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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책읽기에 관한 책을 읽을 때면 거의 예외없이 참고문헌에서 그의 책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말 그대로 일본을 대표하는 독서가인 저자가 그동안 읽어온 책에 대해 소개하는 내용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보다 훨씬 폭넓은 주제로 깊이 있게, 흥미롭게, 실용적으로 많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그는 이 책이 쓰여질 당시인 2001년까지 40여권의 책을 썼는데, 어느 특정한 주제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 제목을 대략 꼽아보면, '일본 공산당 연구', '임사 체험', '뇌사', '원숭이학의 현재'등 전혀 동떨어진 주제들이다. 그는 테마 하나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약 500권의 책을 읽는다. 거기에 더해 잡지 기사나 논문, 인터뷰 자료도 쌓아놓으면 2미터에 이를 정도라 한다. 책을 너무 많이 쌓아놓아서 목조건물이었던 집이 무너져내리기도 했다. 그는 왜 그렇게 많은 책들을 읽어왔고, 또 어떻게 읽을 수 있었을까하는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먼저 그의 독서론은, 목적으로서의 독서와 수단으로서의 독서로 나누는 것으로 시작한다. 목적으로서의 독서란 책을 읽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으로 주로 문학작품을 읽는 경우이다. 그리고 수단으로서의 독서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지식이나 정보를 얻기 위해 하는 독서를 말한다. 주로 자기계발, 경제경영서들을 읽는 것이겠지만 그 구분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다치바나의 경우 젊은 시절에는 목적으로서의 독서를 많이 했으나 이후에는 거의 수단으로서의 독서를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문학 작품을 읽어도 재미가 없기 때문이라한다.

- 그러므로 저는 오늘날의 문학 부진 현상의 근본 원인을, 독자가 문학 작품에서 멀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을 현대 문학 속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데서 찾고 싶습니다. 이런 점을 무시하고 독자가 문학 작품을 읽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이는 상황을 전혀 엉뚱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45쪽)

따라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논픽션의 세계가 훨씬 흥미롭다는 말이며, 스포츠 프로그램이나 대형 사건을 현장에서 중계할 때 시청률이 높은 것도 바로 그런 재미를 반영한다. 분야에 제한을 두는 것으 아니지만, 그런 의미로 다치바나의 독서론은 철저하게 현실, 논픽션, 그리고 최신정보 지향적인 것이다.

그가 말하는 고전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무엇보다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견해에 대해 그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한 마디로 어디까지를 고전의 범주에 넣을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대개 톨스토이라거나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19세기 문학이 고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는 100여년 전의 출판물일 뿐이며 진정한 의미로서의 고전이란 적어도 500년에서 1000년 정도의 검증을 받고 후세에 남겨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어떤 책은 10년이면 사라져 버리고, 어떤 책은 100년은 살아남지만 그 이상의 검증을 받으며 역시 또 사라지는 책도 있다. 즉, 시대를 초월하여 독자층을 유지할 수 있는 책만을 고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인데, 아직도 고전이라 불리며 읽히는 많은 책들은 검증을 받는 중인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불확실한, 고전을 읽는 것보다 다치바나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최신보고서인데, 그 이유는 이렇다. 고전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 완결된 것이기 때문에,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지의 총체를 포괄할 수 없다. 우리는 단지 고전을 통해 그 고전이 쓰여진 당시까지의 산물만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것은 지금의 시각으로 봤을 때 전혀 쓸모없는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무의미하게 고전을 고집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최신보고서 속에서 과거의 지에 관한 총체를 찾는 것이 타당하다 보는 것이다.

다치바나의 독서론 중 속독방법에 관한 글이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할 것이다. 그의 독서량은 그 당시까지만 해도 3만권을 훨씬 넘어서는 것 같다. 과연 그 책들을 모두 제대로 읽었을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에 대한 답은 물론 '제대로 읽는다'이다. 그는 '나의 독서일기'를 통해 매주 신간에 대한 소개를 하는 글을 연재하였다. 그만의 독특한 서평론도 음미할만 하지만, 속독에 촛점을 맞추자면 그는 서평을 쓰는 일 덕분에 더욱 속독을 할 수있는 능력을 얻게되었다고 한다.

그가 소개하는 방법이다.

1. 책에는 속독이 가능한(혹은 쉬운) 책과 불가능한(어려운) 책이 있다. 미스터리 소설과 같이 시간 보내기용으로 만들어진 책은 기본적으로 속독이 불가능하며, 속독으로 읽어도 의미가 없다. 이런 책은 속독을 포기하고 즐기며 읽거나 읽지 않는다. 속독으로 읽어야 할 책은 정보를 취할 목적으로 읽는 책이다.

2. 눈의 훈련 등 기술적인 방법을 이용하기 보다는 어느 정도 열중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뇌의 움직임은 열중해 있는 대상에 대해서는 몇 배 이상 그 움직임이 활발해지므로, 열중해서 읽으면 자연히 속독이 가능해진다.

3. 열중할 수 없는 책을 속독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어렵지만, 한 가지 방법은 그 책을 무슨 일이 있어도 어느 시점까지 읽어야 하는 상황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독서 모임을 만드러 그 책의 발표를 하는 등)

4. 책의 구조를 파악하면서 읽는다. '어떤 한 권의 책도 한 장의 도표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도표를 만드느냐 마느냐와 상관없이. 구체적으로는 각 단락의 첫 문장만을 차례대로 읽어간다. 이렇게 책의 흐름을 파악하며 읽으면 300쪽의 책을 5분에서 15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다.

5. 잠깐 대충 훑어보기로 대략적인 책의 흐름을 파악했다면, 그 책을 더 읽어야 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좀더 자세히 읽어보고 싶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단락단위로 세밀하게 읽어본다. 자연스럽게 눈이 머무는 곳만을 읽고 지나가도 의외로 정확히 필요한 부분만을 읽을 수 있다.

-책을 많이 읽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은 되도록 빨리 가려내어, 읽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다면 단호하게 멈추는 것이다. (226쪽)

이런 다치바나식 속독법은 뇌과학과 그의 경험으로부터 얻어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가 모든 분야에 대해 얼마나 깊이 파고드는지 알았기 때문에, 그 근거를 의심하기 힘들다. 이 외에도 책을 고르는 방법, 서평론, 서재론, 비서공모기 등의 글을 읽다보면 지금까지의 독서에 대해 정리해보고 앞으로의 독서 방향에 대해 개선할 점을 찾게 된다. 그 독서의 폭과 깊이에 대해 끝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읽기는 어렵지 않고 소소한 재미까지 느껴져서, 다치바나에게는 가장 어렵게 입력해서 가장 쉽게 출력하는 능력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 역시 갖게 한다.

- 나는 책이란 만인의 대학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대학에 들어가건 사람이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대학에서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한다면 인간은 결국 책을 읽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책이라는 대학에 지속적으로 그 누구보다 열심히 다니고 있다. (2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