들어갔던 것일까? 왜 우리는 반격을 가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성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인류가 그러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고는 정말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페이지 : 154

 

 

저자는 실제로 수용자들이 자신만 살기 위해 이기적인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무릅쓰고, 서로를 도와줌으로써 저항을 했다고 말한다. 

 

	1차 적응과 2차 적응의 구별은 집단 강제수용소의 경험에서 볼 때 가장 중심적인 의미를 띤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규칙에 복종하고 이를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저항하고 속이기도 해야 한다. 이렇게 하지 못할때에도 역시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항을 통해서만 그들은 자신을 지탱해 나갈 수 있고, 견딜 수 없이 부과되는 고된 작업과 절망감을 이겨 나갈 수 있었다.
페이지 : 196

	형언할 수 없이 괴로운 행진이 한 시간 쯤 지속된 뒤 벤지는 우리들에게 자기를 그냥 버려두고 가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그를 버린다면 행렬의 뒤에 있는 SS 대원들이 지쳐 쓰러진 그를 간단히 총살해 버릴 것이 뻔했다. 그 장면이 눈에 보이는 것 같은데 어떻게 우리가 그를 내버려 두고 갈 수 있겠는가? 우리는 체력의 밑바닥에 최후로 남은 모든 힘을 동원하여 그를 부축하며,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그 밤길을 걸어갔다.
페이지 : 238

 

 

생존자들은 현실을 부정하기 보다는 꿈보다도 가혹한 현실에 스스로를 적응시킴으로써 생명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아름다운 꿈을 꾸고 난 후에 깨어나서 혹독한 현실을 직면하는 일을 피하기만 하면 불행을 훨씬 덜 수 있을 것이다. 새로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자연, 자신의 주위에서 맥박치는 그 생명의 경이 속에서 미쳐버리지 않으려면. 땅 속에 뿌리박힌 바위가 스스로 자리를 옮기지 못하듯, 자기 자신을 집단 강제수용소 안에 단단하게 심어두는 편이 낫다
페이지 : 326

 

저자는 왜 생존자들이 증언하고자 하는지를 아래와 같이 다시 말한다.

 

	증언하고자 하는 의지는 극한 상황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응이다. 생존자들은 기억하거나 기록하겠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결심하기보다는, 오히려 ‘꼭 해야 한다’는 감정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될 뿐이다. 나는 앞에서 이런 행동을 하나의 ‘비명’으로 비유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어쩌면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비명인지도 모른다. 사회적인 동물들이 자기 동료들을 부르는 특수한 비명, 그렇게 해서 윤리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인간의 이성을 향해 필수적인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경고나 호소일 수도 있다.
페이지 : 345

생존자들의 삶에 대한 의지를 다루었던 저자 테렌스 데 프레가 1987년 11월 스스로 목을 매 숨진 것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이 책은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힘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과거의 참혹한 기억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만이 세계와 인류에 대한 기여”라고 말했듯이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현재의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꼭 필요하다.

 

우리는 참혹한 인간성 말살 현장을 목격하고 그것에 절망하기 보다는 그러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보며 인간의 삶에 대한 의지가 보다 근원적인 것이며, 희망의 끈을 절대 놓아서는 안된다.

 

	작센하우젠 수용소의 한 생존자가 수용소에서 첫 밤을 맞은 신참 재소자에게 해 준 이 말은,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내가 자네한테 우리들이 겪은 일을 말해 주는 것은 자네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고 힘을 내게 하기 위해서야...이제 절망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아닌지는 자네가 알아서 결정하게...
페이지 : 361

 

 

대량학살이라는 수치스러운 과거를 은폐하고, 잊어버리는 것은 언제든 대량학살이라는 비인간적인 행위가 반복해서 일어날 수 있음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통해 다시는 그러한 과거가 반복되지 않게 하고 미래를 위해 나아가려는 의지를 가져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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