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p123 많은 독자들이 기억할 듯한 데미안의 한 구절이다. 아직도 모호한 이 문장들이 이번에도 내 머리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만나는 것은 두번째다.

 

중학교 때 학교 필독도서로 선정이 되어 정말 어렵게 읽었었지만 결국은 포기했던 기억속의 데미안은 고전이란 지겹고 어려운 것 그래서 이런 책을 쓰는 사람들은 그 노고를 감안해 노벨문학상을 주나 보다 하는 정도였다. 그 줄거리 조차도 가물거리고 데미안이 사람의 이름이라는 것도, 싱클레어라는 한 소년의 성장소설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이번에는 끝을 보리란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진도가 빠르다. 중학교 시절의 알에서 깨어나오지 못했던, 자아가 완성되지 못했던 나여서 그랬을까 어른이 되어 읽는 데미안은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고 있는 듯 하다.

 

뒤섞여진 두 세계에 살고 있던 싱클레어, 첫번째 세계는 사랑과 엄격함, 모범과 학교로 이루어진 어머니와 아버지의 집이고 두번째 세계는 무시무시하고, 유혹하며, 수수께끼같은 물건들과 거칠고 잔인함이 있는 하녀와 직공들의 살고 있는 어두운 곳이었다. 프란츠 크로미의 협박으로 헤어나지 못하던 어둠의 세계에서 싱클레어는 한줄기 빛 바로 데미안을 만난다. 그의 구원을 받지만 그것 뿐, 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한 후 다시 자아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그를 바로잡아 준 것은 한장의 그림에 답을 한 데미안의 쪽지였다.

 

설마 이런사람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싶게 강하게 어필되는 막스 데미안이다. 흑기사마냥 싱클레어를 괴롭히던 프란츠 크로미를 제압하고 사람의 마음을 읽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신과의 교감을 느끼는 이 사람이 소년임에도 멋있게 보인다. 또한 카인을 영웅으로 아벨을 겁장이로 재해석하거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을때 함께 있었던 두 명의 도둑에 대한 데미안의 시선도 새롭고 놀랍다. 언제나 신의 입장에서만 해석했던 성경을 선과 악의 모습으로 이렇듯 다르게 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감탄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데미안은 불쑥불쑥 싱클레어의 인생에 등장한다. 아니 늘 함께 했는지도 모르겠다. 싱클레어가 자신을 찾아 알에서 깨어나려 노력하고 그는 존재만으로도 힘을 보탠다. 신비로운 신에 대해 가르쳐준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와의 만남, 뜨겁게 갈구했던 꿈속의 연인 베아트리체 그 여인이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부인이란 것을 알고 혼란스러워하지만 결국 압락사스는 결국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야 함을 알게 된다. 전쟁이 나고 둘은 부상을 당한 채로 야전병원에서 만나게 된다. 떠나는 데미안의 입맞춤 그리고 싱클레어는 보게 된다. 그의 모습과 완전히 닮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친구이자 인도자였던 데미안을.

 

사춘기 시절 나를 알지 못해 힘겨워했던 그 고통의 시간들, 이제 돌아보면서 나는 싱클레어를 생각한다. 여전히 내게는 압락사스는 어려운 물음이고 데미안은 이해못한 부분이 많은 소설이다. 그렇지만 살다보니 알에서 나오기 위한 투쟁을 아직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언제쯤 그 하나의 세계를 깨뜨릴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흐른후 다시 한번 데미안을 읽게 될 때는 지금보다 좀더 많은 깨달음이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