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처음에는 책을 먼저 읽었던 것을 아니란 거지.. 달달한 잘금 4인방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든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을 보면서 이 드라마가 원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드라마가 끝난 지금 그들을 잊지 못해 정은궐의 장편소설인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읽게 되었으며 책을 읽으며 장면장면 드라마와 오버랩되면서 상유들과의 헤어짐을 잠시 미루고 있다는 거다. 드라마 한편의 힘이 정말 거대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거 소재 참 참신하다. 조선시대다. 유교사상이 엄격하게 지켜지며 사대부의 기개란 것이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대단한 힘을 가졌던 정조시대임을 생각하면 여인의 몸으로 남자들만이 생활한다는 성균관에 들어가서 학문을 익히고 사랑을 하는 김윤희란 처자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불경스러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20살의 청춘들은 이 모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 놓았고 당대 노론과 소론의 당파싸움이 최고조 이르렀을때임에도 우정과 신의의 모습을 따뜻하게 그리고 거기에 남녀의 애틋하고 손발오그라드는 사랑이야기를 묻혀 냄으로서 스쳐가는 가을에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현대판 소설들의 막나가는 사랑이야기에 식상해 있던 독자들에게 어쩜 마음과 몸으로 글리면서도 서로가 사내라는 벽에 가로막혀 다가가지 못하는 윤희와 선준의 모습은 가슴두근거리는 첫사랑을 만난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어 주었던 거 같다.

 

김윤희는 소녀가장이었다. 동생의 약값을 벌어야 했고 어머니의 생활고에 보탬이 되어야 했기에 어린시절부터 동분서주 돈을 벌수 있는 일은 다 했다. 하지만 어린 소녀가 할 수 있는 그닥 많지 않아 결국 동생의 호패를 빌어 남장행세를 하며 필사일을 해 왔다. 그녀의 탁월한 서체와 글솜씨 그리고 해박한 지식이 도움이 되었음이 다행이라 해야겠다. 그러다 이선준을 만난다. 잘생기고 똑똑하고 게다 예의까지 바른 이 남자, 어찌다 엮이게 되었지만 그가 마음에 들어오는대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스쳐가길 바랬는데 이젠 성균관에서 함께 그것도 한방에서 생활을 해야 한단다. 수많은 남자들속에서 남자로 버텨내야 하는 윤희 그녀는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이들만이 아니다. 드라마에서는 송중기가 분했던 여림 구용하와 유아인의 걸오앓이 신드롬을 만들었던 문재신도 멋지다.

 

어쩜 이렇듯 멋진 사내들만을 모아놓았는지 저자가 새삼 고맙다. 신방례에서 명받은 조선 최고의 기생이었던 초선의 속곳을 가져오는 통에 붙여진 대물이란 별호의 김윤희, 완벽이란 단어를 빼면 그를 설명할 길이 없을 정도로 여인네들의 마음을 흔든 선남이자 훈남도령이지만 뜻하지 않은 감정을 대물에게 느끼며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흔들리는 가랑 이선준, 최고의 문장가이며 속으로는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한 하지만 소론의 실세인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으로 반항아적인 행동을 하는 미친말 걸오 문재신, 유쾌하고 늘 밝고 주위사람들에게까지 그 기운을 전파하지만 대물도령을 본 후 그녀의 정체에 대해 늘 궁금하게 여기는 여림 구용하까지 그저 생각만 해도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감돈다. 이들의 별호마저도 너무나도 즐거운 기운을 불어넣어준다.

 

한번 책을 잡으면 분명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릴 수 있을 것을 장담한다. 여인이면서 여인이 아닌채로 살아야 했던 김윤식 아니 김윤희의 기구한 삶을 함께 하면 눈물콧물빼는 것이 아니라 심장이 세게 뛸만큼 설레기도 하고 수줍음에 빨개지기도 하며 때론 낄낄대며 웃을 수 있기에 청춘들이란 그것만으로도 좋은 거 같다. 딱딱한 시대의 말랑말랑한 이야기라서 그럴까, 당시의 분위기에 비해 파격적인 내용들이 돋보인다. 그리고 하나더 책을 읽으며 좋았던 것은 타협할 줄 아는 인물들이었다. 윤희가 여인이란 것을 알면서도 묵인해주는 친구들, 그녀에게 가체를 선물로 보내는 어진 임금, 노론과 남인의 결혼이라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지만 선준의 장원급제에 그저 기분이 좋아 허허 거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좌상까지 그들 모두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모습에 팍팍한 우리네 인생을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아마도 잘금 4인방의 여운이 조금은 길게 내게 남아 있지 않을까 한다. 이제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2탄 <규장각각신들의 나날>로 가봐야 겠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