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당신의 방은 모두가 가지고 있었으며

때가 되었을 때  자기만의 방, 당신의 방에서 나와 세상 빛과 마주하지 않았던가.

당신의 방은  많은 상념들을 한꺼번에 안겨다 주는 책이다.

아직도 방을 갖지 못한 그토록 많은 자들이 자기만의 방을 갖기를 원하며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도 있었으나 가지지 못하거나 가지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

자기만의 방에서 나오기를 머뭇거리거나 아예 나올 줄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

문학과 지성사의 시인선 56번의 책인 이승훈 시인의 당신의 방.......

당신의 방엔

천개의 의자와

천개의 들판과

천개의 벼락과 기쁨과

당신의 방엘 가려면

바람을 타고

가야 합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아마 당신의 방엔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새는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다섯 번째 시집 당신의 방은, 내면의 서성임을 벗어나, 너와의 구체적인 관계로 의식의 문을 열어가는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단순한 문체로, 반복되는 시행들이 그러한 움직임의 표현으로 개인적인 것의 문턱을 넘어

따뜻함으로, 구체적인 타인의 삶을 껴안고 있다는 것이다.

이승훈 시인을 알게 된건 우연이다.  가수 이승훈의 노래를 듣다가  우연히 알게 된 시인이기에 그럴 밖에.

이렇게 책을 통하지 않고도 글을 통하지 않고도 새로운 것을 접하게 만들어주는 이 시대에 사는 우리들이기에

자칫 쓸데없는 정보에 노출되어 늘 허덕이며 살아가지는 않을까하는 아이들에 대한 우려도 드는건 사실이다.

버리고 비워야 할 것들과 취해야 할 것들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지혜롭게 살아 갈 수가 있을까.

잠시 옆으로 새는 이야기 같지만, 다시 돌아와서 이 책에 관하여.

 

암튼, 하나의 우연적인 일들이 우연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리되고자 그렇게 된다는 것.

 

난해하면서 지극히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게만드는 시인은 그렇게  나의 마음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시인의 시를 읽게 되고 시인의 맑은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일상에 묻어오는 나의 속절없는 집착에 대한 하나의

출구가 된다.

 

가끔씩은 사람들은 왜 알 수 없는 저만의 시들을 짓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는 것도 내게는 내면성찰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모두에게는 다른 이들이 알 수 없는 각자만의 세계가,  당신의 방이 분명 있다는 것이다.

 

 

 

너를 본 순간      - p48

 

 

너를 본 순간

물고기가 뛰고

장미가 피고

너를 본 순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를 본 순간

그동안 살아온 인생이

갑자기 걸레였고

갑자기 시커먼 밤이었고

너는 하아얀 대낮이었다

너를 본 순간

나는 술을 마셨고

나는 깊은 밤에 토했다

뼈저린 외롬 같은 것

너를 본 순간

나를 찾아온 건

하아얀 피

어려운 아름다움

아무도 밟지 않은

고요한 공기

피로의 물거품을 뚫고

솟아 오르던

빛으로 가득한 빵

너를 본 순간

나는 거대한

녹색의 방에 뒹굴고

태양의 가시에 찔리고

침묵의 혀에 싸였다

너를 본 순간

허나 너는 이미

거기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