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고요수목원의 길을 걸은지 10년도 더 되었다. 우리 아이들이 풍경보다는 뛰어놀기에만 정신없던 때의 나이에서 성인이 되었으니 그곳의 꽃과 나무들은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피워냈다가 스러지고 가지 끝의 새순들은 또 몇 번이나 돋고 돋았을까.... 짚더미에 불이 붓듯 다시 한 번 가고 싶은 마음이 훨훨 일어나는데 올 가을이 가기 전에 꼭 가리라 스스로에게 손가락 걸어주며 다독이면서 책장을 열었다.

꽃과 나무, 자연과 함께 하는 감상적인 일기여서 저자에게 샘이 나기도 하고, 지루하기 쉬운데 정원의 사진들이 활기를 넣어준다.  

 

   

아이리스라는 환상적인 어감의 꽃이 어릴 적 마당의 작은 연못 둘레에 다듬어지지 않은 채 피어있던 붓꽃의 다른 이름이라니 보라색을 이미 그 때부터 좋아하게 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자리의 꽃을 지금은 사진에 담을 수 없는 아쉬움과 함께 아련한 향수에 젖는다. 

 

깽깽이풀(위), 처녀치마(중간), 현호색(아래)

 

우리나라 꽃의 이름들은 정겹기도 하지만 웃음을 자아내는 어감의 이름들도 많다. 이른 봄 바쁜 농사철에 눈코 뜰 새 없이 일하고 있는데 도도하게 하늘 향해 얼굴 들고 피어있는 키 작은 꽃. 몸치장하고 가야금 뜯는 기생이 연상되어 깽깽이풀이라고 이름 붙였을 것이라는 저자의 상상력이 꽃에 요염함을 더한다. 

 

 

금꿩의 다리 

  

리아트리스, 금꿩의 다리, 토종 매발톱꽃이 모두 보라색이다. 여름의 고온다습함에 잘 적응하여 보랏빛 카펫을 이루는 맥문동의 매력에 저자와 함께 푹 빠져보기도 한다. 

  

10월엔 개미취나 쑥부쟁이, ‘슬픈 당신을 사람합니다.’라는 꽃말의 청보랏빛 용담이나 투구꽃, 꽃향유도 진한 보라색이라 쓸쓸한 가을의 색 사이로 많이 피어 있다니 보라색의 환상적인 우아함이 더욱 돋보일 것 같다.

이렇게 보라 꽃들이 많은데 나는, 아니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꽃을 그릴 땐 왜 빨강이나 노랑의 색을 칠하는지 모르겠다.

      

보라는 아니지만 청순한 아리폴리스수선화와 고혹적인 타히티수선화 사진을 보고 몇 년 전 봄, 경기도 파주 벽초지수목원 연못가 노란 얼굴이 인상 깊었던 수선화 사진을 찾아본다. 그리고 다시 고고함과 수줍음을 머금은 자태를 확인한다.

문학이나 음악, 그림 등 많은 분야의 소재로 회자되어 귀에 익은 이름 모란. 개화기간이 가장 짧은 꽃이라니 아름답고 화려함 뒤의 슬픔이 처절하다. 대부분의 꽃들이 비를 머금으면 더 큰 웃음을 짓지만 모란의 매력을 더해주는 은은한 빛을 지닌 꽃잎이 얇아서 비에 금세 녹아버린단다. 찬란한 슬픔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인지.

 

꽃밭의 잡초를 없애느라 김을 맨다는 글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던 야생화와 뿌리를 없애버리는 잡초와의 차이가 무엇일까 의문이 생긴다. 단지 예쁜 꽃을 피우지 못함이었다면 부당한 대우에 화가 났겠지만 잡초는 다른 식물에게 피해를 주는 기생충 같은 짓을 하니 뽑혀야 한다.

 

   

워낙에 모든 책의 인세 1%는 기금을 조성하여 나눔을 실천하는 샘터출판사인데 저자가 이 책의 인세는 전액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한다고 하니 지인들에게 많이 권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