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의 꿈을 떠올리는 장면은 새의 울음소리만 있을 뿐 새의 형체가 투명했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에 주인공의 의식은 있으나 존재는 없었다. ‘어떤 여행지보다 하루하루의 삶이 더 낯설고 위태해지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는 정희의 짧은 말이 내 안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리는 순간이라던 인주의 말에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고 그게 다라는 생각을 굳히고. 인주와 인주 외삼촌의 먹으로 그린 그림은 죽음을 나타낸다지만 그림의 묘사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시제뿐 아니라 생각글 조차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그림 또한 별들의 생성과 소멸로 이어지며 수시로 인용되는 우주천체에 관한 책의 내용들은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절정 부분에 이르러 인주 엄마에 대한 얘기가 펼쳐지면서 혼란스러웠던 시작 부분의 장면이 이해되기 시작하는 영화를 보며 일어설 준비를 해도 될 것 같은 시점이 되었다는 여유가 생긴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 마침표를 찍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었다는 느낌이 드는 어두운 소설이다.

 

"쓰레기 위에 덮인 눈 같은 생활의 고요가 물기와 썩은 고깃점들에 뒤범벅이 되는 순간의 예감" p40

 

"누군가의 죽음이 한 번 뚫고 나간 삶의 구멍들은 어떤 노력으로도 되살아나지 않는다. 차라리 그 사라진 부분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아 익숙해지는 것이 낫다."p64

 

"여자는 누군가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곧 지배당하는 것이며 자신을 잃는 것이라는 공포 때문에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데,"p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