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내겐 머나먼 곳이다.

학창시절 한번 가 볼껄 하는 후회가 밀려올 만큼 매력적인 곳이지만 험난한 비자받기가 두려워 포기하고만 곳이기 때문이다.

내겐 멀었던 그 곳에서 낡은 미니밴 하나에 의지해 집시처럼 289일을 떠돈 유랑기를 만나게 된다.

하루 이틀도 아닌 365일에서 겨우 두어달 빠지는 긴 시간을 젊은 학생도 아닌 40대 중반의 나이에 가족도 남겨놓고 여행기간 내내 노숙을 하며 이방인으로서 남의 나라를 여행했던 김창엽씨의 여행기는 잘 참고 있던 나의 엉덩이를 들썩거리게 만들고 만다. 차로 달리는 8만여 킬로미터의 여정속에서 그가 만난 아메리카의 유혹에 흠뻑 빠지게 된다.

 

큰 나라다. 그 만큼 다양한 인종과 각양각색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 만나는 이야기가 있다.

전직 기자였던 저자의 글솜씨의 저력이 느껴지듯 페이지 넘김이 부드럽다.

330여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의 마력은 진솔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사진에 있지 않나 싶다. 미국이란 기회의 나라와 화려함 뒤에 숨어서 숨쉬고 있던 풍광과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떠돌이 생활을 하는 그에게 편안하고 솔직하게 그들의 일상을 풀어 놓는다.

바람과 함께 떠난 길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만큼 자신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살아가는 얘기를 담고 들어야 했던 저자의 모습이 너무나 부럽다. 가끔은 그 대화속에 너무나 몰랐던 자신의 모습에 놀라움을 느끼기도 하고 한계상황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기도 한다. 여행의 매력은 그런 것 아닐까?

 

저자의 나이라면 세상이 새로울 것도 없었을 터인데 한줄 한줄 써내려간 그의 경험담을 읽다보면 아직도 우린 세상에 대해서 너무나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기적이고 냉정하며 경쟁으로만 매일을 살 듯한 아메리칸들에게 따뜻함이 느껴지고 사랑하며 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강자들만의 나라가 아니다. 서러운 흑인 교회의 아름다운 소울 찬송이나 백인 순혈주의의 사회에서 소수집단의 약자로 살아가는 걸라(Gullah)들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고자하는 모습,쿠바이민자들의 힘겨운 일상, 멕시코 국경을 넘는 밀입자국들의 체포순간까지 어두운 면까지 함께 할 수 있다.

 

그 사이 길거리에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났다. 족히 수백 명은 될 듯한 사람들.

하지만 사람보다 더 진하게 뇌리에 박혀 있는 것은 풍광이다. 알래스카의 툰드라와 이름 모를 설산들, 플로리다의 에버글레이즈와 키웨스트, 유타의 바위산, 뉴햄프셔의 단풍, 미시시피 강 , 수피리어 호수.... 돌이켜 보면 모두 꿈같은 시간인데 꿈치고는 너무도 기억이 또렷하다. <책 뒷표에서>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인다. 저자의 뇌리에 박혀있는 풍광들은 사진을 타고 내 앞에 펼쳐진다. 눈도장을 찍고 마음에 담고 픈 열망에 사로잡힌다. 훌쩍 일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버린 그와 생활의 소소한 것들을 버리지 못해 책상앞에 앉아 오늘도 에어콘 바람으로만 여름을 느끼고 있는 나 누가 더 이기적인 걸까? 특별히 용감하지 않고 모험심도 크지 않은 나지만 하늘과 물과 바람이 나를 감싸고 친구가 되어 준다면 아무 생각 없이 떠날 수 있지 않을까. 그것만으로도 내겐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행이 끝나고 산다는 일이 조금 더 혼란스러워졌다는 저자의 독백속에 그의 삶의 기준을 흔들어 버린 유랑생활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