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이 뜬 동짓날 태어난 쌍둥이가 있다. 오빠 루는 금발에 파란 눈, 강인하고 아름답고 빛나는 아이이고, 나 사바는 검은머리에 갈색 눈, 비쩍 마르고 못생기고 그림자 같은 아이이다. 예정일보다 한 달이나 일찍 에미를 낳고서 이틀 만에 죽은 엄마, 땅 대신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아빠, 그렇게 태어나고 이제 9살이 된 막내 에미까지 네 가족이 살아가는 이 은빛 호수는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붉고 흐릿한 모래먼지 속에서 말을 탄 남자들이 나타나 동짓날 태어난 루를 잡아가던 날, 아빠는 남자들의 화살에 맞아 세상을 떠나고 마침내 비가 내린다. <블러드 레드 로드> (2012, 모이라 영 지음, 북폴리오 펴냄)의 시작 장면이다.

 

내가 널 찾을게. 저 사람들이 널 어디로 데려가든 내가 찾아낼 거야. 맹세해. (42쪽)

사바는 인생의 태양인 루를 찾기 위해 지금껏 살아온 은빛호수를 떠나 천신만고를 겪는다.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았던 동생 에미를 챙겨 가며 오빠를 찾아가는 길은 멀고 험하기만 하다. 악한 사람들을 만나 검투사로 팔리고, '희망 시'라는 아이러니한 이름의 도시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면서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을 얻는다. 죽지 않으려면 이겨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의 절망 속에서 사바는 '자유의 매'를 만나 희망의 도화선이 되고, 또 다른 인연인 잭과 함께 루를 구하러 출발한다.

 

<블러드 레드 로드>는 모이라 영의 데뷔작이고,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코스타 북 어워드'를 수상한 작품이며, '더스트랜드 3부작'의 첫 번째 권이기도 하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뿐 아니라 가족, 주변 사람들, 더 나아가 한 체제의 평화를 이끌어낸 사바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초반에는 루에 가려 자신의 가치를 알지 못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매력과 자신감을 되찾는 모습이 좋았다. 앞으로 이어질 두 권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점점 더 거대한 악과 마주치게 되더라도 자신의 힘에 눈뜬 이 여전사가 멋지게 활약할 것을 믿는다.