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기쁨(백년의 가게 - 노포의 탄생을 읽고)

 

제목에서 단박에 알 수 있듯이 대를 이어온 가게라니 특별한 기술과, 자부심과 성실함, 다 뻔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앞설 수 있다. 게다가 TV에서 이미 방영된 내용이라니 시청하진 않았지만 신선함이라는 기대와 호기심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목차를 보면서 가진 의문 둘, 요즘 도시로 떠났던 사람들의 귀농 현상도 있고 우리 조상들의 농업이야말로 몇 천 년을 이어온 가업일 텐데 그 명맥을 칭송하는 章은 왜 없을까? 또 하나는 적성이나 소질 면에서 자식들이 그 일을 잇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알 수 있다. 농사와는 다른 산업이고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유교사상이 팽배했던 우리와 다른 사회의 이야기라는 것과 혈연으로만 전통을 잇지 않는 다는 걸.....

 

일본의 화과자를 만드는 센슈안은 전문 경영인이 대를 이어서 전통을 유지하고, 주물기술인 덴라이 코보 기술의 전수는 수제자들에게 계승되고 있다. 독일 넥타이의 명가도 경영능력을 갖춘 이가 회사를 이끌어 5대를 이어오고 있다. 미국의 기타회사 마틴은 직원들까지도 대를 이어 근무하는 가족적인 직장이라는 것이 인상적이다.

 

각각의 지역적 특색과 관련되는 입지조건이나 기업의 시작을 소개하는 도입 부분이 더 흥미롭고 신난다. 이탈리아의 수제우산 마리오 탈라리코 첫 부분을 읽노라면 아름다운 도시 나폴리의 우아함과 멋진 우산이 조화를 이루며 낭만의 날개가 펼쳐진다.

 

다시 말하지만 세월과 함께 하는 전통을 잇는 공통점은 선입견이 아주 틀리지는 않게 이론적으로 이미 다 결론이 나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좋은 재료, 손끝에 묻어나는 정성, 원칙을 지키는 철저함. 하지만 이 책에조차 언급 되지 못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진정한 이유가 될 것이다. 읽다 보면 농익어 스며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느껴진다. 그것이 이 책이 주는 희열인 것 같다.

 

마틴 기타를 제조하던 최고의 원료인 로즈우드의 공급이 환경파괴로 인해 어려워졌다는 것에서 여러 면의 여파를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미국 내에 로즈우드 숲을 조성한다는 원시안적 해결책에 감동도 받는다.

 

체코 프라하의 가게가 두 개 소개되어 있다. 레스토랑 우 깔리하 공산주의 정권(1948~1989)에 귀속 된 이후에도 옛 모습을 되찾으려 노력하고 보존한다는 것이 놀랍고, 보존보다는 개발에 중점을 두는 우리가 배워야할 점이다. 그리고 요즘 slow food라는 말이 들리는 것에 희망을 가져본다. 우리는 느림을 미학으로 여겨야할 필요가 있고 거기에서 대를 잇는 긴 시간도 나타날 것 같다. 또 하나는 하우스 맥주 우 메드비드쿠. 맥주의 나라는 독일인 줄 알았는데 개인맥주 소비량은 체코가 가장 많다고 한다. 이쑤시개가 가라앉지 않고 꼽히는 거품의 맥주라니 기분을 싹 씻어내 줄 시원함이 그 아래에서 퐁퐁 솟아난다. 독특한 맥주 맛의 비결인 오크통을 수리하는 사람이 줄어든다니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서 연결 고리가 끊어지면 그 고리를 다른 곳에 걸어야하는 것이 이치인데 지키며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오스트리아의 구두 명가는 평생에 걸친 무료 품질보증제도가 인상적이다. 수제화는 아니더라도 A/S가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비싸게 주고 산 신발도 수선이 늘 무료가 아니고, 자주 사고 버리는 소비 형태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미 길게 늘어선 염천교나 성수동의 수제화 가게들이 사라져가고 있지만.

 

이탈리아 수제가죽 명가 보욜라의 좋은 가죽 가방이 30만 원대라는 데 우리나라에서 듀통 되는 다른 이탈리아 제품들은 왜 그리 비싼 걸까. 프랑스의 비누 랑팔 라투르. 5대에 와서 혈연이 아닌 장 플로가 인수해서 여전히 유기농 천연제품을 고수하고 있다. 비누라는 것이 없던 나라 국민의 입장에서 선진국이라 이름 붙여지는 이유를 하나 더 찾았다고 할까. 일본 덴라이 코보 주물회사의 3정정신(정품, 정량, 정위치)에서 일본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체코의 매주 오크통은 안에 송진을 녹여 만든 액을 입혀 새지 않게 했는데 프랑스의 와인을 숙성시키는 오크통은 다르다. 화덕을 쏘이고 물을 뿌리는 작업을 반복해서 통을 굴려도 새지 않게 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락앤락의 화학 고무 밴드에 익숙해진 탓에 사뭇 이해가 되지 않고 의문만 쌓여 간다.

 

이야기들이 단편적이라고 감상도 토막이 되었지만 다방면의 것들을 접하는 기회가 되고 그래서 이것저것 알게 되는 것도 많은, 그래서 책 읽는 기쁨을 알게 해주는 유익한 책이다.

 

 

KBS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