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시도로 색다른 그림책을 만드는 작가,

이수지의 신간(?), <토끼들이 밤>.

 

우리나라에 출간된 걸로 따지면 신간에 속하지만, 사실 2002년도에 스위스에서 출간된 책이다.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션에 선정되기도 한 책인데, 쉽게 볼 수 없어 궁금했던 참이었는데,

책읽는곰에서 출간되었다고 하니 반가운 마음에 냉큼!

 

펼치자마자 느껴지는 새로움!

면지에 작가 소개가 들어가다니~

그것도 이렇게 비스듬하게 창의적으로!

시작부터 뭔가 기대가 된다. ㅎㅎ

 

책을 펴면 트럭 한 대가 지나가고 있고, 길가에 누워 있는 토끼가 보인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로드킬인가? 아니면 더워서 토끼가 널브러진 건가?

 

그날 밤, 앞서 나온 트럭이 캄캄한 길을 지나간다.

아이스크림 그림이 차에 그려진 걸 보니, 아이스크림을 파는 차인가 보다.  

한 마리의 토끼가 숨어서 트럭을 보는가 싶더니, 트럭 앞으로 돌진!

그러더니 수많은 토끼들이 트럭을 향해 무차별 공격!!

 

당황한 트럭 기사의 변화하는 표정과 점점 많아지는 토끼들과 그 표정이 압권이다.

 

다음 날 아침, 트럭 기사가 길가에 널브러져 있다.

앞서 토끼와 같은 자세로!

 

 정신을 차리고 어리둥절해하는 트럭 기사를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출발한다.

그리고 그 트럭을 유유히 바라보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토끼들이 보인다.

 

글 없는 그림책이지만 읽기 쉽고 얘기하기 쉽다.

종알종알 말이 많고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4살짜리 딸 아이에게 글 없는 그림책은 어떻게 읽힐까? 

 

깜깜한 밤 토끼가 트럭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무서워할 줄 알았더니,

깔깔거리며 뒤로 넘어가도록 웃는다.

 

"엄마! 토끼들이 나쁜 아저씨를 혼내줬어."

하는데.. 로드킬이라고 구지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

어쩌면, 딸 아이는 토끼들이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는 이유로 아저씨를 괴롭힌다는 건 상상도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책을 볼 때마다 딸 아이의 이야기가 점점 풍성해진다.

기분에 따라 다르게 읽는다.

글 없는 그림책의 가장 큰 장점인 듯하다.

그림을 더 꼼꼼히 보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수지 작가의 그 전 작품, <거울 속으로>나 <파도야 놀자> 같은 책은 어른인 내가 더 좋아하는 책이라면,

<토끼들의 밤>은 아이가 더 좋아하는 책이다.

 

토끼들의 귀엽지만 무시무시한 복수극~

아이가 기대 이상의 상상력과 표현력을 보여 주어 엄마가 뿌듯해진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